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무현 전 대통령의 측근들이 2006년 농협의 세종증권 인수 과정에 개입해 거액을 챙겼다는 의혹이 일부 사실로 확인됨에 따라 이른바 '노무현 전 대통령 측근 게이트'가 터지는 것이 아니냐는 관측이 나오고 있다. 대검찰청 중앙수사부의 수사도 이런 전망을 뒷받침하듯 전방위로 확산되는 양상이다. 이런 가운데 다음 수사 타깃으로 거론되는 태광실업 박연차 회장이 자신에 대해 제기된 의혹의 일부를 시인하는 발언을 하고 나와 그 배경에 관심이 쏠리고 있다.
박 회장은 이번에 구속영장이 청구된 정화삼씨, 강금원 창신섬유 회장과 함께 노 전 대통령의 '후원자 3인방'이라 불리는 인사로 노 전 대통령측에 7억원의 불법 대선자금을 제공해 처벌을 받았으며, 또 박 회장의 측근이 봉하마을 부지를 제공해 논란이 된 적이 있다. 베트남, 중국 등에 진출한 신발생산업체 태광실업을 운영 중인 박 회장은 작년 12월 술에 취해 국내선 비행기 안에서 난동을 부린 혐의로 1심에서 유죄가 선고되기도 했다.
◆박연차씨 왜 그렇게 말했을까
지난 22일 박 회장은 연합뉴스와의 인터뷰에서 차명계좌를 통해 당시 세종증권 주식을 거래해서 100억원 이상의 시세 차익을 올렸다는 점을 인정했으나 미공개 정보를 이용했다는 의혹에 대해서는 전면 부인했다. "부하 직원이 결재를 올려서 승인했을 뿐"이라며 "차명거래를 통해 세금을 탈루한 것이 맞기 때문에 그 부분은 내가 책임지겠다"고도 했다.
이와 관련해 검찰은 "그와 관련해서는 확인해줄 말이 없다"며 말을 극도로 아끼고 있다. 하지만 검찰 내부에서는 박 회장이 언론 인터뷰에 응한 것에는 나름대로의 계산이 깔린 것이라는 분석이 나오고 있다.
검찰 관계자는 "이번 사건에서 누가 세종증권에 대한 미공개 정보를 흘렸고 어떤 사람이 그 덕을 봤느냐가 핵심 수사 대상"이라며 "박 회장이 이 부분을 빠져 나가려는 것 같다"고 했다.
박 회장으로서는 미공개 정보 이용과 관련된 의혹을 시인하고 들어가기 힘든 상황이라는 얘기도 나온다. 만일 그랬다가는 본인은 물론 정보 제공자, 나아가 당시 세종증권 주식을 사고 팔았을 공산이 큰 노 전 대통령 측근 인사들이 앞으로 줄줄이 사법 처리되는 근거를 마련해주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미공개 정보 이용은 혐의가 확인될 경우 10년 이하의 징역 또는 5억원 이하의 벌금이 처해지는 중범죄(重犯罪)이기도 하다.
또한 박 회장의 세종증권 주식 차명거래는 이미 국세청 세무 조사에서 확인된 사안이기 때문에 그런 점을 스스로 공개하더라도 박 회장으로서는 별로 잃을 게 없는 상황이라는 설명도 있다.
국세청이 태광실업 등에 대한 세무 조사 과정에서 뭉칫돈을 발견해 제3의 인물을 위한 자금이 아니냐고 추궁했으나 박 회장은 이를 강력히 부인했다는 얘기도 나온다.
검찰은 세종증권과 관련된 미공개 정보의 제공자로 정대근 당시 농협 회장을 강하게 의심하고 있다. 정 전 회장은 현대차그룹에서 뇌물 3억원을 받은 혐의가 확정돼 수감 중인 상태로, 박 회장측과는 접촉이 사실상 불가능한 상황이다. 때문에 박 회장이 언론 보도를 통해 정 전 회장에게 자연스럽게 모종의 신호를 준 것 아니냐는 추측도 있다.
반면 임박한 검찰 수사에 심리적 압박감을 느끼고 있는 박 회장이 자신의 현재 심경과 상황을 있는 그대로 얘기한 것뿐이라는 설명도 있다.
박연차 회장에 대한 수사가 본격화되면 탈세나 미공개 정보 이용 혐의 외에도 2006년 7월 농협의 알짜배기 자회사인 휴켐스를 헐값에 인수했다는 의혹도 수사 대상이 될 전망이다. 당시 농협의 최종 결정권자 역시 정대근씨였다. 박 회장이 2002년 김해의 땅을 차명으로 매입해 수백억원의 이득을 얻었다는 주장도 제기된 바 있어 수사가 불가피할 전망이다.
◆다음 수사는 어디로
앞으로 검찰 수사는 두 갈래로 진행될 예정이다.
그 중 하나는 노 전 대통령의 측근인 정화삼씨와 정대근 전 농협 회장에게 유입된 세종캐피탈의 자금 80억원의 사용처를 확인하는 것이다. 일부 자금의 종착점이 두 정씨가 아닐 수 있다고 검찰은 보고 있다.
검찰에 따르면 정 전 회장에게 전달된 50억원은 정 전 회장의 측근인 남경우 전 농협축산경제 대표가 운영하는 모 금융 컨설팅사로 모두 송금됐다. 2005년 12월(10억원), 2006년 2월(40억원) 두 차례에 걸쳐 입금된 50억원은 세종캐피탈이 이 회사에 지급한 자문료로 위장됐다고 한다. 검찰은 50억원이 컨설팅사 계좌에서 어디로 빠져나갔는지를 추적 중이다.
또 다른 방향은 세종증권 매각에 관한 미공개 정보를 이용, 주식 거래를 한 인사들을 찾는 것이다. 이와 관련, 지난 정권의 몇몇 실세 정치인들이 거론되기도 한다. 이 의혹을 규명하기 위해서는 정대근 전 농협 회장의 입을 열게 하는 것이 핵심이다. 검찰은 다른 사건으로 수감 중인 정 전 회장을 강도 높게 압박할 것으로 보인다.
검찰 관계자는 "지난 정권 유력 인사들이 농협이 행사하는 막대한 이권(利權)을 둘러싸고 얽히고 설켰는데 이번 수사는 그것을 풀어나가는 것"이라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