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물 세 해 동안 나를 키운 건 팔할(八割)이 바람이다.' 서정주 시인은 '자화상'(1939)이라는 시에서 바람을 끌어다 '자신의 삶의 이력과 의지'를 굳게 피력했었다. 그 '바람'은 혹자가 말하듯, '끊임없는 방랑' '세상 속에서의 시달림' '흙먼지와 추위' 같은 것들이었다. 바람은 그래서 '흔들리고' '고민하고' '갈등하는' 어쩔 수 없는 숙명과도 같은 사람의 속성을 뜻한다.
서양화가 정희남(광주교대 교수)씨가 '바람으로 여는 그림' 전을 연다. 6~12일 광주 대동갤러리(동구 금남로3가, ☎(062)222-0072).
화가는 '앞산과 뒷산에 장대를 걸치면 빨래를 널어도 될 만큼 조그마한 산골마을' 태생. 그 마을앞을 지나는 긴 숲길과 크고 맑은 강물보다 매섭고 추운 강바람이 싫었고 척박하고 불편했던 시골살이가 싫었다고 했다.
그러나 그 동안 그려온 소재들이 고향마을 주변 전체에 널려 있었던 것이었다. 전시작들은 들길과 들꽃, 강, 갈대<사진&rt;, 하늘과 노을, 가을과 꽃, 길, 야경으로 나뉜다. 하지만, 이 모든 것을 관통하는 것은 바람. 바람은 다른 사물을 통해 자신의 존재를 알리기 때문. 화가가 말하듯 "모든 사물을 움직이게 하고 숨을 쉬게 하는 바람은 생명의 원동력"이다. 또 "우리 마음 속에 끊임없이 술렁이는 바람이야말로 또 다른 생명을 잉태하는 모티브"라고 했다.
소개의 글을 쓴 시인 도종환은 "어쩔 수 없이 받아들여야 하는 운명과, 흔들리고 몸부림치면서 자유롭고자 하는 갈망 사이를 바람이 채우고 있다"며 "그녀가 그리는 바람 역시 생에 대한 강렬한 의지를 불러오는 바람이길 바란다"고 했다. 화답하듯 "멈추지 않은 바람처럼 붓질은 계속될 것"이라고 했다.
전남 화순 동복 출생. 이번이 12번째 전시회. 7년만의 '외출'이다. 서울 인사동 한국미술관에서 오는 13~18일 전시회를 계속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