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이 사람을 죽이는데 꼭 이유가 있어야 합니까?"2006년 12월 13일부터 2008년 12월 9일까지 약 2년 사이에 경기 서남부 지역에서 부녀자 7명을 살해한 경기 서남부 연쇄살인범 강호순이 자신의 범행을 자백한 직후 밝힌 살인동기였다. 영화 의 연쇄살인범 조규환(이성재 역)이 했던 말이라고 설명을 덧붙이기까지 했다.
강호순을 검거하고 조사한 경기지방경찰청 광역수사대 前(전) 강력수사팀(수원 서부경찰서 형사계장 발령)의 李正達(이정달) 경감은 “진술은 조리 있게 하는데 범행동기를 물으면 ‘이유 없다’는 말만 반복했다. 범행동기가 없으니 조사하는 내내 답답했다. 왜 그가 극악한 살인마가 되었는지 밝혀내지 못한 채 미스터리로 남았다”며 아쉬움을 표했다.
강호순의 진술을 토대로 유추해 보면 그가 평범한 인간에서 살인마로 돌변한 이유는 네 번째 결혼한 아내의 죽음과 연관이 있다. 알려진 대로 강호순의 네 번째 아내는 2005년 10월 30일 일어난 장모 집 火災(화재)로 사망했다. 숨진 아내의 명의로 4건의 보험을 들었던 강호순은 4억800만원의 보험금을 수령했다.
강호순에게서 연쇄살인 자백을 받아낸 경기지방경철청 광역수사대 강력수사팀 韓春植(한춘식) 경사는 “화재사건 이후 주변에서 의심을 받아 스트레스가 심했고, 화재사건으로 6개월간 조사를 받으면서 불면증과 우울증이 생겨 1년간 방황했다고 한다. 그 무렵 강의 큰아들이 친구들과 어울려 사고(오토바이 절도)를 치면서 점차 분노가 쌓여가기 시작했다는 것이 강의 주장”이라며 “이외에 강이 살인을 시작한 직접적인 동기는 밝혀진 것이 없다”고 말했다.
그렇다면 인간 강호순은 어떤 인물일까. 강호순이 연쇄살인 행각을 털어놓기 앞서 자백의 대상으로 지정했던 한춘식 경사와 열흘간 조사했던 수사팀의 얘기를 종합해 봤다. “본인 입으로 자신을 사이코패스라고 하더군요. 왜 그렇게 생각하느냐고 물었더니 TV에서 사이코패스에 대해 방영하는 것을 봤는데, 자기가 사이코패스의 특징을 많이 가지고 있다는 겁니다. 용의자로 처음 데려왔을 때는 ‘이 사람이 정말 연쇄살인을 했을까’ 싶었습니다. 용의선상에 올라 조사를 하면서도 ‘이 사람이 범인이다’ 하는 확신이 들지 않았어요. 범죄형 인상이 전혀 아니었어요. 조사하면서 느낀 것은 화술이 무척 뛰어나다는 것이었습니다. 감정 기복이 없고, 목소리 톤도 항상 일정했어요. 완전범죄를 꿈꾸었다지만 지능이 뛰어난 편은 아니었습니다.”
강호순은 2006년 12월 13일 첫 범행을 준비할 때부터 살인을 목적으로 했다고 한다. 그는 군포시 산본동에 소재한 노래방에 들어갈 때부터 타인의 시선을 피하기 위해 모자를 쓰고 최대한 얼굴을 가렸다. 그리고 노래방에 들어온 도우미와 노래 한 곡을 부르고 한 시간 내내 대화만 했다고 한다. 대화 끝에 그가 “술 한잔 더하자”고 하자 피해 여성이 순순히 그를 따라나섰다고 한다. 강호순은 세 명의 도우미 여성들에게 비슷한 수법으로 접근해 유인해냈다고 진술했다. 한춘식 경사의 말이다.“네 번째 피해자인 조선족 여인이 암매장된 곳은 골프장이 들어서 시신을 찾지 못했는데, 강호순은 그 조선족 여인과 상당히 호의적인 관계를 맺었던 것으로 보입니다. 둘이 식사하고 차를 마시면서 많은 이야기를 했다고 해요. 본인도 피해자 중 가장 기억에 남는다고 하더군요. 그래서 ‘그럼 죽이지 않을 수도 있었던 것 아니냐’고 물었더니 ‘처음부터 오늘은 누구를 만나도 죽인다는 생각을 하고 있었기 때문에 그냥 죽였다’고 하더군요. 보통의 상식으로는 납득이 되지 않는 범죄자였습니다.”
“그의 말 중 믿을 수 있는 것은 사건 내용뿐”
강호순은 살인 계획을 세운 날에는 반드시 실천에 옮겼다고 한다. 일곱 번의 살인을 하는 동안 이미 집에서 나오면서부터 살인을 계획했고, 한 번도 실패한 적이 없었다고 진술했다. 그는 평소에 군포•안양 지역의 무도장에서 즉석만남을 갖고, 노래방에서 도우미를 불러 놀곤 했지만 항상 살인을 저지른 것은 아니었다. 한 경사는 "스트레스를 많이 받거나 일이 뜻대로 되지 않을 때 범행을 저질렀던 것으로 추측되지만, 어느 때 살인충동을 느꼈느냐는 질문에 강은 '설명할 수 없다'는 말만 반복했다"고 전했다.
강호순의 신문에 참여했던 경찰청 과학수사센터의 프로파일러(범죄심리분석관) 權一容(권일용) 경위는 이렇게 말했다. "강호순의 말 중에 믿을 수 있는 것은 사건 내용뿐입니다. 그는 거짓말에 능숙해요. 자신의 외모와 고급 승용차를 이용해 여성들이 자발적으로 차량에 탑승하도록 유인했다는 강호순의 진술은 거짓입니다. 피해자들의 휴대전화가 모두 꺼져 있었던 것으로 미루어 아주 짧은 시간에 강력한 물리력을 동원해 피해자를 제압했을 가능성이 크죠."
강호순은 1970년 충남 서천의 농촌마을에서 5남매 중 둘째로 태어나 고향 인근에서 초•중•고교를 졸업했다. 정남규나 유영철 등 다른 연쇄살인범들과 달리 그의 성장 과정에는 '불우한 가정환경이나 폭력적인 학대 흔적'이 없다. 강호순은 경찰조사에서 "아버지는 엄격했지만, 이유 없이 체벌한 적이 없다"고 진술했다. 가정형편도 "富農(부농)은 아니었지만 시골에서는 먹고 살 만큼의 전답을 부치고 살았고, 가족 간의 갈등도 없었다"는 것이 고향마을 사람들의 증언이었다. 그의 행적 어디에서도 살인마가 될 특이사항은 발견되지 않았다.
권일용 경위는 “강호순은 다른 연쇄살인범들과 다른 유형의 인물”이라며 이렇게 말했다. “강호순은 유영철, 정남규와 달리 말수가 적고 자기 통제에 능숙했다. 피해자들을 완벽하게 제압할 수 있을 때까지는 살인마의 본색을 숨길 정도로 통제력이 강했다. 지능적이고 계획적인 완전범죄를 추구했다.”
강호순과 다른 연쇄살인범들의 공통점이 전혀 없는 것은 아니다. 살인이 거듭될수록 범죄학습효과가 늘어 더욱 대담해졌다는 점에서 그렇다. 강호순의 범행 수법은 여성을 성폭행한 후 스타킹으로 목 졸라 살해하는 일정한 패턴을 가지고 있다. 살인이 반복되면서 피해자의 휴대폰 전원을 끄는 시간이 단축됐고, 마지막 피해자인 군포 여대생의 경우 살해하기 전 신용카드 비밀번호를 알아내 돈을 인출하기도 했다. 또 증거인멸을 위해 암매장에 앞서 피해자의 손가락 끝을 훼손하기도 했다.
대부분의 사이코패스 범죄자들이 그렇듯 강호순도 이기적인 범죄자의 모습을 수사 과정에서 드러냈다. 그는 자신을 처음 조사했던 한춘식 경사를 지목해서 연쇄살인 행각을 자백했다. 범인들이 자신을 잡은 형사에게 친밀감을 느끼는 것은 일반적이다. 하지만 강호순의 경우 자신의 입장을 이해해 주고 자신을 편안하게 해 줄 사람을 찾았다고 한다. 한춘식 경사의 말이다."강호순이 체포됐을 때 우리는 두 팀으로 나뉘어 증거들을 들이대며 범행사실 일체를 자백하도록 유도했습니다. 한 팀은 강하고 위압적인 분위기를 연출했고, 다른 한 팀은 인간적인 친밀감으로 접근했지요. 후자였던 저는 농담처럼 강에게 '여대생 안모 말고도 살해당한 사람이 더 있다는 것을 알고 있다. 증거도 다 확보됐으니 마음이 결정되면 언제든 말하라'고 했어요. 그랬더니 바로 다음날 모두 자백을 하더군요. 제가 잘해줬으니 저한테 말하면 아무래도 편할 것 같다고 생각한 모양입니다."
인세 운운은 와전된 것
자신이 저지른 범행에 대해 뉘우침이 없는 강호순이었지만 가족이 고통을 받게 되는 것에는 민감하게 반응했다. 죄의식 없이 사람을 죽인 연쇄살인범이 자신의 가족을 걱정하는 모습은 이중적이면서 이기적이었다. 특히 두 아들에 대한 父情(부정)은 각별했다고 한다. 강호순은 경찰조사 과정에서 “살인자의 아들이 될 수는 있지만 살인자 아버지는 되고 싶지 않다”는 말을 했다.
강호순은 자서전을 써 인세를 자식들에게 주겠다는 발언으로 국민의 公憤(공분)을 샀다. 수사 관계자에 따르면 이는 와전된 것이라고 한다. 당시 강호순 심문에 참여한 한 형사의 말이다. “심문 도중 강호순이 아들 얘기를 많이 했습니다. 그래서 우리 중 누군가가 ‘그렇게 아들을 위한다면서 이런 짓을 벌였냐. 아들을 위해 책이라도 써서 인세라도 받게 하라’고 했더니 강호순이 ‘그런 방법도 괜찮겠다’고 했는데, 이 말이 언론을 통해 잘못 알려졌습니다. 강호순은 책을 쓸 만큼 知的(지적) 수준이 높지도 않아요.”
2008년 1월 맞선 본 당일 성폭행한 혐의로 입건됐다가 풀려났다는 일부 언론의 보도도 사실과 다른 부분이 있다. 맞선 본 당일이 아니라 5~6회 정도 더 만난 뒤에 성폭행을 했다는 것이다. 독신자 모임에서 만난 여성을 6시간 동안 감금했다 풀어주었다는 이야기도 첫날이 아니라 2회 정도 더 만난 후 생긴 일을 잘못 보도한 것이라고 한다.
강호순은 수사팀에게 “저는 이제 사형을 받게 되겠죠. 제가 죽인 사람들 때문에 올라가도(죽어도) 편치 않을 겁니다”라는 회한의 말을 하기도 했다. 그런 말을 하고 얼마 안 있어 수사팀에 농담을 건네기도 하는 등 종잡을 수 없는 성격의 소유자였다. 한 경사의 말이다. “사형 운운하면서도 강호순은 수사를 받는 도중 점심을 먹을 때면 면은 몸에 좋지 않다며 주로 김치찌개와 된장찌개를 시켜 먹었어요. 어쩔 수 없이 중국집에 주문해야 할 때도 볶음밥을 먹을 정도로 건강을 챙겼습니다. 한마디로 자기 몸을 끔찍이 생각하는 스타일이었어요.”
중구난방의 성격건강에 집착하는 그의 모습은 평소의 생활에서도 드러났다. 그는 술•담배를 전혀 입에 대지 않았다. 또 TV에서 녹차가 몸에 좋다는 말이 나오면 하루에 대여섯 잔씩 녹차를 마시다가도 어느 날 녹차의 어떤 성분이 해롭다는 보도를 접하면 그 순간부터 입에도 대지 않았다고 한다.
강호순의 연쇄살인에는 동기도 없지만 범행 대상에 대한 규칙성도 없다. 살인이 반복되다 보면 일정한 공격 지침이 만들어지는데, 강호순은 20세에서 환갑에 가까운 여성들까지 범행 대상이 무차별적이었다. 외모나 직업적으로도 공통분모를 추출할 수 없을 정도로 중구난방이었다. 성적 욕구를 채우기 위해 살인을 벌인 것도 아니다. 피해여성들 상당수에게 성폭행을 시도했지만 섹스가 목적은 아니었다고 한다.
검거 당시 강호순은 세 명의 애인과 지속적인 관계를 맺고 있었다. 강호순은 경찰 진술 과정에서 “군대에 갔다 온 후 많은 여성들과 사귀었다”고 진술했다. 한춘식 경사는 “강호순은 ‘한 시간만 대화하면 여성들의 호감을 얻어낼 자신이 있다’고 큰소리쳤고, 여자 이야기가 나오면 눈빛이 달라졌으며 말도 많아졌다”고 전했다.
강호순은 총 네 번 결혼했다. 그는 충남 부여에 있는 고교를 졸업한 후 경기도 안산에 정착, 스물한 살 때인 1992년 첫 번째 부인을 만나 결혼했다. 그는 첫 번째 부인과의 사이에 15세, 13세 된 두 아들을 두었다. 이후 경기도 수원시 당수동에서 형과 함께 땅을 빌려 농장(한우 20마리, 돼지 10마리)을 운영했다. 부인과는 2년여의 별거 끝에 1998년 이혼했다. 1999년 결혼한 두 번째 부인과는 순대집을 운영했는데 원인 모를 화재로 문을 닫았다. 두 번째 부인과는 결혼 4년 만에 헤어졌고, 둘 사이에 아들 하나를 두었다. 세 번째 결혼은 만남에서 동거, 결혼, 이혼까지 채 1년이 걸리지 않았다. 강호순과의 결혼이 초혼이었던 세 번째 부인은 나이 차가 열 살이 넘었던 데다, 강호순의 두 아들을 양육하는 문제로 갈등이 심했던 것으로 알려졌다.
네 번째 부인은 2002년에 만나 동거를 해오다 2005년 혼인신고를 한 지 일주일 만에 화재가 발생해 死別(사별)했다. 언론에는 부부 사이가 원만하지 않았던 것으로 알려졌지만 강호순은 네 번째 부인에게 각별한 애정을 느꼈다고 한다. 그는 경찰조사에서 “네 번째 아내가 前妻(전처) 소생의 두 아들을 잘 챙겨주었고, 장모가 아이들을 예뻐해 자주 놀러 갔다”고 진술했다.
강호순의 여자들 “자상하고 매너 있는 사람” 진술두 사람은 강호순이 영등포로 경락마사지 기술을 배우러 다닐 때 같은 학원에서 만나 동거를 시작했고, 한때는 두 사람이 함께 수원의 한 대형 사우나에서 경락마사지 업소를 임대 받아 1년여 동안 운영하기도 했다. 수사팀은 사건 후 강호순의 전처들과 애인들을 참고인 자격으로 불러 조사했는데, 이들 대부분이 강호순에 대해 호의적인 진술을 했다고 한다.
당시 조사를 한 수사팀의 얘기다. “그분들의 공통적인 반응은 강호순이 그럴 사람이 아니라는 것이었습니다. 성격 차이로 이혼한 전 부인들도 강호순을 나쁘게 얘기한 사람이 없었어요. 결혼 당시 폭력을 쓰거나 폭언을 한 경우도 거의 없었다고 하더군요. 애인들의 경우 한결같이 강호순을 ‘자상하고 매너 있는 사람’으로 기억하고 있었습니다. 그 사람이 어떻게 그런 짓을 벌였는지 이해할 수 없다는 반응이었어요. 강호순은 철저하게 사람을 속이고 세상을 속인 희대의 살인마였던 셈이죠.”
강호순은 범행을 저지른 직후 애인을 만나거나 통화를 했던 것으로 드러났다. 끔찍한 살인을 저지르고 나서 그는 다시 애인들에게서 위안을 찾았던 모양이다. 여섯 번째 범행 직전과 6, 7번째 범행 직후 첫 통화를 한 사람도 대구에 있는 애인이었다. 그녀는 강호순이 만나는 3명의 여자 중 가장 오래된 연인인 것으로 밝혀졌다. 수사팀은 끝내 확인해 주지 않았지만, 3명의 애인 중에는 가정주부도 포함된 것으로 알려져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