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간 문예지 문학사상 11월호의 표지가 시인 기형도(1960~1989) 초상화로 꾸며졌습니다. 내년 3월이면 기형도 시인 20주기가 됩니다. 문학청년들 사이에 통과제의(通過祭儀)의 경전처럼 읽히면서 지금까지 40여만부 이상 팔린 기형도의 처음이자 마지막 시집 《입 속의 검은 잎》 출간 20주년이기도 합니다. 이를 맞아 기형도론(論)을 모은 한 권의 책이 내년에 나올 예정입니다.

'사랑을 잃고/ 나는 쓰네…'로 시작하는, 어느덧 한국인의 애송시로 꼽히는 〈빈집〉의 시인 기형도는 만 29세 생일을 엿새 앞두고 서울 시내의 한 심야극장에서 뇌졸중으로 숨진 채 발견됐습니다. 그가 남긴 시집 《입 속의 검은 잎》은 절망과 고독과 상실의 시대를 살아가던 청춘의 우울한 영혼을 노래했습니다. 시집 제목은 더 이상 말할 수 없는 시인을 대신해서 평론가 김현(1942~1990)이 정했습니다. 시집 해설을 쓴 김현마저 세상을 뜸으로써 이 작은 책의 활자들은 문학적 비문(碑文)이 됐고, 감수성이 예민한 젊은 독자들의 영혼에 뜨겁게 각인됐습니다. 그 이후 오랫동안 '기형도는 젊어서 죽음을 예감했던 시인'이란 식으로 어둡게 인식됐습니다.

서양화가 전지연씨가 그린 기형도 시인의 초상화.

그런데 문학사상 11월호에 기형도를 회상한 글을 쓴 김영승 시인은 "기형도는 죽음의 시 순교자인가? 죽음의 화신인가? 죽음의 사도인가? 다 가당치 않은 허언들"이라며 "한국 현대시 100년을 맞아 기형도의 시를 죽음에서, 카타콤에서 구원하고 해방시켜주는 것은 살아있는 시인들이 할 일"이라고 제안했습니다. '내가 만난 시인 기형도는 유령이 아니라 '라면 먹을까요? 라면? 라면 말고 떡라면 먹지요. 떡라면 어때요? 아 경악! 경악? 갈비탕 드시겠어요? …' 하고 재잘대길 잘하던 아주 경쾌하고 발랄한 보편 타당성 있는 청년이었다'는 겁니다. "나는 진실로 처음 기형도를 만났을 때나 지금까지 변함없이 그의 시편 그 어느 구석을 정독해 보아도 '죽음의 냄새'가 느껴지지 않는다"고 한 김영승은 "그것은 삶의 냄새였고 그 죽음의 이미지들은 그렇게 살고 싶어했던 삶의 한 건강한 장치였을 뿐이다. 그의 시는, 아니 시적 공간은 다 연극의 소도구, 조명 같은 장치이며 효과였을 뿐"이라고 역설했습니다.

사실 김영승 이외에도 기형도의 서정성과 환상성을 주목한 시인·평론가들이 적지 않았습니다. 때이른 죽음이 만든 기형도 시인의 전설은 이제 20주기를 맞아 새로운 시인의 탄생 설화로 바뀔 때가 된 모양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