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색 효율성(Grey Efficiency)'이 독일 사민당(SPD)을 구원할 수 있을까.
현재 기민당(CDU)·기사당(CSU)과 함께 이루고 있는 독일 대연정(大聯政)에서 독일 외무장관 겸 부총리를 맡고 있는 프랑크 발터 슈타인마이어(Steinmeier·52·사진)에게는 '회색 효율성'이란 말이 따라붙는다. 막후에서 조용하고 효율적으로 문제를 해결하는 그의 능력을 가리켜 붙은 별명이다.
슈타인마이어는 지난 9월 베를린에서 열린 사민당 전당대회에서 사민당의 총리 후보로 지명됐다. 내년 9월 총선에선 연정 파트너인 기민당의 앙겔라 메르켈(Merkel) 총리와 맞서야 한다. 독일의 첫 여성 총리인 메르켈은 2005년 기민·기사당 연합을 이끌고 총선에서 승리한 뒤 과반수 의석 확보에 실패하자 사민당과 대연정을 구성하고 총리직에 올랐다.
현재 독일에서 메르켈 총리보다 더 인기가 많은 정치인은 슈타인마이어가 유일하다. 독일 ARD방송이 지난 4일 실시한 여론 조사에서 슈타인마이어는 74%의 지지율로 기민당 소속인 앙겔라 메르켈 총리를 9%포인트 앞섰다. 사민당으로선 당내 우파에 속하는 슈타인마이어를 총리 후보로 지명해 내년 총선 승리 가능성을 높인 것이다.
그의 정치적 성공은 효율적인 행정가 이미지에 기초한다. 게르하르트 슈뢰더(Schroeder) 전 총리의 비서실장 시절에는 독일 경제의 체질을 바꾼 개혁 정책 '어젠다 2010'을 입안했다. 2003년 채택된 '어젠다 2010'은 전후(戰後) 처음으로 국민연금 혜택을 축소하는 연금 개혁과 노동시장의 유연성을 높이는 내용으로 이후 독일 경제의 호황을 이끈 것으로 평가된다.
언론의 주목도를 꾀하기보다는 성실하게 문제를 해결하는 슈타인마이어의 스타일도 독일인들의 호감을 산다. 2003년 당시 파이낸셜타임스(FT)는 "슈타인마이어는 슈뢰더 총리와 달리 비전을 가진 정치인으로 지적인 토론을 즐기며, 본능보다는 이성을 중시하는 스타일"이라고 평가한 바 있다.
물론 기센대에서 법학을 가르치다 정치에 투신한 슈타인마이어의 정치적 멘토(mentor)는 슈뢰더 전 총리다. 슈타인마이어는 1991년 슈뢰더가 주(州)총리로 있던 니더 작센주의 법률 고문으로 공직에 투신했고, 슈뢰더의 눈에 띄어 1993년 주 총리 비서실장에 임명됐다. 1998년 슈뢰더가 연방정부 총리에 취임하자 함께 중앙 정계로 옮겼다.
'조용한 행정가' 슈타인마이어도 경제 위기가 심화되고 총선이 다가오자 장차 다시 맞붙을 메르켈 총리와는 차별되는 목소리를 높이고 있다. 독일 시사주간지 포쿠스는 11월 '외무장관인 슈타인마이어가 독일 자동차산업의 경영자와 노조 대표를 만나 자동차산업에 대한 지원을 약속했다'고 보도했다. 당시 메르켈은 자동차산업 지원에 유보적이었다.
슈타인마이어는 외무장관으로서 친(親)러시아 성향을 보여 왔다. 그는 러시아가 그루지야를 침공한 후에도 러시아와의 대화를 통한 해결을 선호해 미국과 대립각을 세웠다.
최근엔 슈뢰더 총리 비서실장 재직 당시 자신이 관할하던 독일 연방정보국(BND)을 통해 미군의 이라크 침공 과정에 도움을 줬다는 독일 시사주간지 슈피겔의 보도가 나가 의회 청문회에 불려 나가기도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