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말선초의 홍영통(洪永通 ?~1395년 태조4년)은 공민왕 때 신돈의 심복이면서도 반(反)신돈파 사람들을 많이 구제하였다. 그래서 신돈이 제거될 때 귀양은 갔지만 목숨은 건질 수 있었고 고려 우왕 때는 왕실과 인척관계였으므로 좌의정에 해당하는 좌시중까지 지냈다. 정적(政敵)을 만들지 않는 처신으로 조선이 세워진 후에도 남양백(南陽伯)에 봉해져 남부러울게 없었으나 태조4년 10월11일 태조 이성계의 탄일(誕日)잔치에 갔다가 만취해서 집으로 돌아오던 중 그만 말에서 떨어져 죽었다. 그로 인해 홍영통은 조선 시대 최초의 음주낙마(飮酒落馬) 사망이라는 불명예를 안게 된다.

세종의 대군(大君)시절 스승으로 세종이 형 양녕을 대신해 왕위에 오르는 바람에 특진에 특진을 거듭해 이조판서를 거쳐 병조판서에 올랐던 이수(李隨)도 1430년(세종12년) 4월18일 "술에 취해 말을 달리다가 떨어져서 이내 죽으니, 나이는 57세였다"는 불명예를 남겼다. 하지만 정작 '과음(過飮)' 문제로 세종을 괴롭혔던 인물은 따로 있었다. 세종이 아직 상왕 태종으로부터 임금 '인턴'을 받고 있던 세종2년9월 사헌부에서는 병조참의 윤회(尹淮 1380년 고려우왕 6년~1436년 세종18년)가 종묘에서 의례를 진행하던 도중 술에 취해 불경(不敬)을 저질렀다고 탄핵했다. 아마도 태종과 세종 모두로부터 총애를 받던 인물이 아니었다면 종묘에서의 그같은 무례는 결코 용서받지 못했을 것이다. 다음날 세종은 윤회를 따로 불러 "너는 총명하고 똑똑한 사람인데 과음이 너의 결점이다"고 책망하며 자제를 당부하는 선에서 마무리 지었다.

자타가 공인했던 주호(酒豪) 윤회가 여기서 그칠 인물은 결코 아니다. 세종12년 12월22일 세자의 스승을 맡고 있던 윤회가 술에 취해 세자의 공부시간이었던 서연(書筵)에 참석하지 않았다고 사헌부가 탄핵했다. 세종도 답답했던지 따로 김종서를 불러 "술을 삼가라는 명령이 뭐가 그리 어렵단 말인가"라고 한탄한다. 하긴 그 무서운 태종도 고치지 못한 주벽(酒癖)이었다.

세종 때 윤회가 있었다면 성종 때는 손순효(孫舜孝 1427년 세종9년~1497년 연산군 3년)가 주호(酒豪)의 맥을 잇는다. 그러나 윤회의 호방한 기질과 달리 상당한 주사(酒邪)가 있는 편이었다. 술에 취하면 허풍이 심하고 '임금' 말만 나오면 눈물을 줄줄 흘려 주변 사람들로부터 빈축을 샀던 인물이다. 심지어 그가 죽었을 때 졸기(卒記)에는 이런 대목까지 있다. '관찰사로 나가 있을 때에는 항상 서울을 향하여 절을 하니 사람들이 혹 정상이 아닌 것이 아닌가 의심하였다. 사람됨은 충직한데 일을 하는 데서는 모자라 가는 데마다 실적이 없었다.'

그래도 손순효는 술을 좋아하고 즐길 줄 아는 사람이었다. 효종 때의 병조판서 박서 같은 인물은 효종2년(1651년) 10월 임금의 명을 받고서도 술에 취해 새까맣게 잊어먹은 다음 부하에게 그 책임을 덮어씌웠다가 들통이 나 사간원의 탄핵을 받아야 했다. 그러나 효종은 박서를 너무나도 총애했기 때문에 오히려 그를 탄핵했던 사간원 관리가 고초를 겪는다. 이런 박서가 2년후인 효종4년 6월29일 세상을 떠났을 때 실록은 이렇게 적고 있다. '박서는 연일 과음을 하다가 갑자기 죽었다.' 술병이었다.

숙종12년(1686년) 2월7일 숙종의 외삼촌이기도 했던 한성좌윤(오늘날의 서울부시장) 김석익(金錫翼)이 세상을 떠났을 때의 기록이다. "이 때 과음으로 인하여 갑자기 죽었다." 박서와 같은 원인이었을 것이다.

조선 시대 임금들은 특히 자신들이 아끼는 신하들 중에 과음이나 주벽이 심한 사람들에게는 은근히 타이르는 차원에서 잔 가운데 경계의 말을 새겨넣은 자그마한 은잔(銀杯)을 하사하곤 했다. 숙종36년(1710년) 숙종은 인현왕후 민씨의 오빠로 자신의 처남이기도 한 약방제조 민진후(閔鎭厚 1656년 효종10년~1720년 숙종46년)가 지나치게 술을 좋아하자 은잔을 내렸다. 그 잔 속에는 '술이 뭐가 해로우냐고 말하지 말라, 그 해(害)가 날로 심해지리라'고 새겨져 있었다.

정조14년(1790년) 11월12일 승지 신기(申耆)가 경연에 참석했는데 술이 몹시 취해 있었다. 까칠한 성격의 정조가 그냥 둘 리 없었다. "면전에서 글을 받아 쓸 때 술 냄새가 코를 찌른다. 계설향(鷄舌香-잎냄새 제거용 약재)을 구해 입에 물기는 어렵더라도 어찌 감히 이처럼 과음할 수 있단 말인가?" 그러나 신기는 큰 처벌은 받지 않았고 이후 요직을 두루 거치게 된다. 조선은 분명 이념적으로는 경직된 나라였지만 술에 관한 한 톨레랑스(寬容)가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