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세훈 서울시장은 최근 이명박 대통령을 만났다. 실물경제를 살리려면 서울에 첨단산업시설을 유치하도록 규제를 풀어야 한다는 점을 한참 설명했다. 배석했던 청와대 참모들은 "지방의 반발이 만만치 않을 텐데 이 건은 뒤로 넘기는 게 좋겠다"며 반대 의사를 밝혔다. 오 시장이 수치와 근거를 제시하면서 계속 규제 완화 필요성을 설명하자, 조용히 듣고 있던 이 대통령은 "할 건 해야지"라고 말했다. 참모들은 "가뜩이나 수도권만 챙긴다는 말이 나오는데…"라면서 신중론을 제기했지만, 이 대통령은 "욕을 먹더라도 한번에 먹는 게 낫지. 경기를 살려내려면 그렇게 하는 게 옳다. 그렇게 하세요"라고 참모들에게 지시했다고 한다. 지난달 30일 정부가 수도권에 공장 신설 등을 허용한 수도권 규제 완화 조치는 참모들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이 대통령이 추진을 지시해 이뤄졌다.
◆각종 현안에 "내 길 간다"
이 대통령이 최근 각종 현안들에 대해 '고'(GO)를 외치고 있다. 참모들이 이런 저런 정치적 고려 때문에 결정을 미루자고 건의할 때도, 이 대통령이 밀어붙이는 쪽으로 방향을 잡아가고 있다. 서울시장 재직 당시 청계천 복원 등이 무리하다는 의견에 대해 '해봤어?'라며 추진했던 때가 떠오른다는 것이다. '촛불'에 데고, 경제 위기에 휘청거렸지만, 올해가 아니면 'MB 개혁'은 물 건너간다는 판단 때문으로 보인다. 측근 의원은 "이 대통령은 자신의 재임 중 큰 선거 없는 해가 내년밖에 없는데, 올해가 넘어가면 아무 것도 할 수 없다고 느끼고 있는 듯하다"고 말했다.
종부세 논란에서도 찬반이 엇갈리는 가운데 이 대통령은 자신의 정체성을 확실히 하는 쪽으로 가닥을 잡았다. 종부세에 대해 강만수 기획재정부 장관은 "반드시 없애야 할 세금"이라는 입장인 반면, 청와대 관련 수석들은 "정치적으로 부담이 크다"며 당장 서두를 일이 아니라고 맞섰는데, 이 대통령은 "어차피 해야 할 일이라면 미룰 이유가 없다"고 강 장관 쪽 손을 들어 주었다는 것이다. 종부세 완화가 이뤄지지 않을 경우 현재 남아있는 지지층까지 이탈할 가능성이 있다는 피해의식도 이 같은 결심을 뒷받침한 것으로 보인다.
◆강만수 지키며 FTA 선제
'한·미 간 통화 스와프(교환) 협정' 체결을 계기로 누그러지긴 했지만, 한때 경질 요구가 빗발쳤던 강만수 장관을 끝까지 지키기로 한 것도 이 대통령의 '마이 웨이'를 읽게 해주는 대목이다. 이 대통령의 한 측근 인사는 "다들 강 장관을 욕했지만, 성과를 낸 사람은 이 대통령이 믿던 강 장관 말고는 없지 않느냐. 앞으로 여론보다는 자신의 판단을 더 신뢰할 것"이라고 말했다.
이 대통령은 지난달 31일 '제21차 한미 재계회의' 대표단과의 청와대 간담회에서 "미국 통과 여부와 관계없이, 한국에서는 한미FTA 연내 통과를 노력하고 있다"고 했다. 일부에서 '미국도 가만있는데 왜 앞장 서야 하느냐'고 반발했지만, 이 대통령은 미국이 재협상을 요구하기 전에 미리 국회에서 통과시켜 놓아야 미국의 요구를 거부할 수 있는 명분이 쌓인다고 언급한 것으로 알려졌다. 또 부시 대통령이 현 정부에 호의적일 때 미국 내 통과를 압박할 수 있을 것이라는 판단도 한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이 대통령의 강공(强攻)이 성공할지 여부는 미지수다. 야당은 이미 정기국회를 대여(對與) 공세의 마당으로 삼겠다고 공언한 데다, 종부세 등의 개정에 대해서는 여론이 야당을 지원하고 있다고 판단, 적극적으로 막겠다는 방침이다. 이럴 경우 예산안은 물론이고 법안 한 건도 합의 처리하지 못할 가능성이 높고, 최종적인 정국 경색의 책임은 이 대통령에게 돌아갈 수밖에 없다. 한나라당의 한 중진 의원은 "밀어붙이는 것도 필요하지만, 여론 지지 없는 'MB식 개혁'은 제2의 '쇠고기 파동'을 불러올 수도 있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