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흥고 국사‘수업일기’공책 속 내용. 학생들이 수업에 대한 느낌을 적은 데 대해 박 교사가 답글을 달았고, 수업 내용을 요약한 것 중 일부 잘못된 부분이 수정됐다.

'오늘은 연필 쥐기도 힘들 정도로 아주 피곤한 날이다. 기술 보고서를 급하게 작성하느라 윤아, 지현, 희민, 광호와 밤 2시까지 보고서를 썼기 때문이다. 아 진짜 너무 졸려서 눈이 저절로 감기고 그랬는데 껌도 없었다. 그래서 결국 껌 씹는 척을 했다.'

시흥고 1학년 김은미(여·16) 양이 국사 수업이 끝나고 쓴 '수업 일기'다. 이 학교 1학년 1반부터 6반 학생들에게 국사를 가르치는 박소영(여·33) 교사는 수업이 끝난 뒤 학생들에게 돌아가며 수업일기를 쓰도록 한다. 박 교사는 "이 일기 내용이 가장 기억에 남는다"며 "학생들에게 학교 생활이 힘든 줄 모르고 수업하기 싫어 잠만 자는 줄 알았는데 아니었다는 것을 깨달았다. 너무 귀여워 '졸리면 사탕 줄 테니 얘기해라'고 썼다"고 밝혔다.

학생들과 얘기 나누고 싶어 시작

박 교사가 '수업일기'를 시작한 건 지난 3월. 지난해까지 수업한 뒤 느낀 점을 적던 박 교사는 교사 연수에서 '학생들이 수업일기를 쓰고 이에 대해 교사가 얘기를 해 주면 좋은 점이 많다'는 말을 듣고 올해부터 시작했다.

'수업일기'란 박 교사가 매 학급마다 한 권씩 마련해준 공책으로, 학생들은 1시간에 1명씩 돌아가며 그날 배운 수업 내용을 수업이 끝난 쉬는 시간에 정리한 뒤 박 교사에게 제출한다. 박 교사는 "학생들은 수업 내용뿐 아니라 수업 중간 느꼈던 점을 적거나 수업 방식에 대해 평가하기도 한다"며 "이에 대한 내 생각도 적는데, 수업 내용 요약한 것 가운데 잘못된 것이 있으면 고쳐 주고 '졸리다'고 하면 '졸지 않게 노력하겠다'고 하기도 한다"고 말했다.

시흥고 1학년인 한 여학생이 국사 수업이 끝난 뒤 쉬는 시간에 수업일기를 쓰고 있다.

학생들 수업태도 달라질 때 보람 느껴

박 교사는 수업 일기의 장점을 하나하나 얘기했다. 우선 수업 내용을 잘못 이해하는 부분들을 알 수 있었다. 그럴 땐 "잘못된 부분을 일기에 고쳐 주고, 어려워하는 부분은 다음 시간에 다시 설명한다"고 했다. 또 수업 방식에 대한 지적도 받았다. 하루는 한 학생이 '오늘 국사 시간엔 분위기가 안 좋았다. 시작하자마자 여자애들 화장한 것 걸리고 조끼 뺏긴 것 때문에 분위기가 안 좋았다'고 적었다. 박 교사는 "생활지도도 중요하지만 수업을 시작하면서 하면 수업분위기가 무거워지고 수업시간도 줄어드는 단점이 있어 다음부터는 신중하게 학생들을 대하기 위해 노력할 수 있었다"고 했다.

박 교사는 "무엇보다 수업 태도가 좋지 않은 학생들이 책임감을 가지고 수업을 들을 때 수업일기를 쓰는 보람이 있다"고 밝혔다. 실제로 수업을 제대로 듣지 않던 한 학생은 수업일기를 쓰기 위해 열심히 수업을 들었고 '이때까지 졸아서 몰랐는데 오늘 수업을 들으니 어렵지만 재밌었다. 잘 듣겠다고 다짐을 했다'고 썼다. 박 교사는 '그렇게 생각해서 기쁘다'고 답했고, 이 학생은 다음부터 졸지 않고 수업을 듣고 박 교사에게 방긋 웃으며 인사도 큰 소리로 하기 시작했다.

학생들도 결국에는 좋아해

처음엔 힘든 점도 많았다. 공책을 챙겨 가야 하는데 깜빡할 때도 있었고, 부정적으로 보는 아이들을 설득하기도 해야 했다. 틈나는 대로 답글을 써야 하는데 미뤄져 힘들게 몰아 써야 할 때도 있었고, 학생이 공책을 안 돌려주거나 수업을 듣지 않고 무기력하게 쓰는 태도도 안타까웠다.

하지만 박 교사는 포기하지 않았다. "너희가 써 줘야 우리가 함께 변화할 수 있고, 너희한테 도움이 되니 노력하자"고 강조했다. 결국 아이들도 좋아하기 시작했다. 특히 여학생들은 자신들의 고민과 기대도 쓰며 교사와 의사소통이 되는 점을 반겼다. 김예림(여·16) 양은 "수업 분위기와 수업 내용을 자세히 알 수 있어서 좋다"고 말했다. 박 교사는 "다른 선생님들도 '이런 것이 있었냐"며 하고 싶어한다"고 했다.

"돌려보며 의견 나누도록 할 것"

"수업만 하다보면 학생들과 1년에 한 번도 얘기를 못할 때도 있는데 공책을 건네주며 이야기할 기회를 만들 수 있어 좋다"는 박 교사. 그는 "내년에도 수업일기를 계속할 생각이다"며 "내년에는 내가 공책을 보관하지 않고 학생들이 돌려볼 수 있게 해, 같은 수업을 들어도 서로 생각이 다르다는 점과 다른 친구의 생각을 알 수 있는 기회를 갖도록 하겠다"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