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0일 연쇄살인범 강호순(39·구속)이 두 아들과 살아온 안산 팔곡동 연립주택은 적막했다. 거실 벽에 '마음 다스리는 글'이라는 장문의 격언이 붙어 있었다. 가로 1m, 세로 40㎝ 크기였다. '근심은 애욕에서 생기고 재앙은 물욕에서 생기며 허물은 경망에서 생기고 죄는 참지 못함에서 생기느니라(후략).'

방 세 칸을 채운 세간은 대형 평면 TV·드럼세탁기·옷장·좌탁 정도가 다였다. '생활'의 냄새가 없는 집이었다. 냉장고엔 김치와 한두 가지 밑반찬뿐이었다. 냉장고 문에 치킨집 전화번호가 10여개 붙어 있었고, 먹다 남은 치킨 서너 마리가 거실과 주방 곳곳에 놓여 있었다. 거실 벽에는 바닥에서 170㎝쯤 되는 높이에 색연필로 그은 선이 있었다. 큰아들의 키를 표시한 듯했다.

강의 집에서 차로 15분 떨어진 수원 당수동 축사도 괴괴했다. 강이 검거된 뒤 돌보는 사람이 없어 굶어 죽은 소 한 마리가 볏단에 덮인 채 방치돼 있었다. 강과 함께 축사를 운영해온 강의 친형이 전날 남은 소 20여마리를 처분했다고 했다.

전과 9범, 결혼 네 번

강은 충남 서천에 있는 30호 남짓한 농촌 마을에서 자랐다. 동네 변두리에 있는 외딴집이다. 강의 아버지가 2006년 사망한 뒤 어머니(65) 혼자 인근 5일장에 채소를 내다 팔며 살림을 꾸렸다. 이웃 주민은 "부자는 아니지만 그럭저럭 먹고 살 만한 집"이라고 했다. 또 다른 이웃은 강이 "어려서 가끔 말썽을 부리긴 했지만 크게 속 썩인 적은 없고, 동네 어른들에게 인사도 잘했다"고 했다.

강이 졸업한 학교의 행정실 직원(54)은 "크게 말썽을 부린 적이 없고, 눈에 띄지 않던 아이"라고 했다. 고교 졸업 후 강은 직업군인으로 육군에 입대했다. 군 복무 중 함께 휴가 나온 동기와 함께 소를 훔치다 경찰에 잡혔다. 강간 1회, 특수절도 2회 등 총 9개의 전과 가운데 첫 번째 전과였다.

하사로 불명예 제대한 강은 제대 전부터 동거하던 첫 번째 부인과 1992년 결혼했다. 강은 두 아들을 낳은 뒤 6년 만에 이혼했다. 1999년 결혼한 두 번째 부인과는 6개월 만에, 2003년 결혼한 세 번째 부인과는 2개월 만에 갈라섰다. 세 번째 이혼 직후 동거하기 시작한 네 번째 부인은 3년쯤 함께 살다 2005년 화재로 숨졌다. 아직 살아있는 세 사람의 전처는 경찰 조사에서 하나같이 "강은 폭력적인 성향이 있었다"고 진술했다.

30일 경기도 수원시 당수동 버스정류장. 연쇄 살인범 강호순이 작년 11월 여섯 번째 희생자 김모(당시 48세·주부)씨를 자신의 에쿠스 승용차에 태운 곳이다. 근처가 논밭인 이곳은 대낮인 데도 인적이 드물고 황량했다.

"붙임성 있지만 일 생기면 집요하게 화내"

이후 강은 덤프트럭 운전·순대국집·양봉·양계 등 다양한 직업을 전전했다. 강은 대체로 주위의 호감을 얻었다. 강이 근무했던 안산 모 호텔 사우나 지배인은 "검정 점퍼에 추리닝 차림으로 수수하게 다녔다"며 "솜씨가 좋고 싹싹한 사람이었는데…" 하고 말을 잇지 못했다.

"사근사근하게 굴다가도 일이 생기면 집요하게 화를 냈다"는 증언도 있다. 이웃 주민이 강의 집 바깥에 있는 파이프를 몇 개 가져다 썼는데, 나중에 강이 경찰에 신고해 당황한 적이 있다고 한다.

연쇄살인범 강호순이 운영하던 수원 당수동 축사에 소 한 마리가 굶어 죽은 채 방치돼있다. 강은 2006년부터 이 축사를 임차해 소와 돼지를 길렀다.

"네 번째 아내에 애착을 가졌다"

강의 형은 강이 보험금을 노리고 네 번째 결혼한 부인을 살해했다는 의혹을 부인했다.

그는 "네 번째 결혼 기간이 동생에겐 '봄날'이었다"며 "제수가 조카들을 친자식처럼 대했고, 동생도 장모에게 잘해서 부부 금실이 좋았다"고 했다. 강도 경찰 조사에서 "(네 번째 아내는) 내가 애착을 가진 여자였다"고 했다.

2005년 10월, 강의 장모 집에서 불이 나 안방에서 자던 장모와 부인이 숨지고 건넌방에서 자던 강과 아들은 목숨을 건졌다. 화재 직전 강은 부인을 피보험자로 보험을 들고 동거 3년 만에 혼인 신고를 했다.

당시 경찰과 보험사는 보험금을 노린 살인일 가능성이 있다고 보고 6개월간 내사를 벌이다가 증거가 없어 무혐의 결론을 내렸다. 강은 보험금 4억8000만원을 타서 2억2000만원짜리 점포와 에쿠스 승용차를 샀다.

강의 형은 "당시 '아내가 죽어서 받은 돈으로 비싼 차를 사면 되느냐'고 꾸짖었더니, 동생이 '중고차라 비싸지 않다'고 했다"고 말했다. 강의 형은 "화재 사건 이후 동생의 여성 편력이 심해졌다"고 했다.

강의 가족들은 "믿을 수 없다"는 말을 반복했다. 강의 어머니는 "어느 부모가 제 새끼가 그런 짓을 하리라고 상상이나 했겠느냐"며 "국민과 유족에게 할 말이 없다"고 했다. 강의 형도 "입에 담을 수 없을 정도로 모든 분께 죄가 너무나 크다"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