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술작품의 가격은 어떻게 매겨지나요?" 내가 종종 듣는 질문이다. 예전에는 그림의 크기인 '호'수에 따라 가격이 매겨졌지만 요즘엔 크다고 해서 반드시 비싼 것도 아니다. 작품을 만드는 데 노동력이 많이 들었다고 해서 가격이 높아지는 것은 더더욱 아니다.
그러고 보니 이미 19세기 말 영국에서 예술과 노동력에 관한 언쟁이 있었다. 당시 최고의 문예 비평가이던 러스킨은 물감을 통째 부어놓은 것 같은 소위 '정성 없는' 작품이 어마어마하게 호가되는 것에 대해 악설을 퍼부은 적이 있었다. 작품을 그린 화가는 명예훼손을 이유로 러스킨을 고소했고 마침내 재판이 벌어졌다. "작품을 완성하는 데 시간이 얼마나 걸렸죠?" 판사의 질문에 화가는 비아냥거리며 이렇게 답한다. "이틀 걸렸죠. 하루 재빨리 해치우고 나서 다음날은 놀면서 말렸지요." 결국 예술작품의 가치는 시간과 공을 들인 수고와는 관계없는 '그 무엇'이라는 판단이 내려졌고, 러스킨은 재판에서 완패하고 말았다.
오늘날에도 예술가의 존재는 노동력 자체보다는 그가 만들어낸 작품으로 말해지는 것이 사실이다. 그러나 그런 이유 때문에 수많은 무명의 예술가들이 힘겹게 살고 있다.
예술은 삶 속에 있으면서도 동시에 삶을 넘어선 도달할 수 없는 '그 무엇'이다. 무형의 '그 무엇'을 작품과 함께 구매하고 싶은 욕구에서 정해지는 것이 바로 예술품의 가격일 것이다. 하지만 예술의 본성이 그렇다고 해서 예술가마저 현실로부터 완전히 자유로운 영혼이라고 착각해서는 안 될 것 같다.
※11월 '일사일언'은 이주은씨를 비롯해 소설가 백가흠씨, 서성록 안동대 교수, 김주환 과학 칼럼니스트가 번갈아 집필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