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리 주택가의 일요일은 적막하다. 가게가 모두 문을 닫기 때문이다. 처음 파리에 온 한국 기업의 주재원들은 이를 몰라, 낭패를 보는 사례가 많다.
그런데 같은 일요일이라도 도심의 샹젤리제, 생제르맹 거리로 나가보면 풍경이 사뭇 달라진다. 거리엔 인파가 넘치고, 레스토랑마다 손님들로 발 디딜 틈이 없다.
'파리의 두 얼굴'을 낳는 주(主)요인은 1906년에 제정된 '일요 영업 금지법'이다. 가톨릭 국가인 프랑스는 당시 '일요일엔 교회만 가고 무조건 쉬어라'라는 취지에서 이 법을 제정했다. 100년 전 제정된 이 법률 때문에 현재도 프랑스의 가게들은 일요 불법 영업을 하다 걸리면 1만 유로(1700만원)의 벌금을 내야 한다.
그런데 최근 프랑스에선 사르코지(Sarkozy) 대통령이 '일요일 영업' 문제를 제기하면서, 이 사안이 '100년 만의 이슈'로 다시 떠올랐다. 사르코지 대통령은 '고용 확대 정책'을 발표하는 대국민연설에서 "일요일 샹젤리제 오른쪽 거리의 가게만 영업을 하고, 왼쪽은 문을 닫는 게 말이 되느냐. 왜 더 일하고 싶어하는 사람의 발목을 잡아야 하느냐"고 비판했다. 사르코지의 발언은 가게의 일요 영업이 관할 행정관청의 특별 허가 사항인 현실을 비판한 것이다.
하지만 좌파 일간지인 리베라시옹은 최근 이 문제를 다루는 특집 기사를 4개면에 걸쳐 펼치면서 "일요 영업은 업종별로 제한하는 것이지, 거리별로 금지하는 것이 아닌데, 대통령이 사실관계를 잘못 알고 있다"며 딴죽을 걸었다. 가게 서비스의 수요자 입장에선 사르코지 대통령의 문제 제기에 더 공감이 간다. 매주 미사에 참석하는 가톨릭 신자 비율이 10%도 안 돼 법 제정 취지가 이미 퇴색했다.
이 법으로 인해 소비자들이 겪는 불편은 이루 말할 수 없을 정도다. 주말에 아기 분유, 기저귀가 동이 나면 파리 교외의 대형 쇼핑몰(특별히 허가를 받은 곳)까지 차를 몰고 가야 한다. 맥주 한 잔 생각이 나도 문을 연 가게를 찾아 돌아다녀야 한다. 매년 프랑스를 찾는 7000만명의 관광객들은 일요일에 모든 백화점이 문을 닫아 쇼핑에 큰 불편을 느낀다.
사르코지 대통령은 일요 영업이 허용되면, 소매업종의 매출 증가와 고용 증대 효과를 가져와 경기 침체를 극복하는 데 도움이 될 것이라고 판단하고 있다. 일요 영업만 허용돼도 프랑스 전체 소비가 3% 이상 늘어날 것이란 분석도 있다.
하지만 야당과 노조는 "(일요 근무는) 가정 평화에 위협이 되고, 노동착취를 유발할 것"이라며 반대한다. 일부 여당의원들도 도시 대형점포의 일요 영업이 허용되면 농촌 구멍가게들이 타격을 입는다는 지역 여론을 무시할 수 없어, '일요 영업 허용'이 현실화될지는 여전히 불투명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