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로 서양화가 황용엽(77)씨가 9~28일 서울 예술의전당 한가람미술관에 근작 100여 점을 건다. 그는 일흔을 넘기고도 때로는 하루 10시간 가까이 맹렬하게 작업해왔다.
그는 호젓한 푸른색 바탕에 입술이 붉은 여자를 그린다. 여자는 눈이 크고 몸이 앙상하다. 여자 뒤에는 칼자국 같기도 하고 거미줄 같기도 한 선이 가로로, 세로로 수없이 그어져 있다. 황씨는 "내 그림에 많은 선이 나타나는 것은 어쩔 수 없는 인간의 속박에서 기인한 것 같다"고 했다.
그는 평양에서 태어나 평양미술대학을 다니다 6·25 때 월남했다. 생계를 잇기 위해 미국 영화배우 마릴린 먼로의 누드를 그려서 미군 병사에게 6달러에 팔기도 했다.
그는 국군으로 참전했다가 전후에 홍익대를 졸업했다. 전흔(戰痕)에 시달리는 인간의 절규가 그의 작품 세계의 출발점이자, 밑바탕이었다고 평론가들은 말한다.
그는 평생 '인간'을 그렸다. 이웃이자 친구인 문학평론가 정창범(76)씨가 그에게 "왜 인간만 그리느냐"고 물은 적이 있다. 황씨는 "억지로 대답하라면, 그릴 것이 그것밖에 없다고나 할까요" 했다. 그의 화폭에 나타난 왜소하고 일그러진 인간 군상에 대해, 황씨는 "나는 나의 모습을 그렇게 그리고 있을 뿐"이라고 설명하곤 한다.
황씨는 제1회 이중섭미술상 수상자이기도 하다. 오광수 전 국립현대미술관장은 "인간의 부조리한 상황을 은유적으로 구현한 점에서 예리한 비판정신이 엿보인다"며 "인간을 사랑하고 인간을 그리워하는 예술적 기조가 전체 작품을 두고 면면히 이어지고 있다"고 썼다. 그 점에서 이중섭의 정신을 잇는 작가이기도 하다는 평이다. (02)580-130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