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연차 리스트'로 전·현 정권 인사들이 줄줄이 사법 처리되고 있다. 26일에는 여권(與圈) 중진으로까지 검찰의 손이 뻗쳤다. 검찰이 소환을 통보한 것으로 알려진 박진(서울 종로) 의원은 현재 국회 외교통상통일위원장이며 한나라당 차세대 후보군으로 꼽히던 중진 의원이다.

이와 함께 여권 내부에선 "박연차 리스트보다 정치적 파괴력이 더 큰 '정대근(전 농협회장) 리스트'까지 터지면 이번 사정(司正)의 파장이 어디까지 번질지 알 수 없다"는 불안감이 퍼지고 있다.

여권 핵심으로 다가가는 '박연차 리스트'

정대근 전(前)농협회장

박진 의원이 박연차 회장으로부터 금품을 수수한 혐의로 검찰 소환을 통보받았다는 소식이 전해지면서 한나라당은 이날 충격에 빠졌다. 박 의원은 여당 내 '외교통'으로 그동안 깨끗한 이미지의 정치를 해 온 인물로 평가받아왔기 때문이다. 특히 국회에서도 중요 상임위원회인 외통위 위원장을 맡고 있는 박 의원이기 때문에 검찰의 '칼'이 여권 내부 깊숙이까지 뻗치고 있다는 그동안의 소문이 사실로 드러났다는 점에서도 파문이 간단치 않을 전망이다.

이와 함께 박 의원 소환은 정치권에 소문으로만 떠돌던 '박연차 리스트'가 상당한 정확성을 갖고 있다는 반증(反證)이라는 점에서도 여권을 불안에 떨게 했다. 박 의원은 정치권에 떠돌던 '리스트'에서 K의원과 함께 "조만간 소환될 대상"으로 분류돼 왔다. 하지만 여당 의원들은 "서울이 지역구인 박 의원이 박 회장 돈을 받았을 리가 없다"며 "박 의원이 리스트에 있다는 것은 오히려 리스트에 관한 소문의 신빙성이 떨어진다는 증거"라고 말해왔다.

하지만 이 날 박 의원 소환이 알려지면서 "그렇다면 리스트가 전부 사실이라는 말이냐"며 "리스트에 거명된 다른 중진들도 모두 사실일 수 있다"고 앞으로 번질 파장을 우려했다.

"정대근 리스트도 있다"

여당에선 또 '정대근 리스트'에 대한 불안도 확산되고 있다. 정 전 농협회장은 서울 양재동 농협부지 부정 매각 혐의로 2007년 법정 구속된 뒤 박연차 태광실업 회장 등으로부터 세종증권 인수 대가로 수십억원을 받은 혐의로 작년 말 추가 기소돼 현재 수감 중이다. 작년 12월 노건평씨와 박연차 회장이 구속될 당시 정 전 회장 문제도 함께 터지면서 "정대근 리스트가 있다"는 말이 검찰 주변에서 나왔다. 그러나 이후 석달이 넘도록 '정대근 리스트'는 실체를 드러내지 않았다.

검찰은 작년 12월 수사 당시 "정대근 리스트는 없다"고 했다. 당시에는 박연차 리스트도 "없다"고 했었다. 하지만 결과는 지금 벌어지는 그대로다. 실제로 대검 중수부는 박연차 사건과 함께 정 전 회장 관련 자금의 흐름도 계속 수사해 왔다. 해외에 비자금 200만달러(약 30억원)를 조성한 사실도 밝혀냈다. 지금쯤이면 박연차 리스트 수사 정도의 결과물이 나와 있을 가능성이 큰 것이다.

정 전 회장은 정치권에서 마당발로 유명했다. 정치적 사건이 아닌 뇌물 비리사건으로 수감돼 있는데도 그를 면회한 정치인이 50명이 넘고, 두번 이상 면회한 정치인도 30명 정도나 된다고 한다. 이광재 의원도 면회자 명단에 있어서 작년 말에 의심을 받았지만 그때는 "금전거래는 없었다"고 했었다.

여권 관계자들은 "정대근 리스트는 야권(野圈)에 더 치명적일 것"이라고 '기대 섞인' 전망도 하고 있다. "PK를 기반으로 하는 박 회장과 달리 중앙 무대에서 활동했던 정 전 회장의 로비 대상은 지난 정권의 힘 있는 사람들 아니었겠느냐"는 것이다. 하지만 박연차 리스트에서 봤듯이 여권(與圈)도 정대근 리스트에서 자유롭지 않을 것이란 관측도 나온다.

정 전 회장 면회자 명단에는 여당 고위 관계자도 들어 있다. '정대근 리스트'를 경고한 여권 핵심 관계자가 "박연차 회장이 PK 정치권을 초토화했다면 정 전 회장은 중앙 정치판을 뒤흔들 것"이라고 한 게 예사롭지 않게 들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