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국 파타야에서 열릴 예정이던 '아세안+3' 정상회의가 반정부 시위대의 습격으로 무산됐다. 시위대 1000여명이 회담장인 로열클리프호텔 유리문을 깨고 난입해 태국 총리를 처단하겠다며 호텔 내부를 휘젓고 다녔고, 아시아 각국 정상들은 옥상으로 피신해 헬기로 탈출했다.

아로요 필리핀 대통령과 몇몇 영부인들은 공포에 질려 울음을 터뜨리기도 했다. 국제 정상회의에서 상상하기도 어려운 활극이 벌어진 것이다.

▶이번 시위대는 탁신 전 총리를 지지하는 세력이다. 농민과 도시빈민이 주축을 이루고 있다. 이들은 지난해 반(反)탁신파 시위대가 정부 청사와 공항을 점거하고 헌법재판소가 집권당 해체명령을 내려 탁신 후계정권이 무너지자 집단행동에 나섰다. 2006년 9월 군부 쿠데타로 물러난 뒤 해외 망명 중인 탁신이 복귀해 다시 정권을 잡아야 한다는 게 이들의 주장이다.

▶탁신은 총리 재임 중 95개에 이르는 대규모 프로젝트를 추진하면서 입찰 비리와 뇌물 등으로 국가 재정에 4000억바트(12조원)의 손실을 끼쳤다는 비판을 받고 있다. 탁신 일가 소유기업의 탈세를 비롯해 권력 남용, 국유지 헐값 매입 같은 의혹도 있다. 그러고도 탁신은 여전히 태국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정치인이다. 복권만 되면 당장에라도 총선을 통해 총리 자리에 복귀할 가능성이 크다.

▶탁신에 대한 열렬한 지지는 포퓰리즘 정책이 먹혀든 결과다. 그는 2001년 집권하자마자 모든 국민이 30바트(1100원)만 내면 기본 의료서비스를 받을 수 있도록 했다. 도시와 농촌 소득격차를 줄인다며 마을마다 100만바트(3700만원)를 나눠주고 농가 빚을 탕감해줬다. 이런 선심 정책의 후유증으로 의료의 질이 떨어지고 세금이 올라 중산층 불만을 샀지만 대신 농민과 저소득층의 마음을 확실하게 사로잡았다.

베네수엘라 차베스 정권도 마찬가지다. 석유 수출로 벌어들인 돈을 마구 뿌려 빈곤층의 환심을 샀고, 최근 대통령 연임 제한을 철폐하는 개헌안을 통과시키며 영구집권의 길까지 열었다. 이처럼 포퓰리즘은 정치인과 국민 모두에게 마약과도 같다. 한번 중독되면 몸이 망가진다는 사실을 뻔히 알면서도 좀처럼 끊기 어렵다. 포퓰리즘은 거의 예외 없이 경제파탄의 비극으로 끝을 맺었다는 게 역사의 교훈이다. 우리도 지난 정권이 뿌린 포퓰리즘의 독소를 경계하고 해독할 길을 찾아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