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은 연필 쥐기도 힘들 정도로 아주 피곤한 날이다. 기술 보고서를 급하게 작성하느라 윤아, 지현, 희민, 광호와 밤 2시까지 보고서를 썼기 때문이다. 아 진짜 너무 졸려서 눈이 저절로 감기고 그랬는데 껌도 없었다. 그래서 결국 껌 씹는 척을 했다.'
시흥고 1학년 김은미(여·16) 양이 국사 수업이 끝나고 쓴 '수업 일기'다. 이 학교 1학년 1반부터 6반 학생들에게 국사를 가르치는 박소영(여·33) 교사는 수업이 끝난 뒤 학생들에게 돌아가며 수업일기를 쓰도록 한다. 박 교사는 "이 일기 내용이 가장 기억에 남는다"며 "학생들에게 학교 생활이 힘든 줄 모르고 수업하기 싫어 잠만 자는 줄 알았는데 아니었다는 것을 깨달았다. 너무 귀여워 '졸리면 사탕 줄 테니 얘기해라'고 썼다"고 밝혔다.
◆학생들과 얘기 나누고 싶어 시작
박 교사가 '수업일기'를 시작한 건 지난 3월. 지난해까지 수업한 뒤 느낀 점을 적던 박 교사는 교사 연수에서 '학생들이 수업일기를 쓰고 이에 대해 교사가 얘기를 해 주면 좋은 점이 많다'는 말을 듣고 올해부터 시작했다.
'수업일기'란 박 교사가 매 학급마다 한 권씩 마련해준 공책으로, 학생들은 1시간에 1명씩 돌아가며 그날 배운 수업 내용을 수업이 끝난 쉬는 시간에 정리한 뒤 박 교사에게 제출한다. 박 교사는 "학생들은 수업 내용뿐 아니라 수업 중간 느꼈던 점을 적거나 수업 방식에 대해 평가하기도 한다"며 "이에 대한 내 생각도 적는데, 수업 내용 요약한 것 가운데 잘못된 것이 있으면 고쳐 주고 '졸리다'고 하면 '졸지 않게 노력하겠다'고 하기도 한다"고 말했다.
◆학생들 수업태도 달라질 때 보람 느껴
박 교사는 수업 일기의 장점을 하나하나 얘기했다. 우선 수업 내용을 잘못 이해하는 부분들을 알 수 있었다. 그럴 땐 "잘못된 부분을 일기에 고쳐 주고, 어려워하는 부분은 다음 시간에 다시 설명한다"고 했다. 또 수업 방식에 대한 지적도 받았다. 하루는 한 학생이 '오늘 국사 시간엔 분위기가 안 좋았다. 시작하자마자 여자애들 화장한 것 걸리고 조끼 뺏긴 것 때문에 분위기가 안 좋았다'고 적었다. 박 교사는 "생활지도도 중요하지만 수업을 시작하면서 하면 수업분위기가 무거워지고 수업시간도 줄어드는 단점이 있어 다음부터는 신중하게 학생들을 대하기 위해 노력할 수 있었다"고 했다.
박 교사는 "무엇보다 수업 태도가 좋지 않은 학생들이 책임감을 가지고 수업을 들을 때 수업일기를 쓰는 보람이 있다"고 밝혔다. 실제로 수업을 제대로 듣지 않던 한 학생은 수업일기를 쓰기 위해 열심히 수업을 들었고 '이때까지 졸아서 몰랐는데 오늘 수업을 들으니 어렵지만 재밌었다. 잘 듣겠다고 다짐을 했다'고 썼다. 박 교사는 '그렇게 생각해서 기쁘다'고 답했고, 이 학생은 다음부터 졸지 않고 수업을 듣고 박 교사에게 방긋 웃으며 인사도 큰 소리로 하기 시작했다.
◆학생들도 결국에는 좋아해
처음엔 힘든 점도 많았다. 공책을 챙겨 가야 하는데 깜빡할 때도 있었고, 부정적으로 보는 아이들을 설득하기도 해야 했다. 틈나는 대로 답글을 써야 하는데 미뤄져 힘들게 몰아 써야 할 때도 있었고, 학생이 공책을 안 돌려주거나 수업을 듣지 않고 무기력하게 쓰는 태도도 안타까웠다.
하지만 박 교사는 포기하지 않았다. "너희가 써 줘야 우리가 함께 변화할 수 있고, 너희한테 도움이 되니 노력하자"고 강조했다. 결국 아이들도 좋아하기 시작했다. 특히 여학생들은 자신들의 고민과 기대도 쓰며 교사와 의사소통이 되는 점을 반겼다. 김예림(여·16) 양은 "수업 분위기와 수업 내용을 자세히 알 수 있어서 좋다"고 말했다. 박 교사는 "다른 선생님들도 '이런 것이 있었냐"며 하고 싶어한다"고 했다.
◆"돌려보며 의견 나누도록 할 것"
"수업만 하다보면 학생들과 1년에 한 번도 얘기를 못할 때도 있는데 공책을 건네주며 이야기할 기회를 만들 수 있어 좋다"는 박 교사. 그는 "내년에도 수업일기를 계속할 생각이다"며 "내년에는 내가 공책을 보관하지 않고 학생들이 돌려볼 수 있게 해, 같은 수업을 들어도 서로 생각이 다르다는 점과 다른 친구의 생각을 알 수 있는 기회를 갖도록 하겠다"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