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중현·전국뉴스부 차장대우

미국 연수와 출장 중에 가본 한식당들은 국내와 다른 특이한 점이 하나 있었다. 손님이 음식을 먹고 일어서면 종업원이 크고 작은 플라스틱 통 몇 개가 실린 '바퀴 달린 수레'를 끌고 와 남은 음식을 버리고 그릇·수저를 정리하는 모습이다. 대부분의 한식당이 그랬다. 그땐 '옆에서 밥 먹고 있는데 저래도 되나' 하며 기분 나빠 하기도 했다.

하지만 요즘엔 생각이 달라졌다. 국내 음식점들의 '남은 반찬 또 내오기' 관행이 너무 심하다는 생각 때문이다.

주변의 많은 사람들도 '음식점의 반찬 재사용' 문제를 심각하게 말하고 있다. 음식점에서 반찬을 다 못 먹을 만큼 푸짐하게 내오면 '남이 먹던 것 다시 내온 건 아닌가' 하는 생각에 다시 가기 싫어진다는 사람도 여럿 봤다. 외식할 땐 '음식 재사용'을 하기 어려운 패밀리 레스토랑이나 이탈리아 식당 등을 우선 찾는다는 사람도 있다. 이 문제가 '국민적 스트레스'가 된 것 같은 느낌이다.

사람들이 부쩍 이런 생각을 많이 하게 된 것은 몇 달 전 방송된 한 TV 고발 프로그램의 영향이 크다. 서울 시내 음식점의 80~90%가 남은 음식과 반찬을 다시 내놓고 있다는 내용이었다. 손님이 먹다 남긴 쌈장을 모아 그릇에 다시 그럴듯하게 담아 내주는 몰래 카메라 장면을 본 뒤론 음식점에서 쌈장 찍어 먹기도 조심스러워졌다. 비싼 한정식집까지 '반찬 재사용' 행위를 하는 장면을 보곤 '믿을 곳이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우리가 중국의 저질·가짜 음식을 나무랄 자격이 있는지 의문이 들었다. '재사용 반찬'에서 대장균·살모넬라균·녹농균 등이 나오고, 간염·결핵·식중독 원인이 될 수 있다는 의사 증언까지 듣고는 '이건 기분 문제가 아니라 목숨이 달린 심각한 문제'라는 분노가 치밀었다. 음식점 업주들은 "반찬을 조금씩 내주면 종업원들이 자주 서빙해야 해 인건비가 많이 들어 어쩔 수 없다"고 하지만, 손님 건강을 놓고 보면 변명이 될 수 없다. 업주들은 이걸 먹는지 묻고 싶다.

우리는 자주 국민소득과 무역규모 등을 대며 선진국 문턱에 한발 들여놓은 듯 말한다. 하지만 '반찬 재사용' 같은 '미개한' 관행을 바꾸지 않고는 진짜 선진국을 만들 수 없다. 주로 한식당에서 이뤄지는 이 관행은 한식(韓食)의 국제적 이미지를 완전히 망가뜨릴 수도 있다.

우리 사회를 바꾸겠다는 거창한 '개혁'과 '변화'의 구호를 수십 년째 듣고 있지만, 국민이 피부로 느끼는 개혁은 바로 이런 관행을 바꾸는 것 아닐까. 그런 점에서 최근 관내 음식점들을 대상으로 '반찬 재사용 않기' 운동을 시작한 서울 서초구는 문제를 제대로 짚은 것 같다.

이 운동이 '한국을 한 단계 업그레이드시키는 수준'까지 진행되려면, 국민적 캠페인으로 확대돼야 한다. 우선 '2010년 외국인 관광객 1200만 명 유치'를 목표로 삼은 서울시를 대표로 전국의 지방자치단체들이 동시에 어깨를 겯고 나서 줬으면 좋겠다. 전국시도지사협의회, 전국시장군수구청장협의회가 다음 모임의 첫째 의제로 이 문제를 올리는 건 어떨까.

시민들의 동참도 중요하다. 먹고 광우병 걸린 사람 하나 없는 미국 소를 그렇게 염려했던 시민·사회단체들도 이 문제의 심각성을 인식하고 적극 나서 준다면 전 국민이 박수 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