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인선·기획취재부 차장대우

자카르타는 후텁지근했다. 현지 사람들은 춥다고 가죽점퍼 꺼내 입는 우기라는데, 서울서 갔으니 진땀 나는 여름이었다. 그곳에서 11~14일 '아시아·태평양 지역 미디어 프로그램'이 열렸다. 뉴질랜드 정부가 주관하고 EU, 노르웨이와 인도네시아 정부, 동아시아정상회의(EAS) 등이 후원한 이 행사는 유엔이 2005년에 만든 '문명연대(Alliance of Civilizations)'가 추진하는 여러 프로젝트 중 하나다. 서구와 이슬람 세계 사이의 긴장을 완화시키고 극단주의를 극복하려면 국가와 문명, 종교 간의 대화와 협력이 절실하므로, 그런 차원에서 언론의 책임과 역할을 논의해보자는 장이다.

회의실엔 한·중·일, 인도네시아 필리핀 싱가포르 말레이시아 호주 뉴질랜드 등 아태지역 언론인 약 40명이 모였다. 종교, 인종, 언어, 문화가 달라서 겪는 언론계 사정은 나라마다 너무 달랐다. 심각한 갈등이 일상화된 지역이 있고, 기사가 자신의 생각과 다를 땐 기자를 폭행하는 것이 '항의'인 곳이 있는가 하면, 기독교와 이슬람 지역에서 각각 자기 영역에서 일어난 일만 보도한다는 곳도 있었다. 우리 현실과는 너무 먼 이야기라 토론에 기여할 바가 없어서 난감했다.

답답한 마음에 바람도 쐴 겸 미국 대통령 당선자 오바마가 어릴 때 살던 집과 학교를 보러 갔다. 오바마의 어머니가 인도네시아 유학생과 재혼해 자카르타에 와 있던 시절 살던 집이다. 물어 물어 찾아가보니 듣던 대로 번듯한 주택가였다. 큰 공원이 있는 동네는 거리도 깨끗하고 집도 컸다.

그러나 조금 더 골목으로 들어가보니 빈민가가 나왔다. 오바마의 초등학교 시절 친구를 만난 곳도 그 허름한 지역에서였다. 외국기자가 찾아왔다니까 동네 사람들이 몰려들었다. 이 사람이 어린 시절 오바마와 뛰놀던 이야기를 할 때 옆에서 구경하는 것이 요즘 이 동네 사람들의 낙인 모양이었다. 그는 "오바마가 인도네시아를 잘 아니까 앞으로 미국과 인도네시아 관계가 더 좋아질 것"이라고 했다. '알고 이해하니까 더 좋아질 것'이란 믿음이다. 사실은 그것이 유엔이 주창한 문명연대가 추구하는 목표이기도 하다.

오바마는 인종적으로든 문화적으로든 자신과 다른 사람들을 이해하려는 미국사회의 노력에 힘입어 성공했다. 친아버지는 케냐인이고 새 아버지는 인도네시아인이었던 오바마는 이질적인 존재였다. 지금까지는 그로 인한 편견과 차별을 극복한 오바마의 노력에 주목했지만, 이젠 그런 차이에도 불구하고 오바마의 가능성을 알아보고 키워온 미국사회의 힘에 대해서도 생각해봐야 한다.

지난 20여 년 동안 미국 주류사회를 이끄는 주요 기관들이 일찌감치 오바마를 알아봤다. 하버드 법대는 시카고에서 풀뿌리 민주주의 운동을 벌이던 오바마를 뽑았고, 뉴욕타임스는 그가 '하버드 로 리뷰(Law Review)'의 첫 흑인 편집장이 됐을 때 기사를 써서 그를 전국적인 인물로 부각시켰다. 민주당 지도부는 그를 발탁해 전당대회 연사로 내세워 당의 비전이 어디 있는지를 보여주었다. 이질적인 존재를 받아들이고 검증하고 더 좋은 기회를 주어 전체를 업그레이드시키는 방법을 알았던 것이다.

오바마 하우스를 다녀온 후 종교 갈등도 문화 차이도 심각하지 않아 우리와 별 상관이 없었다고 생각했던 회의가 다른 의미로 다가왔다. 이미 우리도 거주 외국인 100만 시대를 살고 있다. 문화, 언어, 지역, 종교의 차이가 갈등의 원인이 되지 않고, 또 다른 가능성의 원천이 될 수 있게 하려면 다양성을 이해하고 받아들이는 안목과 용기만큼 중요한 것도 없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