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남표 KAIST 총장은 대학개혁의 아이콘(상징) 같은 존재다. 2006년 취임 이후 캠퍼스발(發) 혁신을 주도해 온 서 총장이 이번엔 '학원에 다니지 않은 인재'를 뽑을 수 있는 파격적인 입시안을 내놓았다.

서 총장이 5일 발표한 개혁안의 요지는 당장 학력 수준이 높지 않아도 잠재력 있는 인재를 뽑겠다는 것이다. 서 총장은 올해 입시부터 ①150명(정원의 16~18%)을 일반계 고교 출신자를 시험 없이 심층면접으로만 선발하고 ②각종 경시대회 수상 실적은 전형에서 반영하지 않겠다고 밝혔다.

이렇게 되면 학원에 다니지 않은 일반계 고교 졸업자가 선발될 가능성이 지금보다 높아진다. 지금은 KAIST 입학생의 절대다수가 과학고·외국어고 졸업생이다.

서 총장은 기자간담회 및 본지와의 전화 인터뷰를 통해 "학원에 다니지 않아도, 지금은 눈에 띄지 않아도, 잠재력 있는 인재들은 얼마든지 있다"며 "KAIST는 앞으로 이런 '보석 같은 인재'를 발굴해 교육시키겠다"고 말했다.

"최근 조선일보에서 '학교, 사교육 이길 수 있다'는 기획기사에서 언급했듯이 교장과 교사의 열정이 학교를 바꿀 수 있다고 생각한다. 경제적으로 어려운 이 시기에 공교육을 살리는 데 온 국민이 동참해야 하며, 이런 큰 변화는 궁극적으로 대학입시에서 뒷받침해줘야 한다."

서 총장은 "앞으로 카이스트에 (사교육을 받지 못한) 더 다양한 학생들이 입학하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사교육과의 전쟁'을 선언한 것이다.

"경시대회 수상 실적도 반영안해"

그는 "올해 입시에서 KAIST는 학교장에게 성적과 상관없이 창의성과 리더십이 있는 과학기술 분야의 열정 있는 학생 1명씩 총 1000명을 추천하도록 요청하겠다"며 "이후 입학사정관들이 직접 학교를 방문해 담임교사, 학생 등과 만나 300명을 거르고 심층면접을 거쳐 신입생을 선발하겠다"고 말했다. 특히 이 중 30명은 농·산·어촌 학생과 저소득층 학생을 선발하겠다고 서 총장은 말했다. 서 총장은 "심층면접은 사교육으로 준비할 수 없는 방법으로 치르겠다"고 강조했다.

서 총장은 입시용으로 변질한 경시대회도 올해부터 입시에서 제외하겠다고 말했다.

"수학·과학경시대회가 학생들의 지적(知的) 도전을 자극하는 긍정적 측면이 있지만, 학원에서 이를 이용해 학생들의 선행학습 붐을 일으키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 선행학습으로 상을 받은 학생들이 20년 후의 대한민국을 이끌 인재라고 나는 생각하지 않는다."

그는 "KAIST는 선행학습을 잘 받은 학생이나 경시대회에서 상을 받은 학생보다, 사교육을 받지 않아도 잠재력과 창의성이 있는 학생을 환영한다"고 말했다. 최상위권 학생들이 고난도의 문제를 푸는 수학·과학 경시대회는 학원가(街)의 주특기인 '기계적 반복학습'에 점령당했다는 지적을 받아왔다.

"사교육이 무슨 교육이냐"

서 총장은 공룡화된 사교육에 대한 '거부감'도 강하게 드러냈다. "경제위기로 학부모들이 어려움을 겪고 있는데, 국가를 위해 필요하지 않은 사교육이 학생과 학부모들의 부담을 가중시키고 있다. 학원 수업은 시험만 잘 보기 위한 지식을 가르치고 학생들 스스로 생각하게 하는 교육을 하지 못한다."

그는 "MIT의 경우 1000명 모집에 SAT 만점 받은 학생이 1600명 정도 지원하지만 합격자를 보면 400명 정도만 만점이다. 점수만으로 뽑는 입시는 바람직하지 않다"고 말하기도 했다. 그는 평소 주변 사람들에게도 "사교육이 무슨 교육이냐"고 자주 비판적으로 이야기했다고 한다. 이 같은 KAIST의 새 입시안이 다른 대학의 입시 전형에도 파급될지가 주목된다. 서 총장은 또 KAIST 부설 한국과학영재학교(부산소재) 선발방식도 바꾸겠다고 밝혔다.

서 총장은 "입학사정관제를 영재학교에도 도입해 농어촌의 잠재력 있는 학생을 정원의 10%까지 선발하겠다"면서 "올해 입시에서 경시대회 성적 반영비율을 대폭 낮추고, 내년부터는 이를 일절 반영하지 않도록 하겠다"고 밝혔다.

서남표 총장은

서울사대부고 2학년 때 미국으로 이민가 공학 분야의 세계적 석학이 됐다. 매사추세츠 공대(MIT)를 나와 이후 36년간 MIT 교수로 재직했다. 2006년 7월 KAIST 총장에 취임한 이후, 정년이 보장된 교수들을 탈락시키는 등 공격적인 개혁 프로그램을 추진해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