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범·국사편찬위원회 편사연구사

가끔 클래식 음악을 들을 때마다 베토벤 같은 작곡가들의 위대함을 새삼 실감하곤 한다. 지금도 그 분야에는 수많은 거장과 천재와 신동들이 명멸하고 있지만 대체로 그들은 작곡가가 창작한 음악을 재현하는 연주자라는 측면에서 본질적인 차이를 가질 것이다.

1800년대가 시작되던 30대 초반부터 10여년 동안 베토벤은 그 수준과 분량에서 압도적인 걸작들을 쏟아냈고 그래서 그 시기는 '걸작의 숲'이라는 영예로운 표현을 얻었다. 그때는 지금 우리가 누리는 문명의 이기들이 거의 없던 세상이었다. 200년이라는 그리 멀지 않은 과거에 첨단의 기술과 도구의 도움 없이 창작한 예술작품을, 당시와는 비교할 수 없는 기술적 수준에 도달한 현재에는 새로 창작하지 못하고 연주할 뿐이라는 사실은 시간과 기술과 예술의 함수관계를 깊이 생각하게 만든다.

연말에 가장 많이 연주되는 곡목의 하나는 베토벤의 9번 교향곡 《합창》이다. 오래전부터 그 유명하고 긴 곡을 다 들어보고 싶었고 그렇게 노력했지만 인내심의 부족과 이런저런 사정 때문에 그러지 못했었다. 몇 년 전 이맘때쯤 달리기를 하고 있었는데 그때 라디오에서 그 전곡을 들려준다고 했다. 숨이 가빠오고 몸이 지칠수록 아득해져 오는 거리의 중압감을 이기기 위해서 음악에 집중했고 그 곡을 다 들으면서 목표지점에 도달했다. 몸은 힘들었지만 정신은 또렷했고 음악은 참으로 감동적이었다. 그때 육체의 피로가 반드시 정신까지 소모시키는 것은 아니며, 다시 그 정신을 소생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은 바로 위대한 예술이라는 생각을 했다. 얼마 남지 않은 올해, 다시 한번 달리면서 그 불멸의 곡을 듣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