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3일 오후 2시 강원도 춘천시 금병산. 빨간 모자를 쓴 가상 적병(敵兵) 1명이 산 중턱을 향해 도망갔다. 곧이어 8명의 수색정찰대가 2마리의 군견을 앞세우고 수색에 나섰다.
"찾아!" 군견병의 명령에 독일산 셰퍼드 '격구'가 갈대 숲을 폭 20여m의 지그재그 형태로 훑으며 산 중턱을 향해 전진했다. 격구는 공기 중에 떠다니는 적의 냄새를 감지해 추적의 단서를 찾아내는 '수색견'이다.
250m 정도 갔을 때, 격구가 군견병에게로 돌아와 조용히 땅바닥에 앉았다. 적을 발견했다는 신호였다. 그 순간 풀숲에 엎드려 있던 적병이 도망가기 시작하자 이번엔 '랩스'가 적병을 향해 달려갔다. 랩스는 수색견이 지목한 단 한 가지의 냄새만을 뒤쫓는 '추적견'으로, 빠르고 집중력이 강하다. 10여m도 가지 못하고 랩스에게 팔을 물린 적병은 그 자리에 쓰러졌다. 훈련 종료. 이곳은 육·해군과 해병에서 활약하는 군견을 길러내는 제1군견훈련소다.
제1군견훈련소는 1966년 국내 최초의 군견훈련소로 문을 열었다. 우리나라 '군견'의 역사도 이때 시작됐다. 이곳에서 지금까지 배출된 군견은 대략 2만여 마리. 이전에는 주한미군만이 군견을 보유했으며, 일선부대에서 주먹구구로 군견을 운영한 경우가 있었다.
제1군견훈련소는 지난해 12월 육군 제3군견훈련소와 해군·해병대의 군견훈련소를 흡수한 통합 군견훈련소로 개편됐다. 현재 이곳에서는 200여 마리의 군견이 교육을 받고 있으며, 이곳을 '졸업'한 600여마리가 야전부대에 배치돼 있다.
같은 날 오후 1시쯤, 제1군견훈련소 출산동(出産棟)의 분만실에서는 평생 새끼만 낳는 전문 분만견 '강'이 새끼를 낳고 있었다. '강'은 독일계 순수 혈통의 셰퍼드로 몸값이 2000만원에 이른다. 이곳에는 암컷 40여 마리와 수컷 10여 마리 등 50여 마리의 전문 분만견이 있다.
군견들은 태어나는 순간부터 군견병들과 끈끈한 유대관계를 맺는다. 출산동의 군견병들은 24시간 동안 3교대로 돌아가면서 식사·운동·배변상태 등을 점검하며 강아지들을 돌본다.
생후 3개월이 되면 강아지들은 중견동(中犬棟)으로 옮겨져 기초 훈련을 받는다. 어른티가 나는 생후 7개월째가 되면 '군견 적격 테스트'를 받게 된다. 약 5분에 걸쳐 진행되는 이 테스트는 개들에게 삶과 죽음을 가르는 시험장이다.
개들은 길이 40m, 폭 2m의 모래밭으로 된 칸막이 시험장 천장에 매달린 움직이는 테니스공을 5분여 동안 쉴 새 없이 쫓아다녀야 한다. 집중력과 체력을 시험하는 것이다. 중간에 공을 놓쳐서 멍하니 있거나 힘들다고 포기하면 실격이다.
실격한 개들에게는 한 달 간격으로 2번의 재시험 기회가 주어진다. 여기서도 탈락한 개들은 즉시 안락사되거나 수의과 대학에 임상실험용으로 기증된다. 테스트 통과율은 25% 수준이다. 나머지는 모두 폐사된다. 훈련소장 나익주 대령은 "훈련을 마친 군견은 보통 1000만원 수준이고, 탈락견이라 하더라도 혈통이 우수한 개들이라 사회로 배출될 때 뒷돈이 오가는 등 군의 명예를 훼손하는 각종 부작용이 발생할 수 있다고 판단해 취하는 조치"라고 말했다.
이후 개들은 적성에 따라 수색·추적·경계·탐지 등 4가지 가운데 한 종목으로 8~12개월의 훈련을 거친다. 이 훈련을 마쳐야 정식 군견으로 임명되며, 견번(犬番·군번)이 주어진다. 다만 '전투장비'로 분류되기 때문에 계급은 없다.
군견에 들어가는 관리 비용은 1년에 100여 만원 정도. 그러나 워낙 '비싼' 몸이다 보니 병원시설은 병사들이 이용하는 사단급 의무대보다 훨씬 낫다는 평가다. X선 촬영기와 초음파 진단기, 혈액검사기, 혈청 분석기 등 고가 장비가 수두룩하다.
군견 1마리당 1명씩의 전담 군견병이 배정되는 것은 테스트를 통과한 직후다. 보병 소총수 주특기를 가진 병사가 훈련소를 퇴소한 뒤 전방 수색 부대나 군견훈련소에 배치될 경우 군견병 역할을 맡게 된다.
수색견 '격구'를 맡고 있는 민동준 병장은 "전담 군견병과 군견의 관계는 전우 그 이상으로, 형제나 다름없다고 보면 된다"고 했다. 실제로 민 병장은 지난해 가을 수색정찰훈련을 하다 발을 헛디뎌 20여m 낭떠러지에서 나무뿌리를 잡고 매달렸는데 격구가 이를 보고 주변을 지나가는 다른 부대원들에게 짖어 구출될 수 있었다고 했다.
군견은 8~10세가 돼 임무 수행능력이 떨어지면 군견훈련소로 돌아와 안락사 처리된다. 지난 17일에는 군견병과 함께 재교육을 받던 100마리의 군견 가운데 12마리가 안락사 처리됐다. 폐견 조치된 군견의 사체는 화장(火葬)되며, 묘는 없다. 대(對)간첩 작전이나 땅굴수색 작전 등에서 공을 세운 군견에게만 예외적으로 묘지가 마련된다.
작전에서 큰 공을 세운 군견에게는 훈장이 수여되기도 한다. '김신조 사건'으로 알려진 1968년 1·21 청와대 무장공비 기습사건 당시, 무장공비들이 놓고 간 물건을 발견하고 추적해 공비소탕에 크게 기여했던 '린틴'이 군견으로는 처음 인헌무공훈장을 받았다. 또 1990년 중동부전선 제4땅굴 수색작전에서 지뢰를 터뜨려 숨진 '헌트'도 같은 훈장을 받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