충남 논산에서 천연기념물 265호인 연산오계(오골계)를 "우리 애들"이라고 부르며 키우는 이승숙(45)씨의 별명은 '계모(鷄母)'다. 쇠꼬챙이로 오골계의 다리를 잡아채 어깨에 올려놓고 아기 어르듯 한다.
서울서 신문기자로 일하다 그만두고 낙향해 오골계를 키우는 데 전념한 지 10년. 이젠 닭 울음 소리만 들어도 무슨 일 때문인지 금방 아는 '오골계 도사'가 됐다. 이씨는 "뼈와 피부, 눈, 털, 발톱까지 검은 우리 재래 닭 이름은 오계(검은 닭)가 정확하다"고 주장한다. 문화재청도 최근 이씨의 요청을 받아들여 옛 문헌에 나타난 본디 이름은 '오계'임을 확인했다.
"1년에 서너 번 부화를 해 병아리가 5000마리 정도 태어나면 8개월까지 키워요. 그중에서 오골계 혈통을 보존할 수 있는 종계(種鷄)를 200마리 골라내죠. 그런데 장기간 근친교배를 하면서 종계 선발률이 떨어지는 게 문제예요. 알 100개를 부화하면 종계는 4마리 정도가 나올 뿐이죠. 이러다간 곧 멸종되고 말 거예요. 보호법이 생기든지 지속적인 후원자가 있어야 멸종을 막을 수 있을 겁니다."
가축 중 천연기념물은 진돗개, 삽살개, 조랑말, 오골계다. 오골계를 제외한 나머지는 지방자치단체 차원에서 혈통 보존이 이뤄지고 있다. 오골계는 정부 지원을 일부 받긴 하지만 대부분은 이씨가 오골계 식당을 하고 대출을 받아 가까스로 보존하고 있는 상태다.
"수입 사료는 성장호르몬이 들어 있어 골격이 커질까 봐 못 먹여요. 그러니 비싼 유기농 사료를 사야 하고 저항력을 높이기 위해 이것저것 찾아 먹여야 하거든요. 이젠 사료값 대는 것도 힘에 부쳐요."
그런데 천연기념물인 오골계를 먹어도 될까?
"종계를 제외하고 나머지는 도태시켜야 하니까요. 오골계 식당에서 나오는 수입이라도 조금 있어야 사료를 사 먹일 수 있거든요. 그런데 전 못 먹어요. 닭을 키우면서 채식주의자가 됐어요. 닭을 애지중지 키우다 보니 이젠 모든 고기를 못 먹겠더라고요."
연산오계는 털이 까맣고 발가락이 네 개에 체형이 동그랗고 벼슬이 검붉다. 이외에도 순종 연산오계를 선발하는 기준은 약 20가지다. 최근엔 조류독감 때문에 이씨가 오골계 수천 마리를 안전지역으로 대피시키느라 애를 먹기도 했다.
"익산에서 조류독감이 발생했을 때 그날 밤 안으로 대피하지 않으면 다 살처분할 수도 있다고 했어요. 허겁지겁 갈 데를 알아봤는데 누가 받아줘야 말이죠. 피난지라고 미리 준비해놓은 곳도 그 지역 사람들이 반대한다고 못 오게 했어요. 한밤중에 급히 근처에 안 쓰는 양계장으로 옮기는데 그런 난리가 없었어요."
이씨 집안은 400년째 논산시 연산면 화악리에 살면서 대대로 오골계를 키워왔다. 이씨의 5대 조부(이형흠)가 철종에게 오골계를 진상했다는 기록이 남아 있다. 그후 오골계의 혈통을 보존하는 일이 이씨 집안의 가업이 됐다. 그러나 오골계를 키워 돈을 벌기는 어렵다. 고기를 먹을 수 있는 육계(肉鷄)도 아니고, 알을 얻을 수 있는 산란계(産卵鷄)도 아닌 재래식 닭인 오골계는 한방에서 약효가 있다고 인정받을 뿐이다.
오골계는 키우기 어렵다. 야생성이 강하고 온도와 습도에 민감해 자칫 잘못하면 서로 쪼아대며 싸우다가 죽기 일쑤다. 생후 2개월까진 아기를 돌보듯 조심스럽게 키워야 한다. 1960년대 이씨의 할아버지는 개인의 힘만으로 오골계를 지키는 것은 한계가 있다고 생각해 천연기념물로 지정받기 위해 노력했지만 실패했다.
"결국은 아버지가 애를 써서 1980년에야 천연기념물로 지정됐어요. 저는 젊어서 집을 나간 아버지 얼굴도 모르고 컸거든요. 그런데 초등학교 6학년 때 아버지가 돌아와서 할아버지 임종을 못했다고 후회하며 폐인처럼 지내다가 오골계 지키기에 모든 걸 거신 거예요. 오골계 키울 비용을 대느라 땅을 파시면서도 제 등록금은 안 주셨으니 아버지가 너무나 원망스러웠고 오골계가 원수였죠."
오골계가 지긋지긋하다고 했던 그가 '오골계 엄마'가 되기로 결심한 건 1998년 휴가 때였다. 오랜만에 집에 와보니 고혈압에 당뇨병이 심각한 아버지는 온갖 합병증으로 2개월 이상 살기 어렵다고 했다. 아버지가 마지막 가는 길을 지켜야겠다는 생각에 휴직을 하고 고향집으로 돌아왔다. 아버지는 그로부터 4년을 더 살면서 오골계를 키우는 '지산농원'을 세웠다.
"그때 처음으로 아버지와 제대로 이야기를 하게 됐어요. 오골계 돌봐줄 사람이 없어 차마 눈을 감지 못하신다는 것도 알았지요. 아버지는 세상을 떠나기 전 제 손바닥에 '농원을 부탁한다'고 쓰셨어요."
그렇게 해서 오빠가 넷이나 있는데도 미혼의 이씨가 가업을 이어받게 됐다. 오골계 키우기에 전념하다가 1년을 예정했던 휴직이 길어져 기자를 그만두게 됐고, 서울서 살던 집 전세금까지 빼다가 오골계 사료를 사 먹였다. 주변에선 "돈도 안 되는 일을 왜 붙들고 있느냐"고 성화다.
"예전의 저를 아는 사람들이 '네가 어떻게 시골에서 닭을 키우며 사느냐'고 그러죠. 그런데 오골계에 대해서 저만큼 아는 사람도 없거든요. 제가 제일 잘 할 수 있는 일을 하고 있으니 좋은 선택이라고 생각해요. 게다가 우리나라에만 있는 유전자원이니 누군가는 지켜야 하잖아요?"
닭들의 생활리듬에 맞춰 살다 보니 일찍 자고 일찍 일어난다. 고요한 새벽에 명상을 하고 하루를 시작한다.
"예전엔 메마르게 살면서 앞만 보고 달렸거든요. 요즘엔 완전히 다른 사람이 됐어요. 그런데 닭의 세계도 사람 사는 세상과 같아서 힘 센 닭이 약한 닭을 괴롭히고 왕따 시키고 서로 질투하고 그래요. 그걸 보고 있으면 사람 사는 세상이 전혀 그립지 않다니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