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천석·주필

세계 차원의 반(反)부패 캠페인을 벌이고 있는 '국제투명성기구(Transparency International·TI)'는 매년 각 나라의 '부패인식지수(CPI)'를 발표한다. 부패인식지수는 각국에서 사업하는 내외(內外) 기업인과 여러 분야 전문가들에게 그 나라의 공공 부문 부패 정도를 0에서 10까지 숫자로 점수를 매기도록 한 것이다. 10에 가까울수록 깨끗한 사회이고 0에 기울수록 냄새 나는 사회다. 2008년 한국의 '부패인식지수'는 5.6으로 세계 180국 중 40위였다. '부패인식지수'는 점수와 순위 못지않게 그 나라와 어울려 사는 동네 이웃이 누구냐에 의미가 있다. 한국보다 손위 동네 이웃은 푸에르토리코(36위) 보츠와나(공동 36위) 아랍에미리트(35위) 카타르(28위) 등이고 손아래 이웃은 오만(41위) 부탄(45위) 코스타리카(47위)다.

한국이 왜 아프리카·중동·남미·히말라야 산속 나라들마냥, 아니 그보다 더 썩어 문드러졌다는 거냐고 핏대를 올릴지도 모른다. 그러나 한국의 '국가 청결도(淸潔度) 평가'에 크게 반영되는 한국에서 사업하는 외국 기업인들의 느낌은 우리와 다르다. 화장실에 오래 앉아 있으면 코가 마비돼 구린내를 맡지 못하는 법이다. 부패를 감지(感知)하는 '외국 코'와 '한국 코'의 성능 차이도 여기에 원인이 있다.

요즘의 박연차 스캔들은 한국 특유의 풍토병(風土病)이고 5년이란 정권 교체 주기와 맞물려 거듭되는 계절병(季節病)이기도 하다. 어느 나라에든 큰 부패, 작은 부패가 있기 마련이다. 그러나 한 장사꾼이 놓은 쥐약을 먹고 탈이 나 전직 대통령의 형과 조카사위, 현직 대통령 친구, 전 정권의 장·차관, 전·현 정권의 대통령 수석비서관, 여야 국회의원, 공기업 회장, 판사·검사·경찰 고위 간부 등이 검찰의 수사 도마 위에서 바둥대고 있거나 머지않아 도마에 오를 거라는 소문에 공직 사회 전체가 덜덜 떨고 있는 이 나라 모습은 아무리 봐도 엽기적(獵奇的)이다. 검찰·법원·경찰 등 쥐를 잡으라고 길러온 나라의 고양이들이 쥐 먹으라고 놓았던 쥐약을 제 입에 털어 넣고 나뒹구는 장면은 코미디에나 나올 일이다. 대통령 민정수석비서관은 '대통령의 코'로서 부패 냄새를 남보다 먼저 맡아 그게 곯아 터지지 않도록 사전 조치하는 것이 임무다. 그 '대통령의 코'가운데 '전 정권 코'는 이미 구치소로 실려 갔고 '현 정권의 코'는 하루걸러 소문의 입방아에 오르고 있다.

노무현 전 대통령만큼 국민의 호·불호(好·不好)가 갈리는 대통령은 없다. 상당수 국민한테 그는 여전히 미운 털이 박혀 있다. 정책도 정책이려니와 남의 속 뒤집고 헤집고 엎어놓기 일쑤인 말 탓이 크다. "좋은 학교 나온 사람들이 힘없는 시골 노인에게 머리 조아리며…"라고 뇌물받은 형을 감싸면서 상대를 쥐어박던 5년 전 TV 속 말투가 꼭 그랬다. 그러나 '노(盧) 자'만 나와도 고개를 흔들던 사람 가운데 그가 이번만은 수사 과녁에서 무사히 비켜가기를 바라는 사람들이 생겨나고 있다. 갑자기 그가 예뻐져서가 아니다. 대한민국 대통령을 지낸 사람이 검찰에 불려가 조사를 받은 다음 호송차로 실려가는 모습이 세계 안방에 다시 비칠 때 대한민국과 대한민국 대통령 자리의 체통이 어떻게 되겠느냐는 걱정 때문이다. 전직 대통령이 국가 이미지와 수출 상품 브랜드 이미지에 또 한번 먹칠을 하는 사태가 벌어져선 안 되지 않느냐는 조바심이기도 하다. 요 며칠 이런 희망마저 바람 앞의 촛불처럼 가물가물 위태위태해지고 있다.

박 회장은 통이 컸다고 한다. 받는 쪽이 짐작한 액수의 몇 배를 쥐여줬다고 한다. 돈에 조건도 달지 않았다고 한다. 그의 돈을 받은 공직자들은 모두 그렇게 생각했다는 것이다. 그랬으니 덥석덥석 받아먹었을 것이다. 그러나 돈에 목숨은 걸어도 본전을 까먹는 거래는 죽어도 못하는 게 장사꾼 생리다. 박씨가 낚싯바늘에 꿴 미끼 가격은 모두 합해 200억원 정도다. 박씨는 그걸로 미끼값의 몇십 배가 훨씬 넘는 이득을 건졌다. 보통 남는 장사가 아니다. 그 와중에 GDP 9300억달러(2008년)의 대한민국이 200억원(현 환율로 1500만달러)의 뇌물 소동에 국가기능이 마비되다시피 되고 말았다. 북쪽 김정일 군사위원장으로선 구미가 당길지도 모른다. 미사일 발사비용의 5분의 1 가격으로 남쪽을 혼란의 도가니에 빠뜨릴 수 있다는 계산이 나오니 말이다.

'신령스러운 용은 맛있는 먹이를 탐내지 않고 기품 있는 봉황은 새장이 예쁘다고 제 발로 들어가지 않는다(神龍不貪香餌 彩鳳不入雕籠)'. 죽어 관(棺) 속에 누워서도 돈에 손을 내밀 정도로 돈이라면 사족을 못 쓰는 중국인이 스스로를 경계할 때 되새기는 속담이다. 용(龍)과 봉황(鳳凰)의 흉내를 내며 거드름을 피우다 쥐약 묻은 미끼를 삼키고 쥐덫에 갇히고만 대한민국 공직자들이 반드시 외워둬야 할 구절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