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 위기가 언제까지 계속될지, 위기 극복이 가능하기는 한 것인지 해답을 모르는 국민은 하루하루가 불안의 연속이다. 막노동으로 생계를 꾸리는 노동판 근로자들, 거리에 좌판을 벌여놓고 손님 대신 찾아 든 파리만 휘휘 쫓고 있는 노점상들, 대리운전이나 퀵서비스 말고 달리 할 일을 찾지 못하는 반(半)실업의 사람들…. 경제의 찬바람은 벌써 이 울타리를 넘어 문닫은 의류제조업체, 도산한 건설업체 직원들의 초조하고 불안한 마음을 할퀴고 있다.

우리는 힘든 이웃을 껴안으며 함께 불황을 견뎌내야 한다. 어려운 이웃이 낙오하는 것은 그들만의 일이 아니다. 우리의 한 모서리가 떨어져 나가는 것이고 사회의 안전이 동시에 허물어지는 것이다.

IMF가 터지기 직전인 1997년의 복지 예산 규모는 15조원이었다. 올해는 67조6500억원이다. 정부 전체 예산(256조원)의 26.3%다. 국민연금이나 고용보험 지급액 35조원을 빼면 저소득층 주택지원비 14조7000억원, 빈곤층 기초생활보장비 6조8500억원, 보건 예산 5조9000억원, 기초노령연금 등 3조5000억원, 보육·여성 지원비 1조6000억원이다.

복지 예산은 공무원이 작성하는 책상 위의 보고서 수치로는 분명히 늘었다. 문제는 복지의 당사자인 저소득 빈곤층이 이 복지예산에 기대서 추위를 막고 배고픔을 덜고 아이를 학교에 보내고 아픈 몸을 다스릴 수 없다고 느끼고 있다는 것이다. 그 가장 큰 이유 중 하나는 예산이 가야 할 곳으로 흐르지 않고 엉뚱한 데서 새고 있기 때문이다. 저수지는 여러 개 건설했는데 수도 파이프로 물이 새니까 고지대(高地帶) 수도 사정은 나아지지 않는 이치나 마찬가지다.

작년 복지부 조사에서 기초생활보장비 지원을 받는 사람 가운데 차명으로 사업자등록을 해놓고 장사를 해서 많은 소득을 올리는 사람, 세금을 납부하지 않는 직종에 근무해 소득 추적이 안 되는 사람, 남의 명의로 주식에 투자해 돈을 버는 사람들 등등 1억원 이상의 예금을 갖고 있는 사람들이 허다한 것으로 드러났다. 이들이 빼먹는 돈만 작게 잡아도 연 4000억~5000억원에 달할 것이라는 추정이다.

실업급여 같은 것은 무슨 구멍으로 얼마의 돈이 새고 있는지조차 가늠할 수 없다. 부산의 브로커들은 유령 화장품 판매업체 59개를 만들었다가 폐업시킨 뒤 직원 324명 명의로 실업급여 14억원을 타냈다. 장애인을 위해 지급되는 연간 1300억원의 LPG차량 지원비도 밑 빠진 시루 꼴이다. 최근 조사에서 사망한 장애인 명의로 이 돈을 받는 사람이 4582명이나 됐다.

복지 예산을 만드는 정치인이나 집행하는 공무원들은 한 번에 수조원씩 지출 항목을 만들어놓지만 그 돈이 진짜 꼭 필요한 데로 가고 있는지는 살피지 않는다. 쌀 직불금(直拂金)만 해도 2006년 전체 1조2000억원 가운데 14%인 1683억원이 엉뚱한 데로 새 나갔다.

형편이 어려운 화물차 운전사들을 지원한다며 만든 유가보조금의 경우도 2004~2007년의 4년간 가짜 영수증과 허위 주유(注油)장부를 만들어 타간 돈이 전체 3조2262억원의 27%인 8672억원에 달했다. 이런 복지의 누수(漏水)만 철저히 막았더라도 진짜 필요한 사람에게 돌아가는 유가보조금 총량은 27% 늘어날 수 있었던 것이다.

후발(後發) 복지국은 선발 복지국이 겪은 실패를 보고 그 시행착오를 피할 수 있는 후발의 이점(利點)을 누려야 한다. 그러나 우리는 선배 복지국가가 넘어진 바로 그곳에서 똑같이 넘어지고 있다. 1960년대 미국 존슨 대통령은 '위대한 사회(Great Society)'를 건설한다면서 빈곤층, 노인, 결손 가정 지원을 위해 빈곤층 지원 예산을 1965년 65억달러에서 1980년 150억달러로 늘렸다. 그러나 빈곤층 숫자는 1965년이나 1980년이나 2900만명으로 똑같았다. 복지 예산을 증가시킨다고 해서 그 혜택이 저소득 빈곤층으로 가는 게 아니었다. 늘어난 복지 예산은 가짜 영세민, 복지 장사꾼, 복지 담당 공무원의 배나 불려놓았고 근로자의 일하려는 의욕만 떨어뜨렸다.

경쟁에서 탈락하고 넘어진 사람이 다시 일어서서 제 발로 걸을 수 있어야만 우리 경제 우리 사회가 함께 건강해진다. 빈부 격차로 인한 사회 갈등과 공동체 와해를 막아주는 발판이기도 하다. 복지 예산은 자선이 아니라 사회적 투자라는 말이다.

복지 예산이 꼭 가야 할 곳에 정확하게 배분되도록 복지의 누수를 철저히 틀어막지 못하는 허울좋은 복지는 사회 경쟁력을 떨어뜨릴 뿐이다. 지금이야말로 정부가 고(高)효율 복지 실현에 팔을 걷어붙여야 할 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