절창(絶唱)의 모험은 나직했다. 4년 만에 14집 앨범 '사랑아…'를 들고 돌아온 가수 이선희(45). 가장 인상적인 건, 폭발하지 않는 그녀다. 꾹꾹 눌러 담은 소리를 노래 어딘가에서 목이 터져라 쏟아내던 그녀가, 이번에는 그 소리들을 어르고 달랜다. 그리고 읊조리듯 조용히 세상에 흘려보낸다.

"3~4년 전만 해도 내지르고 싶은 기운이 통제가 잘 안 됐었죠. 그런데 이제는 정말 저다운 곡을 부를 때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생활 속 저는 전혀 에너지 넘치는 사람이 아니거든요. 50대, 60대가 돼서도 무대에서 '아름다운 강산'을 부를 수는 없는 노릇이잖아요."

4년 만에 14집 앨범을 발표한 가수 이선희. 그는“이번에는 힙합 뮤지션과 함께 작업했지만 다음번에는 인디 록밴드와 함께 하고 싶다”며“후배들의 발랄한 기운을 나누고 싶다”고 말했다.

지난달 27일 강남구 청담동 소속사 사무실에서 통기타를 조율하는 그녀를 만났다. 원로가수 백설희의 '봄날은 간다' 얘기로 인터뷰가 시작됐다. "몇 년 전 노래방에서 10여명의 지인을 앞에 두고 이 노래를 불렀는데 3~4명이 갑자기 눈물을 뚝뚝 흘렸다"며 "그때 제 노래의 갈 길을 깨달았다"고 했다. 이선희는 이 앨범의 모든 노래를 직접 작곡했다. 힙합 뮤지션 타이거JK와 함께 작업한 '유 투(You Too)'를 제외하면 작사도 모두 그의 몫. 사랑의 떨림과 인생에 대한 관조가 묘하게 뒤섞여 있다. '어디로 갈지 모르지만 사랑 그 자체가 좋다'는 네번째 곡 '사랑 그 자체가 좋다' 후렴구는 이 앨범의 정서를 집약한다.

타이틀곡 '사랑아'는 왈츠 리듬에 차분한 포크의 정서를 얹어낸, 가장 '이선희답지 않은' 노래. 이선희는 "이 노래들이 그냥 저라고 보시면 된다"고 했다. '유 투' 또한 허를 찌른다. 타이거JK의 직설적이고 강렬한 랩과 이선희의 차분하고 감성적인 노래는 애써 접점을 찾으려 하지 않고 제 갈 길을 간다.

"그동안 제가 듀엣곡을 못 불렀어요. 다른 가수들이 저랑 함께 노래하면 '질 것'이라는 생각에 참여를 꺼렸거든요. JK한테 그랬어요. '내 보컬이 죽어도 된다. 네가 마음껏 해줬으면 좋겠다'고."

이선희는 2006년 말 갑작스러운 결혼 발표와 함께 미국으로 떠났다. "대학에서 어학 코스를 밟았는데 매일 아침 9시에 학교에 가서 오후 5시가 되면 하교하는 생활이 반복됐다"며 웃는다. "사실 그때는 당시 중학교 1학년이었던 저희 딸이 유학을 고집해서 떠나게 된 거예요. 초등학교 5학년 때 미국 뉴욕으로 서머스쿨을 다녀온 뒤부터 '유학 타령'이 이어졌죠. 아이 따라 미국으로 간 겁니다."

"사업을 하는 지금 남편과는 지인 소개로 만나 딸 유학 상담을 하면서 친해졌다"고 했다. 현재 같이 귀국해 충실히 외조를 하고 있다고. "2년 반 동안 제가 자신에게 충실했다는 것을 인정하기 때문에 저를 도와주고 있는 거죠."

이제 이선희도 40대 중반. "20대 시절 늘 다른 사람이 최고라는 생각에 화가 났었다"는 그녀는 "지금은 내가 무엇을 갖고 있는지 정확히 알고 있어 좋다"고 했다. 그러나 지금도 그녀가 부러워하는 보컬은 있다. 타이거JK의 아내 윤미래. "함께 식사하면서 '내가 갖지 못한 네 느낌을 보면 마음이 아프다'고 했어요." 그럼 20대 시절 그녀를 절망시킨 보컬은 누구? 그룹 '시나위' 출신 로커 임재범이다. 이선희는 오는 4월 1~5일 서울 코엑스 오디토리엄에서 14집 발매 기념 콘서트를 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