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혼자서 빨래도 하고 김치 볶음밥도 만들어 먹을 줄 알게 되면서 철이 조금 든 것 같아요."

스탠퍼드대학에서 친구 7명과 함께 한 아파트에서 기숙사 생활을 하고 공부하는 이야기를 하는 대목에서 미셸 위(19·한국이름 위성미)의 표정이 가장 밝게 피었다. 옆에 있던 아버지 위병욱 교수(하와이대)가 "차를 끓이겠다고 주전자에 물을 담아 전자레인지에 넣고 돌리던 아이가 이렇게 바뀌었다"고 하자, 미셸 위는 혼잣말처럼 "그 이야기는 그만 했으면 좋겠는데…"라며 어쩔 줄 몰라 했다.

미셸 위는 지난 10일 별세한 할아버지(위상규 서울대 명예 교수)의 장례식 참석을 위해 2년만에 한국을 찾았고, 크리스마스까지 서울에서 지내다 미국으로 돌아갈 예정이다.

16일 서울 소공동 롯데호텔 기자 간담회에서 만난 미셸 위는 '골프 천재 소녀'라는 이름과 함께 그녀 주변에 끼어 있던 거품에서 벗어난 모습이었다.

미셸 위는 지난 주 미 여자프로골프협회(LPGA)투어 퀄리파잉 스쿨을 공동 7위로 통과해 내년 투어 카드를 손에 넣었다. 그녀의 스윙 지도를 맡고 있는 데이비드 레드베터가 ESPN 인터뷰에서 "만약 실패했다면 사람들은 미셸 위를 '미셸 후(Michelle Who?)'라고 부르게 됐을 것"이라고 할 만큼 전환점이었다.

스폰서 초청 출전이란 특별 대우를 받다가 이제 보통 출발선에 서게 된 미셸 위는 "옛날과 전혀 다른 선수가 되고 싶다"고 했다. 그냥 볼을 '후들겨' 패기만 하던 애에서 영리한 선수가 되고 싶고, 또 골프에만 닫혀 있지 않고 생활을 즐기는 사람이 되고 싶다는 설명이다.

미셸 위는 올해 평균 드라이버 샷 비거리가 270야드로 많이 줄었다. 그녀가 밝힌 자신의 최장타는 연습 도중 기록한 392야드, 공식 대회 기록은 343야드. 그녀는 "정확성과 일관성이 더 중요하다는 사실을 깨달았지만, 멀리 치는 것도 중요하기 때문에 다시 힘있게 공을 때리는 훈련도 할 것"이라고 했다. 이제는 다 컸다고 밝힌 그녀의 키는 1m84. 미셸 위는 자신의 '스펙'에 맞는 스윙을 하게 돼 자신감도 커졌다고 말했다.

미셸 위는 230야드를 남기고 레이 업을 할 정도로 안전 위주로 쳤던 퀄리파잉 스쿨이 "잔디에 머리를 푹 처박고 싶을 만큼 재미없었다"고 했다.

LPGA투어 루키 오리엔테이션에서 만난 신지애에 대해 묻자, "실제 골프를 하는 것을 본적은 없고, 직접 만나 보니까 정말 좋은 사람이란 인상을 받았다"고 했다. 신지애와 미셸 위, 로레나 오초아(멕시코), 폴라 크리머(미국)가 우승 경쟁을 벌이는 내년 LPGA투어가 '사상 최고로 치열한 시즌'이 될 것 이란 전망이 나오고 있다.

미셸 위는 "지난 해 손목 부상 이후 부진이 이어질 때는 정말 눈 감고, 귀 막고 훈련과 학교 생활에만 몰두했다"고 털어 놓았다.

그녀는 지난해 스탠퍼드대학에 입학하면서 부모 품을 벗어나 처음 '홀로서기'를 시작했고, 성숙해지는 계기가 됐다.

그녀는 "대학에는 영화배우와 미국 국가대표 펜싱 선수 등 유명 학생들이 많아 나는 그저 평범한 학생 가운데 한 명일 뿐이다"고 말했다. 미셸 위가 "내가 생각해도 정말 잘 짠 스케줄"이라고 밝힌 그녀의 일과표는 이렇다. 오전 7시부터 오후 1시까지 골프 훈련을 하고, 오후 2~5시에는 수업을 듣고, 이후 트레이닝을 한 뒤 공부를 하다 졸릴 때 잠드는 것이다. 그녀는 공부든 운동이든 모든 일을 스스로 알아서 하게 되면서 정말 원하는 게 무엇인지도 알게 됐다고 했다. 미셸 위는 "공부도 열심히 해 꼭 졸업할 생각이지만 우선 순위는 역시 골프"라고 했다. 그녀는 세계 제1의 골퍼가 되는 것과 마스터스 출전을 여전히 목표로 하고 있지만, 꿈은"나중에 정말 후회 없이 골프를 즐겼다는 생각을 가질 수 있도록 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미셸 위는

1989년 하와이에서 태어난 미셸 위는 골프를 좋아하는 부모의 영향으로 다섯 살 때 처음 골프 클럽을 잡았다. 14세이던 2003년 US 여자아마추어퍼블릭링크스챔피언십에서 최연소 우승을 차지했다. 그녀는 장타를 앞세워 남자 대회에 출전하기 시작했고, 2004년 소니 오픈에선 1타 차로 컷 오프돼 세계 골프계의 주목을 받았다. 16세이던 2005년 나이키, 소니와 약 1000만달러짜리 대형 스폰서 계약을 체결하며 프로로 전향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