요즘 영남권에서는 이명박 정부의 공약 사항인 동남권 신공항의 입지 선정을 놓고 신경전이 한창이다. 부산은 가덕도를, 경남 등 나머지 4개 시·도는 경남 밀양이 최적지라고 주장하면서 선정 방식을 놓고 티격태격하고 있다. 국토해양부는 지난해 3월부터 이 사업을 위한 입지조사, 타당성 검토 용역을 진행해왔다.

그러나 정작 심각한 문제로 지적되고 있는 지방공항 문제에 대해 국토해양부는 팔짱만 낀 채 지역 주민 눈치만 보고 있다. 전국 11개 지방공항이 지금 이 순간에도 엄청난 적자를 내고 있는데도 별다른 대응책을 내놓지 못하면서 또 새 공항을 짓겠다는 것이다.

지난해 전국 14개 지방공항 중에서 김포와 김해·제주 공항 등 3개만 흑자를 내고 나머지 11개 공항은 적자를 보았다. 적자 공항들의 적자 합계는 2007년 369억원에서 2008년 512억원으로 38.8% 늘어나는 등 해마다 커지고 있다.

3567억원을 들여 2002년 완공한 양양국제공항은 16일로 166일째 비행기가 단 한대도 뜨지 않았다. 1147억원이 투입된 울진공항은 공사가 중단된 채 '유령 공항'이 됐으며, 480억원을 주고 산 전북 김제공항 부지 157만㎡(47만5000평)에서는 주민들이 채소를 기르고 있다.

지난해 여름 휴가철인데도 이용객이 거의 없어 텅 비어 있는 무안국제공항 2층 출국장 모습. 매년 적자가 불어나는 지방공항 문제를 해결하려면 정부가 과감한 구조조정이 나 활성화 대책을 내놓아야 한다고 전문가들은 지적했다.

일반 기업이 이처럼 몇년째 적자를 보면 진작 구조조정에 착수했을 것이다. 하지만 지방공항들을 관리하는 한국공항공사는 김포·제주 같은 흑자 공항에서 남긴 돈으로 지방공항 적자를 메워주고 있다.

팔짱 낀 국토해양부

본지는 공항 전문가 10명에게 지방공항 문제 해결을 위해 무엇을 해야 하는지를 물었다. 전문가들은 정부가 과감한 지방공항 활성화 방안이나 획기적인 구조조정 방안을 내놓아야 할 시점이라고 말했다.

그러나 주무부서인 국토해양부는 사실상 팔짱을 끼고 있다. 국토해양부가 지방공항 구조조정을 위해 한 일은 지난달 5일 청주국제공항을 민간에 공항 운영권 매각할 대상 공항으로 선정한 것밖에 없다. 그것도 2~3개 공항을 선정할 것이라는 예상과 달리 한개만 선정했다.

국토해양부는 7월 말까지 외부 컨설팅을 받은 다음, 절차를 거쳐 내년 상반기 청주공항의 운영권을 넘기겠다는 계획을 갖고 있다. 국토해양부는 청주공항 운영권 매각 성과를 보고 다른 지방공항들의 구조조정 방식을 결정하겠다는 입장이다. 정부 스케줄대로라면 2~3년 내에 다른 적자 공항들에 대한 구조조정은 손을 대기도 어려운 것이다.

이용재 중앙대 교수(도시공학)는 "지방공항 적자는 계속 쌓이는데, 정부가 '정치적 부담' 때문에 대책을 내놓지 못해 지방공항 문제 해결이 지지부진하다"며 "정부가 공항 운영권 매각, 지방공항 간 통·폐합은 물론 필요하면 공항 폐쇄까지도 의지를 갖고 제대로 밀어붙일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홍석진 인천대 동북아물류대학원 교수는 "정부가 지방 군소공항까지 다 갖고 가겠다는 자세라 아무것도 못하는 것"이라며 "권역별로 거점 공항 5~6곳만 남기고 과감하게 없앨 수 있다는 관점에서 봐야 문제가 풀릴 것"이라고 말했다.

박용훈 교통문화운동본부 대표는 지역 주민 설득이 관건이라고 말했다. 박 대표는 "필요하면 과감하게 공항을 접어야 하는데 주민 반발 때문에 그런 접근을 못하는 것"이라며 "예를 들어 활주로 자리에 학교를 지어준다는 식의 대안을 갖고 접근하면 주민들도 납득시킬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국토해양부 입장에서는 자기 손으로 만든 공항을 자기 손으로 없애기 쉽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정부가 단기적으로는 지방공항에 각종 규제만 할 것이 아니라 저가 항공사 취항 유도, 공항 이용료 대폭 할인, 공항 주변 개발 규제 완화 등 파격적인 정책 지원을 해볼 필요가 있다는 지적도 많았다.

이에 대해 국토해양부 장종식 항공철도국장은 "정부가 손 놓고 있는 것이 아니라 지방공항 문제 해결을 위한 최선의 방안을 계속 찾고 있는 상태"라며 "예를 들어 양양공항은 모든 가능성을 열어놓고 공항공사·강원도가 공동 용역을 실시할 계획이며, 울진공항도 비행조정훈련센터로 활용하는 방안을 검토하고 있다"고 말했다.

떼만 쓰는 지방정부

전문가들은 중앙정부 못지않게 지자체의 자구노력이 중요한데, '무임승차'하려는 지자체의 자세가 문제를 더 악화시키고 있다고 지적했다.

허종 한국항공정책연구소 소장은 "지어준 공항을 활용 못하고 정부가 다 알아서 해주길 바라는 지자체의 책임도 크다"고 말했다. 허 소장은 "지금까지 정부와 한국공항공사가 지방공항 적자를 해결해주니 지자체 스스로 노력이 부족했다"며 "단계적으로 해당 지자체가 공항 적자를 책임지는 방향으로 가 궁극적으로는 각 지자체가 지방공항 운영을 100% 맡도록 해야 한다"고 말했다.

제주항공 함대영 고문은 "각 지자체에서 취항 항공사에 인센티브 제공 또는 적자보전 등 적극적으로 나서는 것이 중요하다"고 말했다. 김연명 한국교통연구원 항공교통연구실장은 "해당 지자체에서 해당 지역을 여행사 등에 적극 알리는 등 지방공항 항공 수요를 끌어와야 한다"고 말했다. 예를 들어 제주공항이 지난 3월 일본 기타큐슈 공항에 취항하자, 기타큐슈시는 편당 400만원씩 보조금을 주고, 취항 홍보도 다 해주고 있다는 것이다.

동남권 신공항 추진 논란

이런 와중에서 동남권 신공항은 계획대로 추진되고 있다. 정부는 오는 9월 동남권 신공항 후보지를 확정해 2011년 착공할 예정이다. 이 사업은 추정하는 기관에 따라 사업비가 10조~20조원이나 드는 초대형 사업이다.

전문가 10명에게 동남권 신공항 건설에 대한 입장을 묻자 4명은 찬성, 3명은 '나머지 동남권 공항 모두 폐쇄' 등을 전제로 조건부 찬성, 2명은 반대했고 1명은 입장 유보였다. 이영혁 항공대 교수(항공교통물류학)는 "신공항을 만들려면 지금 동남권에 있는 공항 5개(김해·대구·울산·포항·사천) 모두 문을 닫는다는 전제가 필요하다"며 "그럴 자신이 없다면 아예 짓지 말아야 한다"고 주장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