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명박 정부 인수위원회가 연초에 발표한 '수능에서 영어과목을 제외하고 영어능력시험(한국형 토플)을 도입하는 정책'은 현 정부의 교육정책 중 핵심적 사안이었다. 학교의 실용영어를 강화하고 이를 평가하는 시스템도 바꾸겠다는 것이었다.

그러나 발표 후 1년도 안 돼 이를 사실상 유보키로 하면서 정부는 "입시 정책을 잘못 바꾸면 사교육 시장만 키우게 되기 때문"이라는 이유를 들었다.

이것 말고도 현 정부의 교육정책 중 발표한 이후 철회되거나 유보된 굵직굵직한 정책은 한두 가지가 아니다. 2012학년부터 수능 과목을 대폭 축소하겠다는 발표는 사실상 과목 1개를 줄이는 것으로 결정이 났고, 지역교육청을 교수지원센터로 바꿔 교사연수 장소로 활용하겠다던 방침도 흐지부지됐다.

다양한 학교를 많이 만들고, 대학 입시를 확 바꾸겠다면서 홍보한 정책 대부분이 후퇴하거나 일정이 연기되고 있는 것이다. 이에 대해 "개혁 의지가 없기 때문"이라는 비판도 제기되고 있다.

"한국형 토플은 불가능한 시험"

'한국형 토플'을 대입(大入) 자료로 쓰는 것에 대해 정부 고위관계자는 "기술적으로 불가능한 시험"이라고 말했다. 전국의 수험생 55만명을 대상으로 일년에 3~4차례 치르는 이 시험을 정부가 공정하게 관리하는 것이 매우 힘들다는 것이다.

교과부 관계자는 "수능 시험을 치를 때마다 항공기 이·착륙이 올 스톱되고 온 나라에 비상이 걸리는데 전국 단위의 영어 국가시험을 여러 번 치를 수 있겠냐"며 "게다가 듣기시험의 비중이 강화되면 고사장마다 음향시설 상태가 달라 항의가 엄청날 것"이라고 말했다.

일년에 몇 차례 보는 시험의 난이도를 똑같이 유지하는 것도 불가능할 것이라는 주장과, 말하기·쓰기 시험을 치를 경우 55만명의 수험생을 평가할 원어민 인력을 구하기도 쉽지 않다는 의견도 반영된 것으로 알려졌다.

인터넷 기반의 '한국형 토플' 시험을 치를 경우 수십만명의 학생이 동시에 접속해 시험을 무리 없이 치러내기가 쉽지 않다는 의견도 제시된 것으로 알려졌다.

무엇보다 정부가 한국형 토플 유보 결정을 내린 이유는 이 시험을 준비하는 과정에서 학부모들의 사(私)교육비가 더 늘어날 것이라는 예상 때문이다. 읽기와 듣기, 말하기, 쓰기 등을 평가하는 '한국형 토플'은 사설 어학원에서 공부한 학생에게 유리할 수밖에 없는 것이다.

정부 고위관계자는 "현 정부가 사교육을 반으로 줄이겠다고 공약을 했는데, 이 시험을 도입하고 어떻게 사교육을 줄일 수 있겠냐"고 말했다.

실상 이런 문제점은 올해 초 '한국형 토플' 도입안을 발표했을 때부터 제기됐다. 정부는 실현 가능성에 대해 충분한 검토 없이, '인기 위주'의 입시안을 발표하는 데만 급급했다는 비판을 면할 수 없는 것이다.

◆교육개혁 대부분 용두사미(龍頭蛇尾)

정부가 교육정책 기조를 바꾼 것은 이번이 처음은 아니다.

올해 초 인수위는 대학입시를 상당부분 바꾸겠다고 발표했다. 예를 들어 현재 중3 학생들이 입시를 치르는 2012학년도 수능에서 시험 과목을 5과목(현재 7~8과목)으로 대폭 줄이겠다고 했다. 학생들에게 입시 부담감을 줄여주고 수능 과목이 줄어들면 사(私)교육비도 동시에 줄어들 것이라는 것이 인수위 설명이었다.

하지만 최근 이 발표 내용도 대폭 후퇴하는 쪽으로 결론이 났다.

최근 공청회를 거친 '2012학년도 입시안'의 경우 응시과목은 현재보다 1과목 줄어드는 것으로 의견이 모아졌다. 정부는 "수능 과목을 줄이면 국·영·수 사교육이 늘어나고, (과목이 없어지는) 해당과목 교사들의 반발도 고려했다"고 말했다.

이밖에 정부는 올해 초 전국의 지역교육청을 교수지원센터로 변경해 교사들의 수업개선을 돕는 기관으로 바꾸겠다고 발표했다. 하지만 최근 이 논의는 정부 내부에서 거의 중단된 상태이다.

국립대학과 시·도 교육청의 자율성을 확보하기 위해 교과부와 이들 기관과의 인사 교류를 중지하겠다는 발표도 백지화된 지 오래다.

이명희 공주대 교수는 "교육 수요자인 수험생이나 학부모 입장보다는 공급자인 교사와 교육관료 입장에서 다뤄지다 보니 교육개혁 내용이 점점 흐지부지되는 인상"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