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전 9시, 지하철역에서 사람들이 쏟아져 나온다. 뛰는 사람도 꽤 있다. 매일 반복되는 출근길인데도 다들 아우성이다. 급한 출근길을 유발하는 주범은 늦잠일 것이다. 초등학생 때부터 직장인이 되기까지 수십 년 동안 반복해온 '아침에 일어나기'가 여전히 힘든 까닭은 무엇일까.
1972년 2월 14일. 프랑스 동굴 탐험가 미셸 시프레(Siffre)는 텍사스주 델 리오(Del Rio)에 있는 지하 동굴로 들어갔다. 빛이 차단돼 마음대로 자고 깰 수 있는 환경 아래 인간은 어떤 수면주기로 생활하는지 알아보기 위한 실험이었다. 실험 초기, 시프레는 '사회인'이 살아가는 24시간보다 조금 긴 26시간 주기로 자다 깨기를 반복했다. 37일째부터는 아예 '하루'라는 개념 자체가 없어졌다. 어떤 날은 이틀에 한번씩 13시간을 내리 자기도 했고 실험 초기와 비슷한 26시간 주기가 되돌아오기도 했다. 1970년대 여러 명의 지원자를 대상으로 한 엘리엇 와이츠먼(Weitzman)과 찰스 차이슬러(Czeisler)의 실험 결과도 비슷했다.
나도 이른바 '백수' 시절 이런 현상을 경험했다. 초기에는 잠자는 시간과 일어나는 시간이 조금씩 늦어지더니 하루 단위로 잠들어 있고 깨어 있기를 반복했다. 수면 주기만 바뀌었을 뿐 활동 시간의 총량은 비슷했는데 가족들에게 "게을러터졌다"는 비난을 수없이 들어야 했다. 과학적 근거를 들이대며 "우리 몸의 '시계'는 24시간 주기에 맞춰 설계돼 있지 않다. 먹고 살기 위해 매일매일 '몸의 태엽'을 다시 감을 뿐이다"라고 주장해봤자 '삐딱한 시선'은 사라지지 않았다.
구글 같은 일부 기업에서는 원하는 시간에 출근해서 퇴근하는 탄력근무제를 시행하는데 회사가 돌아가는 데는 전혀 문제가 없다고 한다. 팍팍한 출근 행렬을 보면서 일찍 일어나지 못한다는 이유만으로 죄책감을 느낀다거나 게으른 사람이라고 비난받지 않는, 느긋한 사회에 대한 상상에 잠시 빠져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