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범

최근 반계 유형원의 사상을 연구한 책을 번역했다. 유형원은 당쟁의 여파로 과거를 포기했고, 따라서 관직에 나아가지 못했던 초야의 학자였다. 그의 아호인 반계(磻溪)는 지금의 전라북도 부안이다. 그는 그곳에서 19년에 걸쳐 필생의 역작인 《반계수록》을 썼다.

《반계수록》은 놀라운 책이다. 중국에는 그 책의 선례가 될 만한 저작이 이미 있었지만, 수많은 제도의 기원과 변화과정과 문제점을 추적하고, 거기에 관련된 수많은 학자들의 논의를 분석하면서 자신의 의견을 첨부하는 방식의 저서는 조선의 학문적 역사에서 특기할 만한 업적이었다.

그가 삶의 대부분을 은거했던 부안은 지금도 그리 번화한 지역이 아니다. 그러니 교통과 통신이 지금과는 비교할 수 없이 낙후한 당시에 그곳은 더욱 외진 곳이었을 것이다. 그런 외지에서, 시행될 희망은 고사하고 알아줄 가능성도 희박한 개혁안을 그토록 치밀하고 방대하게 구상하고 집필한 학자의 미망(迷妄)과도 같은 마음은 어떤 것이었을까. 아마도 거기에는 자신의 능력을 현실에서 펼 수 없었던 뛰어난 개인의 학문적 열정과 현실에 대한 답답함, 그리고 그것을 초월하려는 의지와 결국은 자신의 생각이 인정받으리라는 확신 등이 섞여 있었을 것이다.

지금 우리는 당시 현실을 지배했던 주요한 정치가들보다 거기서 멀리 소외됐던 그를 더 잘 알고 있다. 그때 현실은 그를 외면했지만, 역사는 시간의 풍화를 이겨내고 그와 그의 업적에 더 큰 보상을 한 것이다. 현실에서 행복하고 싶은 것은 모두의 자연스러운 바람이다. 그러나 그렇지 않을 때 그것을 견딜 수 있는 힘은 이런 미래에 대한 희망과 의지일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