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억 명의 미국인들이 4일 대통령 선거에서 선택한 것은 피부 색깔이 아니라, 변화였다. 민주당 버락 오바마(Obama) 후보의 당선과 민주당의 상·하원 재장악으로 미국 사회에는 개혁과 진보의 흐름이 일고 있으며, 조지 W 부시 (Bush) 대통령을 선장(船長)으로 했던 미국의 보수주의는 급속하게 썰물을 맞고 있다.

"잃어버린 8년" 부시 심판

부시 대통령 재임기간을 '잃어버린 8년'으로 비판하고 미국의 근본적인 변화를 추구하는 오바마 후보의 당선은 미국사회에 획을 긋는 혁명적인 사건으로 인식되고 있다.

투표가 실시된 4일 이른 아침부터 투표소 앞에 줄을 선 유권자들은 부시 대통령의 외교·경제 정책에 분명한 거부 의사를 보였고, 흑인 대통령을 선택함으로써 미국 정치사에서 뚜렷한 상징적 이정표를 세웠다. 정치 전문지 '내셔널 저널'의 제리 해그스트롬(Hagstrom) 편집인은 "이처럼 놀랄만한 선거를 본 적이 없다. 1992년 빌 클린턴(Clinton) 대통령을 만들어냈을 때의 충격보다 훨씬 더 하다"고 평가했다.

미국의 성인 유권자 10명 중 8명은 투표 직전의 여론조사에서 부시 행정부를 비판하며 미국이 가는 방향이 잘못됐다는 입장을 표명했었고, 64%라는 사상 최대의 투표율로 미국의 방향에 대한 궤도 수정에 나섰다. 6년째 계속되고 있는 이라크, 아프가니스탄 전쟁에 지친 미국인들이 경제난까지 겹치자 자신의 호주머니 사정을 먼저 걱정하기 시작했다.

버락 오바마 미 대통령 당선자의 단골 미장원에서 지지자들이 오바마의 당선 소식에 환호하고 있다. 4일 시카고의 하이드파크 헤어살롱.

인종, 미 정치 이슈에서 쇠퇴

이와 함께 이번 선거는 흑백(黑白) 및 인종갈등의 문제가 미국 사회를 지배하는 중요한 정치 의제에서 사라지고 있음을 시사한다. 미국의 인구 구성에서 12%를 차지하는 흑인이 대통령에 당선된 의미는 어떤 형태로도 평가절하될 수 없다. 흑인과 백인의 거주 지역과 환경이 뚜렷하게 구별되고, 흑인 4명 중 한 명이 절대 빈곤층인 상황에서 흑인 대통령의 당선은 정치적 의미를 뛰어넘는 것이다. 이에 대해 뉴욕타임스는 "미국인들이 변화를 선택함에 따라 인종의 벽(racial barrier)을 무너뜨렸다"고 평가했다. 미 노스캐롤라이나주립대의 제임스 화이트(White)교수는 "오바마의 대선 승리는 미국이 불행한 인종차별의 역사에 종지부를 찍을 수 있게 됐다는 것을 보여주는 것"이라고 말했다.

오바마, 약속한 '변화' 이룰까

오바마의 당선으로, 지난 8년간 미국을 지배했던 미국식 보수주의는 당분간 퇴조할 전망이다. 1964년 이후 대선에서 한번도 빠짐없이 공화당 대통령 후보를 지지해 온 버지니아를 비롯해, '레드 스테이트(공화당 우세지역)'에서 오바마 후보가 승리한 것은 정치 지형의 변화를 뜻한다. 또 오바마가 인터넷을 통해서 300만 명의 소액 후원자를 만들고, 이를 열성적인 지지자로 정치 자원화한 것도 앞으로 미국인들의 정치참여 방향과 문화에 큰 영향을 미칠 것으로 보인다.

인종 간의 벽이 허물어지며 흑백(黑白) 화해 분위기가 조성되는 것도 오바마 행정부에 힘을 실어줄 수 있다. 오바마 캠프에서 만난 백인 자원 봉사자 질 마시노(Massino·여성)는 "약 40세가 분수령인 것 같다. 마흔 살 아래의 세대에서는 능력이 문제가 될 뿐, 인종이 아무런 문제가 되지 않는다"며 미국의 변화 가능성에 무게를 뒀다.

'오바마 대통령'은 이같이 달라진 상황과 높은 지지를 바탕으로 ▲이라크에서의 미군 철수 ▲빈부격차 완화 ▲5% 부유층에 대한 세금강화 ▲의료보험 개혁을 강화할 전망이다. 국제사회는 47세의 젊고 똑똑하지만 연방 상원의 초선 의원이라는 짧은 경력의 오바마가 최악의 경제 위기 속에서 어떻게 제한된 자원을 활용해 새로운 미국의 시스템을 만들어갈지, 국제사회에 어떤 리더십을 발휘할지에 주목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