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청도 남방 50마일 지점, EEZ 내 5마일 해역에서 조업 중인 중국 어선 검문합니다. 검색조 출동 준비!"

8일 오후 5시5분 인천해양경찰서 소속 경비함 한강2호(1000t급) 조타실에서 김환경(37·경정) 함장이 외쳤다. 레이더에는 노란 점(중국 어선) 30~40개가 EEZ(배타적 경제수역) 선 안쪽으로 들어와 있었다.

검은 헬멧과 방패로 무장한 특공대원들이 출동 준비를 마치고 대기했다. 한강2호가 사이렌을 울리며 시속 17노트(시속 34㎞)로 속도를 내자 모여 있던 중국 어선들이 달아나기 시작했다. "엇, 저기 다 무허가 배들이다! 가까이 가봐!"

순식간에 상황이 급박해졌다. 붉은 중국 국기를 매단 배들이 높은 파도를 타고 줄지어 도망가는 모습이 육안으로도 보였다. 허가 선박이라면 배 위에 붙여 놓아야 할 허가번호 표지판은 보이지 않았다. 무허가 선박들이 대거 불법 조업을 하다 걸린 것이다.

빨리 단정(소형 고속 보트)을 내리고 특공대원을 투입해야 하는 상황. 김 함장은 잠시 고민하더니 "파도가 3m 높이라 단정을 내리는 건 아무래도 안 되겠다"고 했다. "파도가 이렇게 높으면 고속 보트는 휩쓸려 버려요. 설사 보트를 내린다고 해도 중국 배 쪽으로 접근을 못합니다."

달아나는 중국 배들을 눈앞에 두고서도 사이렌만 울리며 따라갈 뿐 속수무책이었다. 김 함장은 "목선이면 그냥 가서 다 받아버리는 건데 저 배들은 철선(鐵船)이라 받으면 우리 함정만 다친다"고 했다. "경고 사격이라도 해야 하는 것 아니냐"고 하자 함장이 곤혹스러운 표정을 지었다.

"경고 사격은 우리 대원들 생명이 위험할 때 방어 차원에서 해야 합니다. 행여 잘못해서 사람이라도 맞히면 과잉 진압으로 문제가 될 거고, 중국과의 외교문제로 번질 위험도 있습니다.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니 저희도 답답해 죽겠습니다."

한강2호(1002호)는 7일 오전 7박8일 일정으로 출항했다. 38명의 대원들은 조타실의 레이더와 고성능 망원경을 들여다보며 4시간 3교대 방식으로 근무를 이어갔다. 4시간을 근무하고 8시간을 쉰 뒤 다시 근무하는 방식이다. 한강2호의 주활동 지역은 북위 37도선 북쪽 해역과 서해 북방한계선 이남 해역, 서쪽으로는 동경 124도선 동쪽 해역을 연결하는 내측 수역이다. 이 지역을 인천해양경찰서 소속 1000t급 이상 경비함 3척이 7박8일 주기로 교대하면서 지키고 있다.

기자는 7일부터 2박3일간 한강2호에 동승, 해경들의 중국 어선 감시활동을 취재했다. 거친 파도 때문에 배가 수시로 요동쳐 서있기조차 힘들었다. 해경 함정은 사흘 내내 3m가 넘는 파도와 싸워야 했다.

김 함장은 "지난 10~11월까지만해도 중국 어선들이 수십 척씩 몰려 와 정신 없이 바빴는데 12월 들어 확 줄었다"며 "지난달엔 우리 함정으로 중국 목선(木船)들을 밀어버리고 어망까지 다 끊어버렸다"고 했다.

8일 오전 11시. 흰 색 운반선 한 척이 우리 경비함을 따라 계속 이동하는 모습이 레이더에 잡혔다. 김 함장은 "중국 어선 중에도 조업하는 배가 있고 운반선이 따로 있는데 아무래도 이 배가 우리 경비함의 움직임을 감시하면서 중국 어선들에 전달하는 역할을 하는 것 같다"며 "검은 색이던 운반선 색깔이 흰 색으로 바뀐 것도 우리나라 배로 착각하게 만들려는 술수로 보인다"고 했다.

올해 한국측 EEZ 내에서 조업 허가를 받은 중국 어선은 약 1900척. 이들은 반드시 'C○○―○○○○'라는 식별번호를 달아야 한다. 정석민(46·경위) 부장은 "번호가 없거나 대장에 등록되지 않은 번호를 단 중국 어선은 EEZ 내에서 조업이 금지된 무허가 불법 조업선"이라고 했다. 허가받은 배들도 조항을 위반했거나 할당량을 초과하면 벌금을 내야 한다.

오후 8시. 중국 어선 3~4척이 EEZ 안쪽(우리나라 쪽)으로 넘어온 것이 레이더에 포착됐다. "조금만 더 넘어오면 바로 출동합니다." 모두 숨을 죽이며 레이더를 응시했지만 노란 점들은 EEZ 안쪽 0.5~1마일 지점에서 멈췄다. 정석민 부장은 "중국 어선들은 EEZ선에서 살짝만 넘어와 있다가 우리 경비함이 접근하면 약올리듯 쏙 들어가 버린다"고 했다.

"요즘엔 불법 조업하는 배 하나를 잡으려고 하면 주위에 있던 중국 어선 수십 척이 모여 와서 둘러쌉니다. 위험하니까 고속 보트를 내려서 접근하는 것도 어려워요. 검문할 때 보면 갑판에 대여섯 명이 서서 기다란 각목을 들고 위협하고 있어요. 그걸 보면 신경이 확 곤두서죠."

특공대원인 이용주 순경은 "불법 중국 어선을 따라가 단속정을 갖다 대는 것조차 쉽지 않다"고 했다. "정선 명령을 듣지 않고 지그재그로 달아나는 데다 배 양쪽에 삼지창 같은 것을 설치한 배도 있다"는 것이다. 해경이 접근하면 돌을 던지거나 갈고리, 쇠파이프를 휘두르고 공격 전용 쇠창을 만들어 찌르려는 경우도 있다.

김환경 함장은 "중국 어민들은 말 그대로 생존 차원의 저항을 하는 것"이라고 했다. "잡히면 끝장나니까 발악을 하는 거죠. 불법 조업하다가 걸리면 벌금만 3000만~5000만원을 내야 하고 이를 못 내면 선장과 항해사, 기관장은 구속되고 배는 폐선 처분됩니다."

주완중 기자 한강2호 조타실 레이더에 포착된 중국 어선들(노란 점).

해경이 올해 나포한 중국 어선은 총 398척(12월 7일 현재). 2001년 한·중 어업협정 이후에만 중국 어선 3000여척이 해경에 나포됐다. 나포 과정에서 30여명의 경찰관이 부상했고 급기야 지난 9월 고(故) 박경조 경위가 중국 어부가 휘두른 삽에 머리를 맞고 바다에 떨어져 이튿날 시신으로 발견됐다.

사고 이후 해경은 "해상 공권력을 강화한다"며 10월 10일 '해상 특수기동대'를 창설했다. 수중폭파대(UDT) 출신 등 해경 정예요원 60명이 인천과 목포 해경 소속 1000t급 이상 대형 함정에 배치됐다. 기존에 쓰던 섬광탄과 가스총, 전기충격기 외에 고무탄이 발사되는 '40㎜ 유탄 발사기'도 지급했다. 앞으로 장거리 음파 통제기, 전자충격총 등 진압 장비와 보호장구도 추가 보강할 계획이라고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