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실·화해를 위한 과거사정리위원회(위원장 안병욱·이하 진실화해위)는 '윤태현 소령 의문사 사건'과 1950년대 일어난 학살사건 3건의 진실을 규명했다고 27일 밝혔다.

상해 임시정부 예하의 광복군 출신인 고(故) 윤태현 소령은 국군 8사단 21연대 1대대장으로 6·25 전쟁에 참전했다가, 1950년 7월 17일 경북 영주에서 작전명령 위반 혐의로 총살당했다. 당시 국군 8사단은 경북 영주와 풍기 일대에서 인민군 2개 사단에 맞서 싸웠지만 병력과 장비가 열세였다. 때문에 1대대가 제 위치를 사수하지 못하고 후퇴하자, 당시의 21연대장이 대대장인 윤 소령을 즉결처분하도록 명령했던 것이다.

진실화해위는 전투지휘자에게 즉결처분을 인정한 훈령이 1950년 7월 25일 하달됐고, 그 훈령 역시 헌법과 법률에 근거가 없다고 밝혔다. 따라서 윤 소령에 대한 즉결처분은 위법한 것으로, 국가가 사과하고 명예회복 조치를 취해야 한다고 진실화해위는 권고했다.

진실화해위는 1950년 충북 청주와 전북 김제에서 '적대세력(6·25때 민간인을 집단학살한 인민군, 중공군, 좌익세력을 총칭)'에 의해 일어난 민간인 희생사건도 규명했다고 밝혔다.

진실화해위에 따르면 1950년 9월 충북 청주에서 적대세력은 대한청년단원, 구장, 경찰 등 우익활동 경력 탓에 청주시 정치보위부와 청주형무소, 청주내무서 등에 감금됐던 민간인 450여명을 학살했다. 인민군과 지방 좌익 등으로 이뤄진 적대세력은 주로 인근 당산이나 토굴에서 민간인들을 총살했고, 일부는 둔기로 때려 타살했다. 또 '인민의용군'을 조직한다면서 청주에서만 최소 77명의 청장년을 납치했다고 진실화해위는 밝혔다.

적대세력은 전북 김제에서도 우익인사, 지주와 그 가족을 학살했다. 인민군이 김제 지역을 점령한 1950년 7월 20일부터 퇴각한 9월 28일까지 김제군 내무서와 만경면 소토리 공동묘지 등에서 최소 208명이 희생됐다고 진실화해위는 밝혔다. 희생된 사람들은 우익단체 활동을 했거나 가족 중에 지주, 경찰 등이 있다는 이유로 모래사장이나 공터에 매장돼서 죽었고 일부는 야산 등에서 총살당했다. 따라서 진실화해위는 당시의 지역사를 바르게 기술하고 교육할 것 등을 국가에 권고했다.

진실화해위는 1949년 12월부터 1950년 1월 사이 국군 25연대가 경북 영덕 지품면 일대에서 빨치산 토벌 작전을 벌이면서 인근 주민들을 집단 사살한 사건에 대해서도 인권침해라며 국가의 공식사과와 위령사업 지원 등을 권고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