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사회를 뒤흔들었던 ‘미네르바’ 박씨는 자신의 정체를 가까운 이들에게도 철저히 감추고 살았다. 이웃 주민들은 물론 심지어 한집에 살았던 여동생조차 그가 유명한 인터넷 논객 ‘미네르바’라는 사실을 몰랐다. 현재 인도에서 선교 활동 중인 여동생은 지인과의 전화 통화에서 “미네르바가 누구냐”고 되물었다.

9일 중앙일보 보도에 따르면 이웃 주민들의 눈에 비친 ‘미네르바’ 박모씨의 모습은 착실하고 얌전하며 주로 집에서 하루를 보내는 청년이었다. 박씨는 24세의 여동생과 함께 서울 창천동 빌라촌의 S빌라 2층에 살고 있었다. 지은 지 20년 남짓 된 빌라로, 66㎡(20여 평)의 방 세 칸짜리 집이었다.

이웃 주민들은 그를 내성적인 성격으로 기억했다. 한 주민은 “남매가 워낙 말수가 적어 집에 있는지, 나갔는지 알기 어려웠을 정도다. 가끔 여동생이 오가는 것은 봤지만, 오빠는 집 밖으로 나오는 것을 통 못 봤다”고 말했다.

한 주민은 박씨에 대해 “대놓고 물어보진 못했는데, 회사에 다니지 않는 게 맞느냐. 예전에 건설회사를 다녔다고 했지만, 지난해엔 집에 틀어박혀 있는 것 같더라”고 했다.

주민은 또 “2년제 대학을 나온 것 같던데. 그것 때문에 취직이 안 된 것이라면 안타깝다”고 혀를 찼다.

무직인 박씨는 여윳돈은 거의 없었지만 경제적으로 극도로 궁핍한 상태는 아니었던 것으로 보인다. 유치원에서 보조교사 아르바이트를 하던 여동생이 집세를 냈다. 여동생의 지인은 검찰 발표 직후 이뤄진 통화에서 여동생이 “우리 집이 넉넉하진 않지만 그렇다고 가난하지도 않다”고 말했다고 전했다.

미네르바는 지난해 여름 무렵부터 인터넷에 몰두했다. 여동생은 “최근 몇 달 동안 오빠가 하루 종일 컴퓨터 앞에 앉아 뭔가를 인터넷에 계속 올렸다. 무슨 내용인지는 모른다”고 말했다. 미국발 금융위기가 본격화하면서 ‘미네르바 신드롬’이 본격적으로 달아오르던 때였다.

여동생도 “오빠는 집에서 계속 경제 관련 책을 보면서 공부를 했다. 항상 증권•주식•경제 얘기를 했다. ”고 했다.

무직자였지만 그는 정신적으로 안정된 상태였던 것으로 보인다. 신앙심이 깊었던 박씨의 여동생은 열흘 전 인도로 선교 활동을 하러 출국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