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10년 3월 26일. (빗소리가 들린다) 이날은 아침부터 비가 내리는 추운 날씨였다. 안중근은 모친이 보내온 새하얀 명주 한복으로 갈아입고 옥중에서 조용히 (죽음을) 기다리고 있었다…."

뮤지컬 배우 정성화가 안중근 의사를 존경하는 일본인 승려 사이토 다이켄이 지은 《내 마음의 안중근》을 소리 내 읽었다. 99년 전 중국의 뤼순(旅順)감옥, 안중근 의사의 독방이 펼쳐지는 것 같았다. 청중은 숨을 죽였다. 빗소리가 커졌다.

그런데 처형을 눈앞에 둔 이 순간 안중근은 뭔가를 쓴다. 간수 지바 역을 맡은 배우 조한철이 "무엇을 하십니까" 묻자 안중근(배우 류정한)은 "동양평화에 대해 쓰고 있소"라고 답한다. "나는 두 주먹을 불끈 쥐고 한 손으로 이토를 쐈지만 내 아들들의 손은 기도하는 두 손으로 모아지길…."

안중근 의사 순국 99주기인 26일 오후 5시 서울 대학로 동숭아트센터. 문화체육관광부조선일보의 '책, 함께 읽자' 캠페인의 하나로 '안중근, 책 속의 그 남자를 만나다'라는 낭독회가 열렸다. 안중근을 주인공으로 한 뮤지컬 《영웅》(10월 26일 서울 LG아트센터 개막)을 제작 중인 에이콤이 주최한 행사로, 이 작품에 출연할 배우 류정한·정성화·조한철이 《내 마음의 안중근》《안중근 의사 자서전》《영웅》 대본에서 발췌한 내용을 낭독했다. 모두 검은 양복 차림이었다.

뮤지컬 배우 정성화·류정한·조한철(왼쪽부터)이 26일 안중근 의사 관련 낭독회에서 뮤지컬《영웅》의 삽입곡〈그날을 기약하며〉를 합창하고 있다.

낭독은 1909년 10월 26일 만주 하얼빈역에서 안중근이 이토 히로부미(伊藤博文)를 저격하는 장면으로 시작됐다. 음향 효과로 기차가 멈추는 소리가 들린 뒤 류정한이 읽었다. "…맨 앞에 누런 얼굴에 흰 수염을 가진, 일개 조그마한 늙은이가 염치없이 감히 하늘과 땅 사이를 횡행하듯 걸어오고 있었다. 저것이 필시 이토일 것이다. 나는 곧 단총을 뽑아들었다…." 탕탕탕 총소리가 울렸다.

비가 오락가락하는 날씨였지만 낭독회장에는 200여명이 모였다. 대부분 젊은 여성이었다. 대학생 오지영(여·24)씨는 "뮤지컬 배우들을 가까이에서 볼 수 있는 특별한 자리라서 왔는데, 안중근 의사와 나 자신에 대해 많은 것을 생각하게 한 시간이었다"고 했다.

질의응답 시간에 류정한은 "사실 안중근 의사에 대해 잘 몰랐는데 이번에 책을 읽으면서 가슴이 뜨거워졌다"고 말했다. 조한철은 "간수마저 안중근의 인간적인 모습에 감동해 존경했다는 것을 알고 나 자신이 부끄러워졌다"고 했다. 류정한과 함께 안중근 역을 나눠 맡을 정성화는 "대한민국 국민으로서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 안중근 의사를 통해 배우고 있다"고 답했다. 세 배우는 마지막 순서로 《영웅》에서 단지(斷指)동맹을 한 후 부르는 노래 〈그날을 기약하며〉를 합창했다.

"…바람이여 도우소서/ 우리에게 힘을 주오/ 기약돼 있는 그날을 위해/ 자 우리들의 외침 세상이 들으리라/ 민족의 울음/ 뜨거운 열정/ 사랑하는 조국을 위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