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행 국유화(Nationalization)는 절대악(惡)일까.

영국 등에선 별 문제없이 전개되고 있는 은행 국유화는 미국 일부, 특히 정부에겐 거의 금기로 여겨지고 있다.

미국이 상징하는 시장 자유주의에 반한다는 이유가 큰 것으로 보인다. 정부는 개입은 해도, 은행이 국가 소유는 아니라는 논리로 국유화란 단어를 피하고 있다.

납세자 부담을 줄이자는 취지에서 국유화를 주장하는 일부 공화당 의원들도 국유화 대신에 `민영화 전(前) 단계(Pre-privatization)`란 단어를 사용하자고 주장하고 있다. 평등보다는 자유를 중시하는 이념을 가진 미국에서 국유화는 곧 사회주의를 뜻한다는 점을 잘 알고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상당수 전문가들은 현재와 같은 위기 상황을 극복하기 위해선 은행 국유화가 효율적인 해법이라고 목소리를 높이고 있다. 검은 고양이든 흰 고양이든 빨리 취해 쥐(위기)를 잡아야 할 상황이란 것이다.

◇ 국유화가 뭐길래

정부가 100% 지분을 갖는다거나 경영권을 갖는 것만이 국유화를 의미하는 것은 아니다. 광의의 국유화는 정부가 해당 은행의 상당량의 지분을 갖는 것을 의미한다.

일반적으로 국유화를 실시할 경우 은행의 부실 자산을 따로 떼어(배드뱅크) 신속하게 해소할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 나머지 양호한 자산을 기반으로 한 굿뱅크는 영업을 계속할 수 있고, 궁극적으로 금융 시스템을 신속하게 원상복귀 시키고 원활하게 돌아가도록 할 수 있다.

하지만 국유화가 장점만 갖고 있는 건 물론 아니다.

국유화가 계속해서 진행된다면 은행권에 대한 신뢰는 사라지게 되고 만다. 투자자들은 다른 은행들도 국유화될 수 있을 것이라 우려하게 되고, 이는 금융 부문에 대한 투자를 얼어붙게 할 수 있는 것이다.

기존 주주들이 갖고 있던 주식의 가치가 땅에 떨어지게 될 뿐 아니라, 주주 권한을 제대로 펴지 못하게 되는 부작용도 있다. 또 죽어가는 은행을 인위적으로 살린다는 것은 결국 경제에 비용 부담을 안기는 것이기도 하며, 정치적 목적에 휘둘릴 가능성도 상존한다.

현재 미국에선 지급불능 상태에 빠진 은행을 연방예금보험공사(FDIC)가 맡아 경영진을 교체하고 사업 매각을 꾀해 온 국유화는 계속해서 이뤄지고 있다. 인디맥 등이 그 대상이 됐다.

미 정부가 대규모 공적자금을 투입했으면서도 "국유화하지 않았다, 않겠다"라고 말하고 있는 대상은 씨티그룹 등과 같은 대형 은행들에 해당되는 것.

굳이 이렇게 말하고 있는 이유는 이들로부터 우선주를 받긴 했지만 이를 보통주로 전환하기 까지는 표결권이 없기 때문이다. 해당 은행에 정부의 돈은 주되, 정부가 직접 나서 자산을 건전화하는 작업을 총 지휘하지는 않고 이를 민간의 책임에 맡겨 두겠다는 입장인 것이다.

영국이 노던록, 스코틀랜드 왕립은행(RBS) 등 대형 은행들을 신속하게 국유화하고 나선 것과는 매우 대조적이다. 독일도 국유화에는 거리낌이 없다. 이는 좌파 정권 집권의 경험을 갖고 있는 유럽에서는 국유화가 그리 거부감이 드는 조치가 아니기 때문이다.

◇ 美 국유화의 역사..시장 자유주의의 모순

미국에서 국유화가 금기 단어가 되고 있는 가장 큰 이유는 미국식 자본주의 철학이 바로 시장 자본주의, 다시 말해서 자유주의이기 때문이다.

위기 이후 미국은 `바이 아메리칸(경기부양을 위해 진행되는 인프라스트럭처 프로젝트에는 미국산 제품만 사용해야 한다는 조항)`을 들고 나와 자유무역(Free trade)의 이상을 무너뜨리고 보호무역의 기치를 올리긴 했다.

하지만 내심에는 자본주의의 핵심인 금융, 그 주체인 은행만큼은 명목상으로라도 정부가 아닌 민간의 영역에 남겨 놓고자 하는 욕심을 갖고 있다. 실질적으로(de facto) 국유화되었다고 하더라도 법적으로(de jure) 국유화가 안되었다고 강변하는 것이다.

그러나 미국이 산업에 대해 국유화를 전개하지 않았던 나라는 아니다. 전쟁이나 국가적 위기시에는 전격적인 국유화를 단행했었다.

1789년 노스웨스트 지역과 1803년 루이지애나를 살 때 국유화를 단행했다. 1917년 철도를 국유화했고, 2차 세계대전 중에도 철도와 광산 등이 모두 정부 소유가 됐다. 1952년 해리 트루먼 당시 대통령은 88개 철강 생산공장(mill)을 국가 소유로 만들었다.

1984년 컨티넨털 일리노이 내셔널 뱅크 & 트러스트의 지분 80%를 취득함으로써 은행을 국유화한 적도 있다.

당시 이 은행은 오클라호마주와 텍사스주에서의 석유사업에 대출을 해줬고 이것이 부실화하면서 일부 파산 상태에 빠졌다. 금융시장 전반이 흔들릴 것을 우려한 규제 당국은 파산시킬 수 없다는 대마불사(Too big to fail) 논리를 들어 이를 국유화했다. 이 은행은 1994년 뱅크 오브 아메리카(BoA)에 팔렸다. 최근에는 911 테러 이후에 공항에 있는 민간 보안회사를 국유화했다.

그러나 뉴욕대 경영대학원 스턴 스쿨의 리차드 실라 교수는 그 보다 현재의 재무부가 꾀하고 있는 것과 유사한 가장 최근의 역사상 사례는 지난 1932년 허버트 후버 대통령이 세워 프랭클린 D. 루즈벨트 대통령도 계승한 재건금융공사(RFC)라고 보고 있다.

RFC는 부실 은행에 대출을 해줬을 뿐 아니라 6000개 은행의 지분을 매입했다. 실라 교수는 여기에 총 30억달러가 들었으며, 현재에도 이같은 움직임이 전개된다면 아마도 4000억~5000억달러가 소요될 것으로 추산했다.

◇ "국유화 피하려다 위기 커진다"

금융위기를 오래 전부터 예견해 온 누리엘 루비니 뉴욕대 교수, 지난해 노벨 경제학상 수상자 폴 크루그먼 프린스턴대 교수를 비롯, 시장 자유주의의 상징이라 해도 좋은 앨런 그린스펀 전 연방준비제도이사회(Fed) 의장까지 모두 최근 국유화의 필요성을 강조하고 있다. 위기가 그만큼 깊다는 얘기일 것이다.

인터내셔널 헤럴드 트리뷴(IHT)도 현재도 위기 극복을 위해 신속하게 나서야 할 것이란 주장이 적지 않다고 24일(현지시간) 전했다.

하버드 대학의 낸시 콘 교수는 "국유화의 목적은 자본주의의 엔진을 가능한 생산적으로 만들자는 것"이라며 "이데올로기는 위기 상황에선 사치품일 뿐"이라고 강조했다.

IHT는 또 2차 대전 이후 유럽 국가들은 광산과 철강, 자동차 산업 등 기본 산업들을 국유화하고 최근에도 국가가 강하게 개입하는 모습으로 위기 극복에 나서고 있다는 점을 상기했다. 특히 스웨덴은 1990년대 초 금융 위기를 국유화로 풀어 국유화의 모범 사례를 만들었다고 강조했다.

◇ "국유화가 정답 아니다"

그러나 국유화 역시 미봉책일 뿐이란 지적도 있다.

뉴욕타임스(NYT)는 영국의 국유화를 볼 때, 국유화만이 정답은 아니라고 24일 지적했다. 영국이 RBS나 로이즈 뱅킹 그룹 등을 국유화할 때엔 신속한 조치인 듯 했지만, 이는 1조5000억 파운드에 달하는 부채를 떠안아야 하는 것이었고, 그만큼 영국 정부가 져야할 부담은 커졌다는 것.

이에따라 영국의 국내총생산(GDP)대비 부채 비율은 현재 48%에서 100%까지 늘어날 것으로 추정된다. 100% 부채비율은 그리스와 이탈리아와 같은 수준이 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RBS의 주가는 계속해서 하락하고 있고, 손실도 크게 줄어들지 않고 있다.

하워드 데이비스 런던 정경대(LSE) 학장은 "국유화의 속임수는 모든 사람을 24시간만 즐겁게 해줄 뿐"이라며 "그러나 그 다음에 무엇을 할 것인지, 어떻게 국유화에서 빠져나와야만 하는 지가 관건이 된다"고 말했다.

지난 1981년부터 1985년까지 FDIC 사장을 맡았던 윌리엄 이삭도 WSJ에 기고한 `은행 국유화가 답이 아니다`란 글에서 자신이 직접 FDIC 사장 시절 컨티넨털 일리노이를 국유화했었지만, 결국 FDIC에 16억달러에 달하는 손실을 안겼다고 주장했다.

또 국유화를 시작하면 한 두 은행으로 끝나지 않게 될 것이며, 적절한 출구 전략을 찾지 않으면 안될 것이라고 강조했다.

국유화 성공사례로 꼽히고 있는 스웨덴의 경우도 인구나 경제 규모, 은행 시스템 모두 규모가 작아 미국 오하이오주 정도에 지나지 않았으며, 스웨덴 최대 은행의 규모도 미국 3개 대형 은행의 10%도 되지 않았기 때문에 단순 비교할 수는 없다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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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데일리 김윤경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