희빈 장씨의 아들 경종(景宗)의 정적이던 노론은 경종 1년(1721) 8월 사간원 정언 이정소(李廷火肅)를 시켜 '후사(後嗣)를 빨리 책봉하라'고 상소하게 했다. 아들 없는 서른네 살의 임금에게 후사책봉을 주장한 것은 태종 같으면 삼족(三族)이 족주(族誅)당할 일이었다. 경종이 이를 받아들여 노론이 지지하는 연잉군(延�君:영조)을 세제(世弟)로 삼았으나 두 달 후에는 사헌부 집의 조성복(趙聖復)이 세제 대리청정을 주장했다.
신하의 대리청정 주청은 그 자체가 역심(逆心)의 발로였으나 경종은 이번에도 "진달한 바가 좋으니 유의(留意)하지 않겠는가?"라면서 받아들였다. 그러나 '경종실록'의 사관(史官)이 "주상으로 하여금 정무를 놓게 만들려고 조성복을 사주하여 상소를 올리고 상시(嘗試:속마음을 떠 봄)하였다"는 비판처럼 경종의 왕위를 뺏기 위한 대리청정 주장은 소론의 강력한 반대에 부딪혀 무산되었다.
급기야 그해 12월 소론 강경파 김일경(金一鏡) 등은 '적신(賊臣) 조성복과 사흉(四凶:노론 4대신) 등 수악(首惡)을 일체 삼척(三尺:국법)으로 처단하소서'라는 신축소(辛丑疏)를 올려 정국을 발칵 뒤집어 놓았다. 노론에서 오히려 김일경 처단을 요구하자 경종은 종전의 유화적인 태도를 바꾸어 하룻밤 사이에 전격적으로 노론 정권을 소론으로 갈아치웠다. 이때 '경종실록'의 사관(史官)은 "천둥이 울리고 바람이 휘몰아치며 하늘과 땅이 뒤집히는 듯했으므로 군하(群下)가 비로소 주상이 은덕(隱德)을 도회(韜晦)함을 알았다"라고 쓰고 있다.
도회는 요즘 중국의 발전전략인 '도광양회(韜光養晦)'의 약자로서 '재능을 감추며 기다린다'는 뜻이다. '삼국지연의(三國志演義)' 21회에 나오는 말인데, 조조(曹操)에게 의탁한 유비(劉備)가 채소밭만 가꾸는 것을 보고 관우(關羽)·장비(張飛)가 불평하자 "두 형제가 알 일이 아니다"라고 막고, 조조가 주연을 베풀 때 천둥, 번개에도 벌벌 떨어 조조를 안심시켰다는 고사(故事)이다. 1조9000억 달러에 이르는 중국의 외환보유고는 화평굴기(和平�起)가 말뿐이 아니었음을 보여준다. 우리도 내실을 우선하는 방향으로 가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