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0년 넘게 야구를 봤지만 이렇게 재미있는 게임은 처음이다."

연장 10회말 무사 1루의 마지막 찬스가 물거품이 된 뒤, 한 미국 기자가 기자에게 위로의 말을 건넸다. 하지만 결코 위로 인사만은 아닌 듯했다. 한국 대표팀은 이날 수많은 펀치를 허용하고도 쓰러지지 않았다. 맞으면 바로 매서운 카운터 펀치를 날려 일본의 간담을 서늘하게 만들었다. 비록 승부에서는 졌지만 전 세계 야구팬들에게 잡초처럼 쉬 꺾이지 않는 한국 야구의 저력을 보여줬다.

양상문 코치(오른쪽)가 홈런을 날린 추신수의 등을 두드리고 있다. 김성한(가운데)₩이순철(왼쪽) 코치도 손을 들어 환영했다.

경기 후 김인식 감독의 말처럼 한국은 이날 초반부터 일방적으로 몰렸다. 1회와 2회 두 차례 2사 1·2루 위기를 맞더니 결국 3회 2루수 고영민의 실책이 빌미가 돼 선취점을 빼앗겼다. 고영민은 무사 1루에서 일본의 3번 타자 아오키의 직선 타구를 글러브에 넣었다가 떨어뜨렸다. 1사 1·3루에서 오가사와라의 적시타로 1실점. 그러나 계속된 1사 만루 위기를 병살로 넘겼고, 5회엔 무사 1·3루 절체절명의 순간을 실점 없이 모면했다.

무사 1·3루에서 봉중근을 구원한 정현욱은 일본의 4번 타자 조지마를 삼진으로 돌려세운 뒤, 오가사와라마저 헛스윙 삼진으로 처리했다. 동시에 2루를 훔치려던 1루 주자 아오키까지 잡아내 가장 큰 고비를 넘겼다.

일본이 5회초까지 7개의 잔루를 남기며 득점 찬스를 계속 놓치자 한국에도 기회가 찾아왔다. 5회말 선두타자로 나선 추신수가 일본 선발 이와쿠마의 변화구를 걷어 올려 가운데 담장을 넘기는 통렬한 125m짜리 동점 홈런을 뿜어냈다. 그러나 1사 후 고영민이 좌익수 옆에 떨어지는 안타를 치고 2루까지 달리다가 일본 좌익수 우치카와의 정확한 송구에 아웃되면서 경기의 주도권을 쥘 수 있는 기회를 놓쳤다. 6회말 1사 후에도 이용규가 볼넷으로 출루했지만 2번 타자 이진영이 삼진으로 물러나면서 도루를 시도하던 이용규까지 횡사, 상승세가 꺾였다.

기력을 되찾은 일본은 7회 9번 가타오카, 1번 이치로, 2번 나카지마의 3연속 안타로 1점을 도망갔고, 8회초에도 1사 2·3루에서 이와무라의 희생타로 3―1을 만들면서 승세를 굳히는 듯했다.

하지만 한국은 끈기와 저력의 팀이었다. 모두 사실상 게임이 끝났다고 말했지만 한국의 젊은 선수들은 마지막까지 포기하지 않았다. 8회말 선두타자 이범호가 우중간 2루타를 치고 나간 뒤 1사 3루에서 대타 이대호의 희생플라이로 1점을 만회했고, 9회말 2사 1·2루에서는 이범호가 천금 같은 좌전안타를 터뜨려 동점을 만드는 데 성공했다.

비록 거기까지였지만 한국은 세계 최강 일본에도 결코 만만한 팀이 아니었다. 10회초 일본이 2사 2·3루에서 이치로가 임창용으로부터 중전 적시타를 뺏어내면서 WBC 우승 트로피는 다시 한번 일본팀에 전해졌으나 다시 한국팀과 마주치고 싶지 않은 것은 오히려 일본팀일지도 모른다.

일본은 한국(5안타)보다 세 배가 많은 15개의 안타를 때려냈다. 4사구와 실책 등으로 출루한 것까지 합하면 22―10이었다. 그런데도 일본은 14개의 잔루를 남기며 9회까지 3득점에 그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