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8년은 미국 금융자본이 일본 경제의 숨통을 조여 오기 시작한 때이다. 1997년 12월 야마이치(山一)증권 파산과 함께 일본 금융이 적나라한 치부를 드러낸 이듬해였다. 상징적인 사건이 일본 제조업을 대표하던 도요타자동차에서 일어났다. 당시 아시아 약소국의 제왕처럼 군림하던 미국 신용평가회사 '무디스'가 8월 20일 도요타자동차의 신용등급을 최고 등급인 'AAA'에서 'AA1'으로 한 단계 하향 조정한 것이다.
무디스가 꼽은 하향 조정의 세 가지 이유 중 마지막 이유가 파란을 일으켰다. 도요타가 고수하는 '종신고용' 탓이라는 것이다. 시장이 어려우면 인력 감축으로 인건비를 줄여 이익을 유지해야 하는데 도요타는 그럴 수 없다는 것이다. 일본의 대표기업을 콕 찍어 일본의 대표적 경영방식을 공격했다는 점에서, 사실상 일본 경제를 향해 '일본식 경영의 패배'를 선언하라는 것과 같았다.
도요타는 한 발짝도 물러나지 않았다. 오쿠다 히로시(奧田碩) 당시 사장은 "글로벌 스탠더드란 이상한 말에 놀아나서는 국제 경쟁에서 이길 수 없다"고 말했다. 당시 영미식 자본주의 시스템을 얘기하던 '글로벌 스탠더드'는 한국에선 누구도 부정하기 힘든 세기적 대세(大勢)로 받아들여질 때였다. 오쿠다는 또 외부의 인력 구조조정 압력에 대해 "직원의 목을 자르는 경영자는 스스로 배를 가르라"는 말도 남겼다.
말만 번드르르한 것이 아니었다. '인력 구조조정이 없는 고(高)수익' 구조를 유지하기 위해 2000년 7월 "CCC21'이란 이름의 대규모 부품 구조조정에 착수했다. 혁신과 단가 인하를 통해 주요 170개 부품의 구매 비용을 평균 30% 삭감하는 작업이었다. 그 결과 도요타는 2000년 이후 4년 동안 1조엔을 절감할 수 있었고, '1조엔 순이익 시대'를 화려하게 열 수 있었다.
2000년대 초반 도요타가 대표하는 일본 대기업의 수익력 회복은 일본이 금융위기를 비롯한 장기 경제불황을 극복하는 결정적인 계기가 됐다. 종신고용 유지와 수익력 회복의 대가로서 도요타자동차 근로자들이 내놓은 것이 2002년부터 5년 동안 이어진 그 유명한 '기본급 동결' 조치였다. 물론 인력 구조조정 대신 단행된 부품 구조조정으로 하청 부품업체가 인력 삭감의 부담을 상당 부분 대신 떠안았지만, 도요타의 도전이 경제위기 극복으로 귀결됐다는 것을 누구도 의심하지 않는다.
지난달 일본 공중파 TV도쿄의 메인 뉴스는 스튜디오를 아이치(愛知)현 도요타(豊田)시로 옮겼다. 미국 금융회사 리먼브러더스가 파산하고 세계 증시가 폭락한 날이다. 와타나베 가쓰아키(渡邊捷昭) 도요타자동차 사장이 데스크에 앉아 앵커와 함께 미국발 금융위기의 대처 방안을 얘기했다. 와타나베 사장은 2000년 'CCC21'을 주도해 성공시킨 경영자다.
같은 날, 한국 MBC가 스튜디오를 경기도 기흥으로 옮겨 권오현 삼성전자 반도체 총괄 사장과 함께 뉴스를 진행했다고 생각하면 의미를 이해하기 쉬울 것이다. 기흥은 삼성전자 반도체 주력공장이 있는 곳이다. '일본이 믿을 건 결국 기업' '도요타가 있으니 걱정할 것 없다'는 든든한 메시지를 시청자들에게 전달한 것이다.
1997년 시작된 한국 경제위기의 수습 과정을 두고 자신이 극복한 양 말하는 관료들이 적지 않다. 하지만 한국 관료는 위기의 주역일 뿐, 극복의 주역은 아니다. 경제의 밑바닥에서 침몰하는 한국호를 끌어올린 것은 천문학적 이익과 고용을 유지해준 기업이었다. 삼성, 포스코, LG, 현대자동차, 그리고 수많은 중소기업들. 이 순간 우리가 확신하는 것은, 이들이 있는 이상 한국은 무너지지 않을 것이란 사실 하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