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일보와 한국학술협의회(이사장 김용준), 대우재단은 '현대 법철학계 최고의 석학'으로 평가받는 로널드 드워킨(Ronald Dworkin·77) 미국 뉴욕대 로스쿨 교수를 초청, '2008 제10회 석학 연속강좌'를 갖는다. '인권·정의·평등'을 주제로 강연하는 드워킨 교수는 자유주의를 기반으로 인간의 가치와 권리를 존중하면서 자유의 원천인 자원을 고르게 배분하는 평등론을 주장해 왔다. 법학자인 양건(梁建) 국민권익위원회 위원장과 함재학(咸在鶴) 연세대 법대 교수가 드워킨 교수와 좌담을 가졌다.

양 건: 선생님은 법철학자이자 정치철학자로서, 자유주의를 옹호해왔습니다. 자유주의는 역사 속에서 많은 변모를 겪었고, 현재도 다양한 자유주의가 있습니다. 선생님이 보시기에 자유주의의 핵심은 무엇입니까?

드워킨: 자유주의는 시대를 관통하는 공통분모를 찾기 힘듭니다. 역사적으로 자유주의는 자유방임주의적 경제관을 지칭했던 적이 있습니다. 아담 스미스가 그 예입니다. 아직도 영국의 정치담론 속에서는 대체로 자유주의가 그런 의미로 이해되기도 합니다. 반면 미국에서는 뉴딜정책을 통해서 복지를 강조하기 시작했던 루즈벨트 시대부터 자유주의가 정착되기 시작했다고 보는 시각이 많습니다.

왼쪽부터 양건 국민권익위원장, 드워킨 뉴욕대 교수, 함재학 연세대 교수.

함재학: 그렇다면 선생이 이해하는 자유주의의 핵심이란 무엇입니까?

드워킨: 두 가지를 말할 수 있습니다. 우선 공동체가 아닌 개인의 가치를 우선하는 개인주의입니다. 그리고 자유와 더불어 평등도 존중해야 한다는 요청입니다. 물론 자유와 평등을 어떻게 동시에 실현해야 하는지에 대해서는 이견이 있지만, 자유주의는 개인주의 원칙과 자유와 평등을 함께 존중하려는 노력의 결실입니다. 이점에서 자유주의는 우파적 조합주의(corporatism)나 좌파적 사회주의와 구별됩니다.

양 건: 그렇다면 기존의 다양한 자유주의사상들이 가지고 있는 문제점은 무엇입니까?

드워킨:
기존의 자유주의 이론은 보완할 점도 많지만, 자유주의는 로크, 칸트, 밀, 벤담, 롤즈 등의 사상적 계보만 보더라도, 매우 탄탄한 전통을 가진 철학입니다.

물론 문제는 있습니다. 요즘은 자유주의가 비정치적 가치에 대하여는 특정한 입장을 취하지 않는 정치이론으로 보려고 합니다. 예컨대 롤즈의 '정치적 자유주의'는 도덕적, 종교적 문제들을 회피하는 것이 낫다고 주장합니다. 그래서 투표할 때는 각자의 도덕적, 종교적 신념을 잊으라고 합니다. 또 사람들마다 세계관이 다르기 때문에, 정치적 사안을 결정할 때는 시민들의 지지를 얻기 위해서 최소한의 공통분모(중첩적 합의)를 토대로 삼아야 한다고 말합니다. 이것은 잘못입니다. 세계관과 신념은 사람들의 행동을 좌우합니다. 그런데 이것들을 빼놓고 정치철학을 구성하려는 것은 비현실적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포괄적이고 통합적인 자유주의를 지향해야 합니다. 내가 주장하는 자유주의는 그런 통합성을 지닌 것입니다.

둘째로 대부분의 사람들은 자유와 평등을 서로 경쟁관계에 있는 가치로 파악합니다. 그 중 하나를 위해서는 다른 하나를 희생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이런 시각에서 출발할 경우, 자유주의는 취약해질 수밖에 없습니다. 자유와 평등 중 어느 것이 더 중요합니까? 또 어디까지 희생할 수 있는지 어떻게 판단할 수 있습니까? 사실 자유주의는 평등보다는 자유를 우선시한다는 비판을 자주 듣습니다만, 나는 양자가 서로 별개의 가치가 아니라고 봅니다. 자유주의 이론은 양자를 동시에 만족시킬 수 있어야 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어느 하나도 만족시킬 수 없습니다. 그래야 올바른 자유주의 이론입니다.

함재학: 선생의 저작을 보면 "평등한 존중과 배려"라는 원리가 아주 중요합니다. 이번 공개강연 하나를 "평등에 대한 인권"을 주제로 정한 것도 그런 맥락으로 이해됩니다.

드워킨: 공개강연에서 나는 그런 추상적인 원리가 인권을 통해서 어떻게 실현될 수 있는지에 대해서 말하려고 합니다. 모든 사람이 평등할 인권을 갖는다는 것은 정부가 모든 사람들에게 똑같은 소득을 보장해야 한다는 말이 아닙니다. 오히려 언제 닥칠지 모르는 불행에 대해 똑같은 정도의 힘을 가지고 대응할 권리가 있어야 한다는 뜻입니다. 구체적으로 이를 실현하기 위해서는 세금을 내야 합니다. 그러나 공평한 세금을 위해서는 그 기준에 대한 성찰이 필요합니다. 내 생각으로는 우선 모든 사람이 그런 불행한 사태를 대비해서 가입하는 보험이 있다고 가정해서 각자 지불할 용의가 있는 보험료를 정하고, 바로 그것을 기준으로 과세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 세수(稅收)를 가지고 실제로 필요한 사람들에게 혜택이 가도록 하는 것이 합리적이고 공평할 것입니다.

지난 16일 서울 힐튼호텔에서 열린 좌담회에서 로널드 드워킨 미국 뉴욕대 교수(가운데)가 양건 국민권익위원회 위원장(왼쪽), 함재학 연세대 교수와 함께 토론하고 있다.

양 건:

모든 사람이 평등할 인권이 있다는 것이 결국 사회복지 차원에서 일정한 생활수준을 할 수 있도록 정부가 노력해야한다는 뜻으로 들립니다. 그렇다면 각종 복지혜택에 관한 권리들을 헌법에 직접 규정해서 보장해야 한다는 것입니까?

드워킨:

솔직히 헌법 속에 각종 복지를 누릴 구체적인 권리를 규정하는 것에 대해서는 망설여집니다. 그럴 경우 자원의 분배에 대한 정책적인 판단을 내려야 하는 상황이 생길텐데, 판사들은 그런 판단을 내리기에 적합한 위치에 있지 않기 때문입니다. 오히려 헌법적으로 중요한 규정은 평등한 보호를 받을 권리입니다. 예컨대 “교육받을 권리”를 규정해 놓고 이를 직접 실현하기보다는, 정부가 집행을 할 때 그 혜택을 가장 필요로 하는 사람이 덕을 볼 수 있도록 해야 합니다. 모든 사람을 평등하게 대우해야 한다는 원리에 따라서, 판사는 어떤 복지정책이든 간에 혜택을 가장 필요로 하는 사람들에게 혜택이 가도록 시정하라고 말할 수 있어야 합니다.

함재학:

판사의 역할에 대해서 언급하였는데, 한국에서는 최근 몇 년 사이 헌법재판소 재판관들이 지나치게 큰 역할과 권한을 행사한다는 비판이 있습니다. 특히 민감한 헌법적인 문제에 대해서는 결국 정치적인 판단을 내리는 것이라는 비판입니다.

드워킨:

헌법적인 사안에 대해 정치적인 고려를 완전히 배제하라는 것은 비현실적입니다. 결국 재판부에서 판단을 한다는 것은 어느 한쪽이 옳다고 말하는 것이지만, 어느 한쪽의 입장을 선호했다고 해서 중립을 지키지 않았다고 보아서는 안됩니다. 가장 중요한 것은 정치적인 고려라고 할 때, 그것이 당파적인 것인지 아니면 또는 원리에 입각한 것인지의 차이입니다. 법관도 판결을 내릴 때 특정한 정치적 입장을 취할 수는 있습니다만, 정치인과는 달리 그 입장을 원리에 입각해서 설명해야 합니다. 정치인은 자신의 입장을 굳이 설명할 필요가 없지만, 법관은 논리적으로 설득력 있게 판결을 뒷받침해야 합니다. 특히 기존의 판례에 비추어서, 그리고 역사 속에서 축적되고 발견된 원리들에 비추어서 정합성 있는 판결을 내려야 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판사에게는 무엇보다도 그 사회의 정치적 도덕에 근거한 결정을 정연한 논리로 표현할 줄 아는 능력이 꼭 필요합니다.

함재학:

결국 판사는 도덕철학에 능통해야 한다는 말인가요?

드워킨:

사실 그런 비판을 종종 받습니다. 그러나 법관에게 일정한 철학적 소양이 필요하다는 것은, 그 만큼 법학자의 역할이 중요하다는 말입니다. 즉 판결이 나왔을 때, 그것이 과연 당파적인 의미의 정치적인 판결인지 아니면 원리에 입각한 정합성 있는 판결인지에 대해서 법학 교수들은 철저히 비판적인 분석을 해야 합니다. 그러한 감시를 통해서 판사가 올바른 판결을 내리도록 유도할 책임이 법학자들에게 있습니다.

양 건:

법학자들에게는 반가운 말일지 모르지만, 국민의 대표자들이 만든 법률의 위헌성 여부를 법관이 판단하는 것 자체가 민주적 정당성을 결여했다고 보는 시각에서는 여전히 의구심이 남습니다. 어떠세요?

드워킨:

사법심사의 민주적 정당성 여부는 민주주의를 어떻게 이해하느냐에 따라 평가가 달라집니다. 다수의 의사대로 모든 결정을 내리는 것이 곧 민주주의라고 생각한다면, 사법심사는 반민주적인 제도라고 볼 수 있습니다. 그러나 다수의 의사대로 결정하면서, 그 결정을 공평한 것으로 만드는 조건들이 성립하는 경우를 생각해 보세요. 나는 민주주의를 숫자의 문제로 환원하는 것은 옳지 않다고 봅니다. 수적으로 많다는 사실만으로는 도덕적인 공평성을 보장할 수 없습니다. 나는 민주주의를 하나의 파트너십이라고 보기를 제안합니다. 정부는 평등한 배려를 가지고 모든 사람을 대하고, 모든 사람에게 정치적 결정에 대해 영향을 미칠 수 있는 기회를 보장하고, 각자가 자신에 대해 내린 결정을 존중해야 합니다. 그래야 비로소 민주적입니다. 이런 방식으로 민주주의를 이해할 때, 사법심사는 반드시 반민주적이라고 볼 수 없습니다.

양 건:

사법심사는 민주주의를 위해서 반드시 필요한 제도입니까?

드워킨:

반드시 필요하다고는 말할 수 없을지는 모르겠습니다. 내가 영국에서 공부할 때만 해도 영국은 의회주권주의의 전통이 아주 강했습니다. 그 당시 의회의 법률을 법원이 심사한다는 것은 상상도 못했습니다. 재미있는 것은 최근 영국에도 그런 태도가 많이 변하고 있습니다. 의회 상원의 일부에게 심사권을 부여하고, 심지어는 심사권을 행사하는 사람을 선출하자는 방안마저 나오고 있습니다.

함재학:

현재 한국의 법학교육은 일대 변혁을 겪고 있다. 미국식 로스쿨을 도입해서 각 학교마다 현재 신입생을 선발 중입니다. 선생님께서는 미국에서도 가르쳤고, 또 로스쿨이 없는 영국에서도 가르친 경험이 있으신데요, 어느 쪽이 더 낫다고 생각하세요?



드워킨:

이는 기본적으로 경제적인 문제라고 생각합니다. 영국이 대학원 수준의 로스쿨을 도입하지 않았던 이유에 대해서 나는, 법률가를 양성하는 데에 추가적인 경제적 부담을 주지 말아야 한다는 견해 때문이었다고 생각합니다. 물론 그 나라의 경제 규모가 그런 추가적 비용을 부담할 수 있는 상황이라면, 로스쿨을 도입하는 것이 바람직하겠지요. 사실 영국의 경우도 최근까지 일류 변호사들은 대체로 법학을 전공한 것이 아니라 철학, 정치학, 경제학 등을 학부에서 공부한 다음, 일 년 동안 별도의 단기 압축 코스를 거쳐 자격을 딴 사람들입니다. 물론 로스쿨 과정이 생기면 법학교육과정에서 더 이론적이고 철학적인 문제를 다루고 비판적인 안목을 기를 수 있겠지요. 바로 이런 점에서는 로스쿨이 더 바람직한 측면이 있습니다.

양 건:

마지막으로 한국의 젊은 법학도들에게 주고 싶은 말이 있다면, 말씀해 주십시오.

드워킨:

우선 선생님들의 얘기를 잘 들어야 합니다. 그 다음 그 말이 왜 그리고 어떻게 잘못됐는지를 규명하려고 노력해야 합니다.

로널드 드워킨 교수의 이번 강연은 ‘인권이란 무엇인가?’(20일)와 ‘우리는 평등에 대한 인권을 가지고 있는가?’(21일)다. 20일 강연에선 주된 기본적 인권이 무엇인지, 광적인 테러리즘의 위협에 대한 대응책들 중 어떤 것이 그 권리들을 침해하는지 살펴본다. 21일 강연에선 국가가 동등한 배려로서 국민을 대우해야 한다는 요청으로부터 어떤 권리들이 도출되는가를 말한다. 1931년 미국에서 태어나 하버드대 철학과와 영국 옥스퍼드대 법학과를 졸업하고 현재 뉴욕대 로스쿨 및 철학과 교수인 드워킨은 일상적 삶에서 마주치는 법률적·도덕적·정치적 문제들을 철학적 논의와 연결시킨 사상으로 현대 사회철학·정치철학계의 큰 주목을 받아 왔다.

◆ 공개강연:

20일(명동 은행회관), 21일(헌법재판소 강당) 오후 3~6시.

◆ 문의:

(02)6366-003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