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이징올림픽 남자 역도 69㎏급에서 불굴의 부상 투혼을 선보였던 이배영(경북개발공사)은 10월 말 태릉선수촌에서 짐을 싸서 나왔다. 역도 대표팀 최고참으로 내년이면 서른 살이 되는 이배영은 "할 일을 다 하고 나왔다는 생각에 마음이 가벼웠다"고 했다. 그가 홀가분하게 짐을 쌀 수 있었던 또 다른 이유는 베이징올림픽 금메달리스트인 후배 사재혁(강원도청) 덕분이라고 했다.
이배영은 5일 경기도 고양시 고양꽃전시관에서 열린 2008아시아클럽역도선수권대회 남자 77㎏급 경기에 사재혁과 함께 출전했다. '불꽃 튀는 라이벌 대결'은 펼쳐지지 않았다. 원래 69㎏급 선수인 이배영은 합계 295㎏(인상 135㎏, 용상 160㎏)을 들어 9명 출전 선수 중 6위에 그쳤다. 자신의 최고 기록(343㎏)에 크게 못 미치지만 이배영은 개의치 않는 표정이었다. 그는 "전국체전 끝나고 20여일 만에 처음 바벨을 잡았다. 다치지 않은 게 다행"이라며 웃었다.
먼저 경기를 마친 이배영은 사재혁을 응원했다. 사재혁은 인상 156㎏, 용상 192㎏, 합계 348㎏을 들어 중국의 리하이(합계 330㎏)를 가볍게 제치고 3관왕에 올랐다. 베이징올림픽 합계 기록(366㎏)엔 못 미치지만 지난달 전국체전(341㎏)보다는 좋았다. 이배영은 "올림픽 후 각종 행사 참석으로 운동을 전혀 못했는데도 저 정도를 들다니 대단하다"고 사재혁을 칭찬했다. 사재혁은 "중국 선수에게 져 망신 당할까봐 조금 긴장했다. 지금 몸 상태로 낼 수 있는 110%를 해낸 것"이라고 했다. 오랜 기간 태릉선수촌에서 함께 훈련한 두 선수는 상대방이 곧 '참고서'였다. 이배영은 "기본 근력이나 폭발력이 나보다 월등하다"고 사재혁을 부러워했다. 사재혁은 "형은 바벨을 들기 위한 근육만 효율적으로 쓴다. 그래서 역도를 되게 쉽게 하는 것처럼 보인다"고 말했다.
두 번의 올림픽을 치른 이배영은 선수촌을 떠났고, 사재혁은 두 번째 올림픽을 위해 선수촌에 남았다. 이배영은 "앞으로 진로를 생각하느라 고민이 많다. 결정된 것은 아무것도 없지만 역도를 안 할 수도 있다"고 했다. 그는 "대표팀이 얼마나 물갈이가 될지 모르겠지만 이젠 사재혁이 남자 대표팀의 중심이다. 자만하지만 않으면 한국 역도가 더욱 빛나는 결과를 맞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이에 사재혁은 "형은 선수촌을 나가도 워낙 재주가 많아 먹고 사는 데엔 아무 지장이 없을 것"이라고 농담을 했다.
사재혁에게 이번 대회는 내년 고양 세계역도선수권대회를 위한 리허설 무대였다. 사재혁은 "오늘 경기를 끝으로 연말까지 아무 생각 없이 쉰 다음에 세계선수권 준비에 들어가겠다"고 했다. 올림픽 후유증으로 양쪽 무릎 및 몸의 근육이 많이 빠진 상태라서 컨디션 회복이 가장 시급하다는 얘기였다. 그는 "인상에서 무릎이 빨리 뒤로 빠지는 약점을 보완해야 한다. 내년 세계선수권대회에서 세계기록을 세우는 게 목표"라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