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이 심상치 않다. 김정일(67) 국방위원장이 작년 8월 뇌졸중으로 쓰러졌지만 후계구도는 여전히 불투명하다. 먹고사는 문제를 스스로 해결하지 못하는 경제난은 15년째 계속되고 있다. 전문가들은 "통일은 우리가 원하지 않는 시기에, 원하지 않는 방법으로 벼락처럼 닥칠 수 있다"고 말한다. 그러나 과거 우리 정부의 대북정책은 '평화 공존'이란 이름으로 한반도 분단을 관리하는 수준에 급급했다는 평가다. 한반도선진화재단(이사장 박세일 서울대 교수)과 조선일보의 공동 기획 '2009 한국, 어디로 가야 하나'는 '분단 관리에서 적극적인 통일 준비로'를 세번째 주제로 정했다. 9명의 남북문제 전문가들은 두 차례의 토론에서 통일을 위해 무엇을 해야 하고, 한반도 급변시 어떻게 대응해야 하는지를 진단했다.

지난 1994년 통일연구원의 국민의식 조사 때 '통일이 필요하다'는 의견은 91.6%에 달했다. 그러나 2007년 서울대 통일연구소 조사 결과에선 그 수치가 63.8%로 줄었다. 반면 '통일이 필요 없다'는 주장은 1994년 8.4%에서 2007년 15.1%로 늘었다. 김대중·노무현 정부를 거치면서 대북 지원은 찬성하면서도 통일은 애써 외면하거나 터부(Taboo)시하는 분위기가 확산된 것이다. 심지어 통일을 두려워하기도 한다. 언제 닥칠지 모를 통일을 준비하고 통일에 대한 국민적 합의를 이끌어내려면 '통일 터부'와 '통일 공포'부터 극복해야 한다.

①통일 비용은 감당할 수 있다

20년 전 독일 통일은 우리도 통일을 할 수 있다는 희망과 함께 통일 비용에 대한 공포를 불러왔다. "수백조원이 들어가는 엄청난 통일 비용 때문에 남북한이 같이 망할 것"이란 식의 주장이 떠돌고 있다. 특히 세계적 금융 위기를 겪으면서 이런 주장은 더욱 기승을 부리는 분위기다.

그러나 남한이 국민총소득(GNI) 기준으로 36분의 1 규모인 북한 경제를 감당하는 것은 크게 어렵지 않을 것이란 분석이다. 남한 GNI의 1%는 북한 GNI의 36%에 해당하기 때문에 독일 통일 과정에서의 시행착오를 참고하면 오히려 적은 비용으로도 난국을 극복할 수 있다. 수백조원의 통일 비용이란 북한 주민의 살림살이를 일시에 남한의 70~80% 수준까지 끌어올리는 돈이다. 그러나 통일 직후 남북한 경제 격차를 10년 내 없앤다는 가정 자체가 허구다. 현재 서울과 지방, 강남과 강북 간에도 경제 격차는 존재한다. 극단적으로 비용을 줄인다면 북한 주민이 1년 생존에 필요한 쌀과 옷, 약품만 있어도 통일은 가능하다는 관측이다.

②통일 이익이 비용보다 크다

또 통일에 따른 이익이 그 비용보다 더 클 것이란 분석이다. 먼저 통일 비용은 북한 주민들의 소득 향상과 산업 발전을 가져오고 이는 다시 남한 상품에 대한 구매력을 높이게 된다. 북한 개발 과정에서 수백만개의 일자리가 창출될 것이며, 북한 경제가 활성화하면 세입(歲入)이 늘어나 남한의 통일 비용 부담도 줄어들 것으로 보인다. 체제 홍보비 등 분단 비용도 아낄 수 있다. ▲국제사회 위상 제고 ▲전쟁 위험 감소 ▲이산가족 문제 해결 등 비경제적 이익도 크다. 통일 비용은 '밑 빠진 독에 물 붓기'가 아니라 한반도 미래를 위한 투자인 셈이다.


③탈북 난민 혼란은 없을 듯

통일이 되면 탈북 난민(難民)들이 대거 남쪽으로 내려와 치안(治安)이 불안해질 것이란 우려가 있다. 그러나 남한의 탈북자들은 "김정일 체제가 바뀌면 다시 북으로 올라갈 것"이라며 "먹고살 수 있으면 왜 내려오겠느냐"고 반문한다. 북한 주민들의 생계 대책을 마련해주고 집을 떠나지 않아야 토지 등 재산권을 준다고 할 경우, 대규모 탈북 사태는 없을 것이란 관측이다. 또 통일이 되더라도 지금의 휴전선은 당분간 유지될 것이다. '부부 싸움'이 무섭다고 결혼을 무한정 미룰 수는 없다.

④대북 지원이 통일은 아니다

우리가 먼저 북한을 지원하면 북한이 따라 변할 것이고 남북관계도 점진적으로 개선돼 언젠가는 통일이 될 것이란 대북 접근법이 유행했다. 남북관계가 유럽 국가들이나 미국·캐나다 사이처럼 발전하면 그것이 '사실상의 통일'(De facto unification)이라는 것이다. 그러나 이런 주장은 분단을 고착화할 수 있고 '진짜 통일'을 두려워하는 데서 비롯된 것이란 비판이 제기된다. 또 북한처럼 정권이 분배 수단을 장악하는 체제에서 외부 지원은 정권의 주민 통제만 강화할 뿐이란 지적도 있다. 기존의 남북 경협은 경제성보다 지원의 성격이 강했다는 평가다. 개성공단 화물열차(봉동~문산)의 경우, 북한 봉동에는 역(驛)도 없고 실어 나를 화물도 충분하지 않은데 남북 간 합의가 이뤄져 '빈 열차'가 남북을 왕복했다. 대북 지원이 북한 붕괴를 늦출 수는 있겠지만 그것이 '통일 정책'은 아니다.

⑤통일 터부가 안보불감증으로

최근 북한이 '남한과의 전면 대결 태세'를 선언하고 장거리미사일 발사 등 도발 움직임을 본격화하고 있지만 우리 국민은 지나칠 만큼 걱정을 하지 않는 모습이다. 호들갑을 떨 필요는 없지만 당면한 안보 위기 상황에서 관심조차 보이지 않는 것은 문제라는 지적이 많다. 이는 지난 10년간 북한을 자극할 수 있다는 이유로 통일을 직접 거론하지 않고 남북 교류·협력만 강조한 데서 비롯됐다는 분석이 나온다. 그동안 남북 교류·경협이 활발해지면 북한이 절대 도발하지 못할 것이란 목소리가 컸다. 그러나 최근 긴장 국면은 북한이 마음만 먹으면 교류·협력과 별개로 언제든 남한을 공격할 수 있다는 사실을 보여준다. 지난해 북한은 이른바 '통민봉관(通民封官·민간과 대화하면서 정부를 따돌림)' 전술로 민간으로부터 경제적 이익을 얻으면서도 남한 정부를 압박하는 효과를 거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