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군 비행기를 몰고 중국으로 탈출해 항일운동을 벌인 독립운동가 임도현씨에 대해 제대로 조명해주세요."
제주대학교 사범대학부속고등학교 교사인 임정범(54)씨는 일본과 중국 등지에서 항일운동을 한 백부(伯父) 임도현(任道賢)씨에 대한 국가보훈처 독립유공자 최종 심사 결과를 기다리고 있다. 임씨의 독립유공자 서훈 신청은 2005년 3·1절과 2008년 광복절에 이어 이번이 세번째다. 작년 11월 신청했으며, 발표는 올해 3·1절에 맞춰 이뤄질 예정이다.
1909년 제주도 제주시 조천읍 와흘리에서 출생한 임도현씨의 항일운동에 대한 기록은 그가 1940년쯤 고향에 온 뒤 자필로 남긴 이력서가 시작이었다. 그의 자필이력서에는 1931년 일본 도쿄(東京) 인근 다치카와(立川)비행학교에 입학해 비행훈련을 받다 동료 7명을 포섭해 훈련비행기를 몰고 중국 상하이(上海)로 탈출했다고 적혀 있다. 중국으로 건너간 그는 상하이외국어학교와 류저우(柳州)육군항공학교 등에서 수학한 뒤 중국군 중위로 임관해 쓰촨(四川)성 중경중앙군사정부 직속부대에서 장제스(蔣介石)를 보좌하며 실전에 참가했다고 기록돼 있다.
이후 소련·만주 국경에서 일본군과 전투를 벌이다 머리에 큰 부상을 입고 1936년 일본군에 체포되면서 그의 비행학교 탈출 사실이 드러나게 됐다. 그는 할 수 없이 '가미가제 특공대원으로 전쟁터에 나가 목숨을 바쳐 임무를 수행한다'는 내용의 서약서를 쓰고 다시 다치카와비행학교로 돌아가는 것으로 사면받았다. 이후 머리 부상 후유증을 핑계로 비행 대기자에 명단을 올려놓고 탈출 기회만을 엿보다, 1937년 고향 제주로 탈출하는 데 성공하지만 결국 또다시 일본 경찰에 체포되는 고통을 겪게 된다.
그의 자필이력서는 1948년 제주 4·3사건 당시 마을 전체가 불에 탈 때 겨우 건져낸 장롱 속에서 발견됐다. 그가 비행기로 일본을 탈출했던 내용은 조카 임정범씨가 국가기록원에서 얻은 '1936년 5월 조선총독부 광주지방법원 제주지소 재판기록'이 뒷받침하고 있다.
임정범씨는 이 같은 내용과 자료를 바탕으로 2005년 독립유공자 신청을 했으나 자료부족 등의 이유로 인정받지 못했다. 임정범씨 어머니인 이수성(81) 할머니는 "항일운동을 하는 데 장애가 된다는 이유로 결혼을 하지 않았던 시아주버니께서 장제스와 함께 찍은 사진 등을 보여줬고, 장제스가 책과 약 등을 여러 차례 보내오기도 했다"며 "편지 등 자료가 4·3사건 당시 모두 불타버렸다"고 안타까워했다.
하지만 임정범씨는 포기하지 않고 백부가 요주의 인물로 낙인찍혀 일본 경찰의 집중 감시를 받았다는 내용이 들어 있는 일본 경시청의 비밀문서를 작년 1월 초 찾아냈다. 또 중국 류저우(柳州)신문사 편집장을 통해 알게 된 광시(廣西)항공학교 인터넷 사이트에 1937년 촬영된 백부 사진이 게시돼 있다는 것을 작년 1월 말 알아냈다.
임정범씨는"백부가 1940년대 제주로 돌아온 뒤 마을에서 공출과 징병 거부 운동을 벌이기도 했으나 고문 후유증으로 1950년에 돌아가셨다"며 "정부는 제출된 서류만으로 심사할 것이 아니라 보다 적극적으로 조사를 해 독립유공자로 증명해주면 좋겠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