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종범·성균관대 경제학과 교수

올해도 멀쩡한 보도블록이 교체되고 있다. 남은 예산이 불용액(不用額)으로 처리되면서 다음 해 예산이 삭감되는 상황을 막기 위해 연말이면 어김없이 벌어지는 일이다. 이런 '보도블록 교체'는 남은 예산으로 공무원들에게 상품권을 나누어 주고, 충분히 수행가능한 업무를 위탁계약하는 행태로도 나타난다. 그래서 올해는 감사원이 나섰다. 감사원은 이달 8일부터 19일까지 100여개 기초자치단체 및 40여개 중앙행정기관을 대상으로 '예산 밀어내기' 실태조사를 벌일 예정이다.

그런데 예산 밀어내기 관행은 감사원의 감사로 막을 수 있는 문제가 아니다. 몇 군데 보도블록 교체를 적발하고 시정명령은 할 수 있겠지만 근본적인 해결책이 될 수는 없다. 또한 감사원 감사로 불용액을 많이 남기도록 유도하는 것도 곤란하다. 감사가 두려워 꼭 필요한 예산을 집행하지 못한다면 더 큰 문제이기 때문이다.

사실 해마다 불용액으로 수조원이 남는다. 2007년 역시 결산을 해보니 4조4000억원이나 되었다. 예산 밀어내기를 하고도 이만큼 남는 것인지, 아니면 밀어내기를 덜 해서 이만큼 남은 것인지 지금으로서는 판단하기 힘들다. 중요한 것은 불용액의 많고 적음의 원인을 밝혀내는 것이다. 이 작업이 다름 아닌 사후평가이다.

당초 사업 목적을 얼마나 달성했는가를 과학적으로 평가하되 투입된 예산 대비 효과성을 점검하는 것이 바로 사후평가이다. 이 과정을 통해 비용효과성(cost-effectiveness)이 있는 것으로 판단되면 불용액이 많아도 다음 해 예산을 삭감하지 않아도 된다. 또한 사후평가과정을 통해 예산 밀어내기도 적발할 수 있다. 결국 사후평가는 예산 집행당국의 '보도블록 교체' 의지를 꺾는 가장 효과적인 방법인 셈이다.

이러한 사후평가는 보도블록과 같이 눈에 보이는 예산사업보다 눈에 보이지 않는 정책사업에 더욱 필요하다. 실업대책사업이나 복지사업들과 같은 정책프로그램 예산 역시 남기면 안 된다는 사고가 늘 지배하고 있다. 특히 수년간 지속되는 계속 사업의 경우 예산심의시 전년대비 증가가 주요 관심사가 된다는 점에서 남기면 그만큼 손해라고 생각한다. 문제는 이런 정책사업의 예산 밀어내기는 감사원 감사로도 적발이 어렵다는 것이다.

그래서 정책프로그램 하나하나에 대한 철저한 사후평가가 필요하다. 함부로 거론 못하는 복지예산, 중소기업예산 그리고 농업예산의 실효성까지 점검하는 사후평가가 필요하다는 것이다. 정말 빈곤층, 중소기업 그리고 농촌을 위한다면 철저히 실효성을 따져봐야 한다. 전체 예산 규모를 줄이기 위해서가 아니라 현재의 예산이 제대로 쓰이고 있는가를 살펴보자는 것이다.

미국은 각 부처, 민간 연구기관, 우리의 예산정책처에 해당하는 의회예산처(CBO) 그리고 우리의 감사원에 해당하는 미 연방회계감사원(GAO) 등에서 정책프로그램들에 대한 상시 사전사후평가체제를 갖추고 있다. 10년에 걸친 사전평가과정을 거친 뒤 1996년 복지개혁을 단행했고, 2000년 이 복지개혁에 대한 사후평가의 최종보고서를 완성할 정도로 평가에 있어서는 철저하다.

오바마는 최근 백악관 예산국(OMB) 국장으로 피터 오자그(Orszag)를 내정하면서 그야말로 치워야 할 시체(bodies), 즉 낭비예산이 어디 있는지를 정확히 알고 있는 자라고 소개할 정도로 예산평가를 중시한다.

우리도 이제 사전사후평가를 체계적으로 그리고 상시적으로 할 수 있도록 1년에 한 번꼴로 열리는 예결위를 상임위로 바꾸어야 한다. 그래야 성장률 예측이나 전년 대비 증가율을 갖고 싸우는 대신 예산사업별 비용효과성을 점검할 수 있는 것이다.

최근 어느 초선의원이 예결위 활동을 하면서 '피 같은 세금을 물같이 쓰고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라고 한 말이 생각난다. 그는 '보도블록 교체'의 현장을 목격한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