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2회 월드베이스볼클래식(WBC) A조 순위결정전 한국과 일본의 경기에서 역투중인 양팀 투수는 봉중근과 이와쿠마다.
한국에 잘 알려진 일본의 에이스는 마쓰자카 다이스케(보스턴 레드삭스)와 다르빗슈 유(니혼햄 파이터스)다. 그러나 지난 시즌 이와쿠마는 다르빗슈와 스타일이 다를 뿐, 부분적으로는 다르빗슈보다 더 좋은 기록을 보여주었다.
이와쿠마의 주무기는 1m90의 장신에서 나오는 강속구와 140㎞ 안팎의 고속 포크볼이다. 한국대표팀에게 있어 1991년 한일슈퍼게임 이후로 포크볼은 악몽이다. 지난 제 1회 WBC 준결승전에서도 한국 타자들은 우에하라의 포크볼에 크게 당한 바 있다.
◇파란만장한 야구 인생
1999년 긴데쓰 버팔로스에 지명된 이와쿠마 히사시는 2001년 후반기부터 리그에 데뷔, 1완봉을 포함한 4승 2패를 거두며 12년 만의 긴테쓰 우승에 일조했다. 이후 2003-2004년 포텐셜이 폭발, 2년 연속 15승을 기록한다. 특히 2004년엔 개막전 이후 선발 12연승을 거두는 등 다승 1위, 승률 1위(15승 2패)로 최우수투수에 선정되는 등 NPB 최고의 에이스 대접을 받았다. 같은 해 열린 아테네올림픽에도 국가대표로 출전했다.
그러나 모기업의 재정 문제 때문에 소속팀인 긴데쓰가 오릭스에 합병되면서 암흑기가 시작됐다. 이치로의 스승으로 유명한 오릭스의 오오기 아키라 감독이 긴테쓰-오릭스 합병 당시 이와쿠마를 원했지만, 그는 가족이 있는 지역을 떠나는 것을 원하지 않았다. 은퇴를 불사하겠다며 오릭스행을 거부한 이와쿠마는 결국 현금트레이드 형식으로 신생팀 라쿠텐으로 이적, 최약체팀의 에이스를 자처하며 메이저리그에 진출할 생각도 없음을 밝혔다.
하지만 이후 이와쿠마는 한동안 슬럼프에 빠졌다. 05년 9승 15패에 그친 이와쿠마는, 06년에는 이중모션 투구 금지규정에 의해 바꾼 투구폼에 적응하지 못하면서 2년간 118이닝을 던지는데 그쳤다.
◇부활
이와쿠마는 지난해 부활했다. 21승 4패 방어율 1.87로 다승-승률-방어율 1위를 차지하며, 20년만에 리그 3위 미만 팀에서 나온 최우수 선수가 됐다. 201.2이닝을 던지면서 피홈런은 단 3개였고, 골든글러브 투수부문을 다르빗슈에게 내줬지만 대신 사와무라상을 수상했다. 다르빗슈 유가 16승 4패, 탈삼진 208개, 방어율 1.88, 완투 10번으로 사와무라상의 모든 조건을 채운 반면 이와쿠마는 작년 완투 5개에 그쳤지만, 자격요건을 채운 것보다 23년만에 20승을 넘긴 것이 중요했는지 사와무라상 위원회는 이와쿠마를 선택했다.
이승엽, 이병규 등 한국 선수들의 진출로 이미 한국 팬들에게도 익숙한 일본프로야구인데, 왜 이런 선수가 유명하지 않을까?
첫째로는 두 선수가 없는 퍼시픽리그의 선수라는 점이고, 둘째로는 꼴찌팀 라쿠텐 골든이글스의 에이스이기 때문이다. 한국야구를 전혀 모르는 상황에서 플레이오프에 오르지 못했지만 시즌 MVP라는 소개가 붙은 2005년의 손민한과 마주친 상황과 같다. 최하위팀을 지탱하는 거목, 그가 이와쿠마다. 그의 전 소속팀이었던 긴테쓰 역시 비인기팀으로 유명했다.
봉중근은 메이저리그 경험도 있고 청소년대회 MVP출신인 만큼 이와쿠마보다는 유명한 요소가 있지만, 소속팀인 LG는 올 시즌 8위였다. 일본 팬들은 봉중근에게 눌리는 일본 대표팀을 보며 “2년 연속 1위팀의 에이스를 난타했는데 8위팀 에이스에게 무득점이라니!”라고 반응하고 있을지도 모른다.
◇사와무라상
일본의 전설적인 투수 사와무라 에이지를 기리기 위해 만든 상.
미국의 사이영상과 비슷한 성격이지만 사이영상이 매년 수상자를 가리는데 비해, 사와무라상은 심사위원회가 판단해 적합한 선수가 없을 경우 뽑지 않을 수 있다.
사와무라상의 자격요건은 15승, 탈삼진 150개, 방어율 2.50 미만, 200이닝, 25경기, 10완투, 승률 6할 이상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