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하원·워싱턴 특파원

최근 실시된 4차례의 미(美) 대통령 선거 TV토론회는 모두 대학교에서 개최됐다는 공통점이 있다. 미국의 대통령 선거 토론위원회(CPD)는 2008년 정·부통령 후보 TV토론회도 모두 대학에서 개최키로 하고 지난해 11월 일찌감치 토론회가 열릴 대학을 결정했다.

토론회가 개최된 대학교에서는 재학생의 절반이 넘는 학생들이 토론회 방청을 희망, 입장권 추첨을 해야 할 정도로 큰 관심을 모았다. 지난 15일 마지막 토론회가 개최된 뉴욕주의 호프스트라대에는 6800명의 재학생이 토론회 입장권을 신청했다. 이에 앞서 부통령 후보 토론회가 열린 미주리주 워싱턴대도 재학생 7942명이 토론회장 입장권 추첨에 응모했다. 미시시피대와 벨몬트대는 대선 토론회를 계기로 장외(場外) 토론장을 만들어 미국의 차기 대통령과 관련한 정책을 논의하기도 했다.

앞으로 4년간 미국의 진로를 결정할 대선에 적지 않은 영향을 끼치는 토론회가 대학에서 열리고 재학생들이 적극 참여하는 것은 대학이 미국사회에서 차지하는 비중을 상징한다. 대학이 미국 사회에 깊숙이 뿌리박고 있으며 중심적인 역할을 하고 있음을 의미하는 것이다.

미국의 각 대학은 대선 토론회뿐만 아니라 수시로 시사(時事) 토론회와 각 분야 명사들의 강연을 통해 미국 사회에 중요한 판단 근거를 제공하고 있다.

지난달 미국의 전직(前職) 국무장관 5명이 참석한 토론회가 개최된 곳도 워싱턴 DC의 조지 워싱턴 대학이었다. 헨리 키신저(Kissinger), 매들린 올브라이트(Albright)를 비롯한 국무장관들이 나와서 미국의 외교안보를 진단하는 이날 토론회 역시 많은 학생들이 몰려들어 추첨을 통해 입장권을 배부해야 했다.

다음 달 대선과 함께 실시되는 총선에 출마하지 않는 81세의 존 워너(Warner·공화) 상원의원은 올 초 자신의 불출마 및 은퇴 선언을 모교인 버지니아대 교정에서 했다. 한국전 참전용사이기도 한 워너 상원의원이 모교에서의 은퇴 선언을 통해 50년이 넘는 공직 생활을 회고할 때 새까만 그의 후배들이 박수를 보냈다.

이런 현상은 미국의 대학이 학문의 범주에만 머물지 않고 대학 울타리 바깥과 소통(疎通)하는 노력을 지속해왔기에 가능하다. 대학은 각종 외부 행사를 통해 책과 인터넷으로만 느끼기 어려운 경륜을 학생들이 배우게 하는 것이다.

미국의 대학생들은 엄격한 학사관리 때문에 늘 시간에 쫓기지만 수업 이외의 행사에서 자신의 인식을 확대시키려는 노력을 게을리 하지 않는 것 같다.

지난 4월 조지타운대에서 북한인권 토론회가 개최됐을 때의 일이다. 100여 명의 대학생들이 참석한 토론회는 밤 10시가 되어도 끝나지 않았다. 청소를 해야 했기 때문에 토론회장의 문을 닫게 되자 다른 강의실로 옮겨서 밤 11시가 가까워져서야 토론이 종료됐다. 토론회가 시작했을 때 얼굴이 보이던 학생들 대부분이 끝까지 자리에 남아 있는 것을 봤을 때의 놀라움은 미국의 대학을 다시 보게 되는 계기가 됐다.

미국발(發) 경제위기의 여파로 당분간 '미국 때리기'나 '미국 낮춰 보기'가 유행할 가능성이 큰 상황이다. 하지만 건강한 토론에 기반한 대학이 미국사회의 밑바닥을 지탱하고 있다는 사실을 떠올리면 이 나라의 저력이 그렇게 쉽게 무시당해선 안 될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