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남표 효과'인가. 서남표 KAIST 총장이 무시험·면접으로 신입생 150명을 뽑겠다는 획기적 입시안을 발표한 이후 각 대학들이 '입학사정관제 전형'을 확대하는 등 공교육 살리기 입시제도를 속속 내놓고 있다.
11일 고려대와 한양대, 한국외대는 올해(2010학년) 입시에서 각각 전체 정원의 23.5%, 20%, 18.6%를 입학사정관을 통해 뽑겠다고 밝혔고, 홍익대는 단계적으로 미술 실기시험을 없애는 방안을 발표했다. 시험 점수 대신 입학사정관을 통해 학생의 인성(人性)·잠재력 등 정성적(定性的)인 요소를 평가, 선발하겠다는 것이다.
고려대는 입학사정관 전형으로 올해 886명을 뽑고, 이 중 450명은 일반고 학생만을 대상으로 학교장 추천을 받아 심층면접에 의해 무시험으로 선발하겠다고 밝혔다.
사교육 증가의 원인으로 지목된 수학·과학 경시대회 성적도 반영하지 않기로 했다. 고려대는 "고교 공교육을 정상화하기 위한 입시제도 개선팀을 구성하고, 입시제도를 지속적으로 개혁해 나아가겠다"고 밝혔다.
한양대도 올해 입시에서 입학정원(5201명)의 19.8%인 1031명을 입학사정관 전형으로 뽑겠다고 밝혔다. 이는 한양대가 지난해 입시에서 입학사정관제로 뽑은 인원(20명)의 50배에 해당하는 인원이다. 한양대는 "학업우수자 전형과 공학인재 전형 740명은 수능 성적을 반영하지 않고 고교 학생부만 반영해 선발하겠다"고 밝혔다.
홍익대는 미대 입시에서 학생들이 주로 학원에 의존하는 실기시험을 아예 없애겠다고 발표했다. 홍익대는 "올해 미대 자율전공 전형에서 실기고사를 폐지하고 다면심층평가로 대체한다"며 "실기평가를 활용하는 모집인원을 단계적으로 축소해 2013학년도에는 모든 미대 입시에서 실기고사를 완전히 없애겠다"고 밝혔다.
홍익대는 대신 고교 학생부 교과 성적과, 미술관련 비교과 활동을 비중 있게 평가하고, 미술 전문 입학사정관제를 도입해 심층 면접을 실시하겠다고 밝혔다. 심층면접에서는 '담임교사의 얼굴을 특징 있게 그려보라'는 식의 테스트를 실시할 수 있으며, 이를 통해 수험생이 미술에 열정과 재능이 있는지, 성적에 맞춰 지원했는지 가려 낼 수 있다고 홍익대는 밝혔다. 홍익대는 "제한된 주제와 소재, 기법에만 의지하는 종전 실기고사는 학생들에게 사교육 의존만 높였다"며 "학교 교육을 잘 받으면서 창의적인 인재를 뽑자는 취지에서 새 입시안을 만들었다"고 밝혔다.
이에 앞서 포스텍(포항공대)은 입학정원 300명 전원을, 성균관대는 전체 입학정원의 17.4%를 입학사정관을 통해 뽑겠다고 발표했다.
◆MB정부의 입학사정관제 드라이브
이 같은 대학들의 잇단 입시 개편은 지난 5일 서남표 KIAST 총장의 '개혁적 입시안' 발표가 도화선이 됐다는 분석이다. '사교육 잘 받은 학생보다 가능성 있는 학생을 뽑겠다'는 서 총장의 메시지는 큰 반향을 불렀고, 다른 대학들도 이 분위기에 동참해야겠다는 명분을 줬다. 여기에다 정부가 예산 지원이라는 유인책을 내놓았다. 교육과학기술부는 9일 입학사정관 제도를 도입하는 학교에 총 236억원을 지원하겠다고 발표했다. 대학들이 예산 지원을 받기 위해 입학사정관제 전형을 속속 확대하고 있는 것이다.
대입 자율화와 사교육비 감소라는 '두 마리 토끼'를 잡겠다고 나선 이명박 정부로서는 입학사정관제 전형이 해결책이라며 강한 드라이브를 걸고 있다.
대학들의 잇따른 입시 개혁안은 올해 대학입시의 큰 틀을 바꾸게 될 것으로 보인다. 고교 교육의 수요자인 대학들이 입학정원의 일부에 대해 '사교육 받은 학생 원하지 않는다'고 선언함에 따라, 학교 교육에 미치는 파급도 무시 못할 것이란 예상이다. 수능 점수 1~2점에 따라 합격·불합격이 좌우되던 대학입시의 패러다임도 변화하게 될 것이라는 분석도 있다.
하지만 우려의 목소리도 적지 않다. 너무 성급하다는 것이다. 입학사정관은 다년간 입시 경험을 통해 고교별 특징을 파악하고, 학생 심층면담을 통해 선발여부를 결정하는 전문가인데, 갑자기 입학사정관을 채용한다고 본래 취지대로 입학전형이 치러지기 힘들다는 분석이다. 특히 최근 발표한 대학들의 입학사정관제 전형이 작년에 치러진 입시에서 큰 틀의 변화가 없으면서도 이름만 입학사정관 전형으로 바꾼 경우도 있다는 비판도 있다.
입학사정관의 모델이 되는 미국 대학의 입학사정관은 대학입시의 처음부터 끝까지 관여하며, 합격·불합격을 최종 결정하는 전문가다. 반면 우리 대학들의 입학사정관제 전형은 입학사정관이 입시의 중간단계에 개입하는 정도다.
입학사정관제는 학교 교육을 정상화시키고 사교육 영향력을 줄일 수 있지만 너무 성급히 추진하다 보면 부작용이 확대 부각돼 본래의 취지를 잘 살릴 수 없을 것이라고 교육 전문가들은 지적했다.
입학사정관제
대학 입학 업무를 전담하는 전문가인 입학사정관(admissions officer)이 전형 과정을 총괄하는 입시. 입학사정관은 전국 고교의 특징을 파악해 정보를 축적하고 수험생이 제출한 자료를 평가하거나 현장조사를 통해 합격 여부를 결정한다. 내신과 수능성적 등 객관적 자료를 위주로 뽑는 일반 전형과는 달리, 입학사정관의 정성적(定性的) 평가로 합격을 가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