탈(脫)세계화·탈중심화를 주장하는 스웨덴 출신 저명 환경운동가 헬레나 노르베리 호지(Helena Norberg-Hodge·62)씨와 오세훈(吳世勳·47) 서울시장이 22일 만나 '개발'과 '환경'을 화두로 대담을 가졌다. 호지씨는 언어학자로 일하던 시절인 1975년, 현지어를 배우러 '작은 티베트'라 불리는 인도 북부 도시 라다크로 갔다가 그곳 환경에 매료돼 16년을 머물렀다. 그리고 개발의 광풍(狂風)에 휘둘려 고유 문화와 자연환경이 훼손되는 실태를 고발하는 반(反)세계화 운동가로 변신했다.
오 시장은 22일 개막한 세계여성포럼에 참석하기 위해 서울을 찾은 호지씨를 집무실로 초청해 첫 만남을 가졌다. 둘의 대담은 이나영 중앙대 사회학과 교수의 진행으로 30분 넘게 이어졌다. 대담이 끝난 뒤 호지씨는 "환경을 주제로 한 영화를 서울시와 공동 제작해 내년 서울에서 열리는 C40(기후변화에 대응하는 세계 대도시 모임·정회원 40곳) 정상회의에서 공개하는 것을 시작으로 전세계에 상영하고 싶다"고 제안했고, 오 시장은 이를 받아들였다. 이날 만남의 결실 덕에 친환경 도시로서 서울의 위상은 높아질 전망이다.
◆"환경주제 영화 공동 제작해 내년 개봉"
두 사람의 인연은 호지씨의 명저 '오래된 미래'에서 비롯된다. 오 시장은 10여년 전 읽은 그 책이 자신을 환경운동의 길로 이끌었다고 밝혀왔다. 오 시장은 호지씨에게 "그 시절 읽고 느낀 감동과 충격이 지금도 마음의 바닥에 남아있다. 기능·효율 위주의 '하드웨어' 도시 서울이 문화·환경 중심의 '소프트웨어' 시정(市政)으로 나가는 밑바탕이 됐다"고 인사를 건넸다. 또 "대도시와 생태환경은 현실적으로 조화되기 어렵다. 환경운동가 출신인데도 환경단체와 갈등할 때가 있고, 정책을 현실화해 타협하는 과정에서 많은 좌절을 겪는다"고 고충을 털어놨다. 호지씨는 "서울의 자전거 혁명, 대기 질(質) 개선 노력에 깊은 인상을 받았다. 친환경 정책이 다른 도시에도 확산되게 해달라"고 답했다.
호지씨는 "개발도상국 대부분은 태양열·풍력 등 재생에너지를 생산할 수 있는 환경 여건이 되는데도, 기술이 없어 결국 석유로 대표되는 서구식 산업화 모델을 강요 당한다"고 주장해 왔다. 그녀는 서울의 신(新)재생에너지 개발에 공감을 나타내면서 "서울의 신재생에너지 기술이 덜 발전된 도시들에 전해진다면 '돈'보다 훨씬 더한 가치를 전하게 된다. 그런 '다리' 역할을 기꺼이 맡고 싶다"고 했다. 또 "신재생에너지는 도시와 농촌, 선진국과 개도국 간 균형을 회복하는 데 큰 도움이 된다"고 말했다. 오 시장은 "냉난방 효율이 떨어지는 건물에 신재생에너지를 쓸 수 있도록 리모델링 비용을 은행에서 대출해주고, 매월 절약된 에너지 비용으로 그 비용을 갚아가는 시스템을 시 전역으로 확산시키겠다"고 말했다.
◆"도·농 이을 농업체험공원 연구"
호지씨는 "지방에서 생산되는 농산물을 그 지역 주민들이 소비하지 않아 먼 나라에서 농산물을 수입하는 불필요한 무역이 늘었다"고 운을 뗐다. 이어 "서울 같은 대도시가 농촌과 도시 소비자 간의 거리를 좁히는 역할을 해야 한다. 서울시가 농촌장터를 적극 지원해달라"고 주문했다.
오 시장은 생산과 관광레저가 동시에 가능한 신개념 '농업체험공원(agropark)'에 대한 구상을 처음으로 밝혔다. 그는 "서울에서 나고 자란 어린이들로 하여금 농업이 우리 일상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 보고 느낄 뿐만 아니라, 생산자와 소비자가 유기농 농산물을 편리하게 직거래할 수 있고 휴양도 가능한 대규모 농업체험공원을 만드는 방안을 구상하고 있다"고 말했다.
오 시장과 호지씨는 '환경운동 동지'다운 마지막 인사를 나눴다. "환경·사회 문제 같은 나라 안팎의 난제들은 교육을 통해 풀어가야 한다. 서로 힘 닿는 데까지 돕기로 하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