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일 오후 2시30분.
전(前) MBC아나운서 그리고 현(現) 프리랜서 방송인 김성주는 매니저, 스타일리스트와 함께 인터뷰 약속 장소인 서울 여의도 공원에 나타났다. 맑고 또렷한 목소리는 오전 라디오에서 들었던 것과 똑같았지만, 렌즈 없는 안경테 너머로 충혈된 눈이 보였다.
“요새 다시 일찍 일어나니까요. 라디오를 안 하다 하려니까…. 예전에 4년 동안 할 때도 힘들었지만, 그때는 오전 6시에 출근을 하면 좀 더 일찍 퇴근할 수 있었잖아요? 지금은 사실 출퇴근이라는 게 없어요. 일이 있으면 밤이나 새벽까지라도 해야 하니까요. 아이고~ 지금 사흘째하고 있는데 새벽 5시 반에 일어날 때마다 10분 정도 사투를 벌이죠.”
엄살이었나? 라디오 얘기가 나오니까 침침했던 얼굴이 밝아졌다. 그의 입에서 쉴 새 없이 라디오 얘기가 흘렀다. 원고를 보고 읽듯 막힘이 없다.
“지난 3월 TV 예능프로그램 ‘명랑 히어로’로 MBC에 복귀할 때는 두려움이 앞섰어요. 예능은 제 전공과목이 아니었으니까요. 조심스러웠고, 부담도 되고…. 그런데 라디오는 아~ 정말 설렜어요. 처음에 뭐라고 말할까 고민이 많이 되더군요. 제가 지난해 마지막 방송 때 성철 스님 얘기를 했거든요. 이번에도 명언을 소개할까 했는데 너무 거창하고 쑥스러운 거예요. 작가 분이랑 상의해서 그냥 자연스럽게, 솔직하게 내 심정을 얘기하는 게 낫겠다 싶었죠. 설레면 설레는 대로.”
◆ “복귀 후 첫 곡 직접 선택… 라디오하고 ‘천생연분’ ”
13일 오전 7시.
김성주는 프리랜서 선언을 하고 MBC라디오에서 하차한 지 1년 7개월 만에 다시 라디오로 돌아왔다. 그가 맡았던 프로그램 '굿모닝 FM' 그대로. 감회(感懷)가 남다를 듯 했다.
―이날 첫 곡도 직접 골랐다고 들었어요. 그룹 솔리드의 '천생연분'.
"어떤 곡을 틀까 고민이 많았어요. 2003년 굿모닝 FM을 처음 맡았을 때 첫 곡으로 나갔던 노래가 이승환의 '좋은 날'이었거든요. 그래서 이 곡을 다시 틀까, '유 레이즈 미 업(You Raise Me Up)' 같은 팝송을 틀까 고민했는데 제 입사 동기인 PD가 '그냥 형 좋아하는 애창곡 하시죠' 그러더라고요. 그래서 천생연분을 틀었죠. 전주(前奏)가 나가는데 울컥하더라고요. 저를 아껴주시는 분들이 김성주 하면 이 노래를 많이 떠올리시니까…. 라디오하고 천생연분처럼 다시 시작하게 돼서 좋았고요."
천생연분(天生緣分). 김성주 전 아나운서와 MBC가 그랬다. MBC는 2000년 입사한 ‘아나운서’ 김성주의 가치를 알아보고 그에게 라디오 프로그램은 물론 ‘생방송 화제집중’, ‘대학가요제’, 2006 독일월드컵 중계, ‘일요일 일요일 밤에-경제야 놀자’, ‘황금어장’ 등 굵직한 간판 프로그램을 맡겼고, 김성주는 동시간대 시청률·청취율 1위(드물게 2위)로 보답했다. 2005년 MBC연기대상 라디오부문 우수상을 비롯해, 아나운서로는 드물게 ‘황금어장’에 출연한 계기로 2006년 MBC 방송연예대상 인기상도 수상했다.
―MBC에 있을 때 '최고(最高)의 아나운서'라는 얘기도 종종 들었죠?
"2006년 독일월드컵 갔다 와서 인기가 높았던 건 사실이죠. 언론에서도 그랬고, 주변 사람들도 그랬고요. 저 스스로 '내가 인기가 많구나, 최고구나' 생각을 하기도 했었어요. 돌이켜 생각해보면 그때 거품이 참 많았죠. 인기와 실력이 비례하는 건 아니더라고요. 또 당시 아나운서국에서 저를 많이 밀어주셨던 점도 있었고요. 어린 연차의 아나운서에게 월드컵 진행을 맡기는 게 모험이었을 수도 있는데 기회를 줬던 거죠."
-MBC 입사 이전에 케이블TV 모 스포츠채널에서 캐스터로 일했던 경험이 도움이 됐나요?
"케이블TV에 있을 때는 굉장히 열심히, 열심히 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었거든요. 여건이 많이 안 좋았으니까요. 저는 최악의 제작 환경을 경험했기 때문에 MBC에서 활동할 때 웬만해서는 힘들다는 생각을 못했어요. MBC에서 방송하는 게 너무 신났어요. 중계차를 타고 명동이나 뭐 이런 데 가라고 하면 '내가 이런 거 하려고 방송국 들어온 거 아닌데' 이렇게 생각하는 아나운서들도 있겠죠. 저는 단 한 번도 그런 생각 안 해 봤어요. MBC 로고가 박혀 있는 화면에 내가 얼마나 나오고 싶어했는데, 기회가 왔으니까요. 정말 힘든 줄 모르고 열심히 했었고, 그만큼 열심히 하니까 주위 아나운서 동료나 선배, PD분들이 예뻐해 주셨던 것 같고, 기회도 많이 주셨고요."
◆ “방송만 죽어라 좋아했던 ‘아이’였죠. 사회에 대해, 조직에 대해 잘 몰랐어요”
영원할 것 같았던 김성주와 MBC의 관계는 지난해 3월 ‘파국’을 맞았다. 김성주가 돌연 사직서를 제출하고 대형 매니지먼트사(社)와 계약을 맺은 것. 김성주는 당시 프리랜서 선언 이유를 이렇게 말했다. “몇 년 안에 매력 없는 아나운서가 될 수도 있다는 걱정이 들었다. 출발점이 다르다고 생각했고, 동등한 조건에서 강호동, 김용만 등 예능 MC들과 겨루고 싶었다. 최고의 예능 MC가 되고 싶다는 목표가 생겼고, 그 꿈을 실현하고 싶었다”고. 김성주는 지난 6월30일 MBC 예능프로그램 ‘무릎팍도사’에 출연했을 때 “예능 MC로서 사장될 수도 있다는 걱정에 솔직히 경제적 보상이 필요했다”고 밝히기도 했다. 그래도 여전히 MBC를 나온 속내가 궁금했다.
“그 부분에 대해서는 아직도 궁금해하시는 분들이 많아요. ‘왜 잘 나가던 사람이 회사를 나갔어? 더 많은 걸 누릴 수 있을 텐데’ 이런 얘기를 많이 하시는데요. (잠시 침묵) 제 개인적인 신념이나 정서를 다 말씀드릴 수는 없네요. 또 이해시킬 수도 없고요. 그런 것에 대해서 설득시키기보다는 ‘저는 뭘 하고 싶습니다’ 그런 큰 틀에서 말씀을 드리는 게 좋겠다고 생각을 했죠.
저는 제가 회사를 나오는 문제가 그렇게 많은 사람으로부터 큰 반향을 일으킬 줄은 정말 몰랐어요. 저 전에도 프리랜서를 선언하고 나온 아나운서 선배들이 많았지만 잡음이 그다지 없었으니까요. 그런데 얘기가 커졌죠. 돈 때문이냐, 뭐냐? 물론 경제적인 이유도 무시할 수 없죠. 사람이 직업을 선택하고 자기 환경을 선택하는데 경제적인 것을 생각 안 할 수가 없죠.
저 나름대로 이런 생각도 많았어요. ‘아나운서로서 어디까지가 내 한계일까, 나는 어디까지 할 수 있을까.’ 9시 뉴스데스크 남자 앵커는 기자들이 거의 다 하고, 교양·예능 프로그램은 연예인들이 치고 나오고… 아나운서 입지가 좁아지는 상황에서 나는 어떻게 해야 하나 고민이 많았죠.
그래서 ‘아나운서도 이만큼 끼가 있고, 실력이 있다는 것을 보여주자. 그러면 어? 아나운서도 예능프로그램에서 웃길 줄 아네? 재미있게 방송할 줄 아네? 정보만 주는 건 아니네? 느끼게 될 것이다’ 했던 거죠. 제 스스로는, 제가 성공하면 아나운서의 활동 영역이 더 넓어질 거라고 생각했고, 정말 그런 걸 보여주고 싶었습니다.”
― 당시 아나운서국이나 MBC측에서 일종의 '배신감' 같은 것을 느꼈을 수도 있었겠군요. '우리가 아니었다면 저렇게 클 수 있었겠어?' 이런 식으로요.
"저는 조직이라든가 이런 것에 대해서 관심도 없었을 뿐더러 그것에 대한 생리도 잘 몰랐어요. 방송만 죽어라 좋아했던 '아이'였죠. 조직을 벗어나면 자유롭게 뜻을 펼칠 수 있을 거라는 생각을 했는데 아니더군요. 나만이 할 수 있는 영역과 종목이 있을 것이고 '저 자리는 김성주가 아니면 안 돼' 이런 자리만 하면 되는 거라고 생각했죠. 그게 제 생각의 전부였는데 막상 나오니까 그때 알게 됐어요. 아나운서 출신인 내가 밖에 나와서 잘 되면 같이 일했던 아나운서들이 할 수 있는 자리를 가로챌 수 있다는 걸요. 저는 동료를 위해서라고 생각하고 나왔던 건데, 상황이 그렇게 되더군요.
저는, 처음에 당황했어요. MBC를 여전히 사랑하고, MBC 선후배, 동료들과 계속 교류하고 싶고 좋은 관계로 지내고 싶은데 그렇게 쉽게 되지 않더라고요. 나갈 때 좀 더 잘 말씀을 드리고 제 생각을 좀 더 진지하게 이해를 구하고 나갔어야 했는데 그런 부분에서 제가 좀 많이 부족하지 않았나 후회가 됩니다.”
한동안 침묵하던 김성주는 말을 이었다. “이렇게 말해도 입장의 차이에 따라서, 위치에 따라서 제 말에 대한 해석이 달라지고 오해의 여지가 많이 생겨요. 회사를 나오고 나서 저하고 회사측하고 대화의 통로가 막힌 다음 서로 얘기를 들을 수 있는 게 인터넷을 포함한 매체, 언론밖에 없더라고요. 나는 이렇게 얘기를 했는데 기자는 이렇게 쓰고, 그걸 읽는 분은 ‘어? 아니 얘가 이런 얘기를 했어?’ 그런 말 전달 과정의 실수들 때문에 제가 회사 나오는 시점에서 상처를 많이 받았어요. 내가 말을 많이 할수록 오해가 많이 생기더군요.”
―사표가 수리되고 나서 MBC 모든 프로그램에서 하차할 거라 예상했나요?
"생각을 못했어요. 그래서 더욱 당황을 했죠. '이거 어떻게 되는 거야?' 아~ 그때는 정말 패닉(panic)이었어요. 이미 상황은 벌어져서 되돌릴 수도 없었고. 그때 되게 육체적으로 힘들었어요. 이제 저를 아나운서가 아니라 프리랜서로 대우해야 하니까 제작비용에 차질이 생기면 그럴 수도 있겠다 싶었지만….
처음에는 ‘나도 쉬어야 하는 시간이 필요하다’고 생각했어요. 6개월이 됐든, 1년이 됐든 쉬어도 괜찮겠다…. 그런데 방송 일을 했던 사람들은 한 달 이상을 못 쉴 것 같더라고요. 일하고 싶다, 방송하고 싶다 그런데 제 뜻대로 되는 일은 아닌 것 같고….”
◆ “첫 공중파 복귀는 MBC에서 하고 싶었어요. 앙금과 오해를 먼저 풀고 싶었기에…”
김성주는 한 방송에서 MBC와 자신의 관계를 ‘부모님(MBC)이 반대하는 결혼을 한 딸(김성주)’로 묘사했었다. 친정은 ‘출가외인(出嫁外人)’이 된 딸에게 2년간 출입을 금한다고 했다. 이후 김성주는 간혹 몇몇 행사에서 사회를 맡기도 했지만 방송에는 출연하지 않았거나 못했다. 김성주 매니저는 1년 전쯤 기자에게 “다른 공중파에서 김성주씨 출연을 원하기도 했지만 김성주씨 자신은 공중파 첫 방송을 MBC에서 하고 싶어한다”고 말했다. “매니저의 말이 사실이냐”고 김성주에게 물었다.
“MBC만 하려고 했던 건 아닙니다. 저는 말 그대로 프리랜서니까요. MBC는 저를 키워 준 회사잖아요? 제가 짧으면 짧을 수도 있지만 7년 동안 다니던 회사였어요. 저를 많이 키워줬는데 저한테 섭섭하셨다거나 서운하셨다고 하니까…. 친정에서 반대하는 결혼을 해서 아버지가 ‘눈에 흙이 들어가기 전까지는 우리 집 오지 마라. 너는 내 딸이 아니다’라고 해도 친정은 친정이잖아요? 저는 가장 마음 아팠던 게 회사를 나오고 난 다음에 회사와 같이 일했던 사람들과 멀어졌다는 점이었어요. 오해가 생기고 앙금이 있는 상황에서 제가 이분들하고 화해하지 않고, 앙금을 풀지 않고 다른 방송국에 드나들었다면 주변에서 더 손가락질을 할 거라고 생각을 했어요. 그래서 회사에서 일단 제 진심을 받아주실 때까지, 저는 MBC를 해코지하려고 나온 게 아니라 제 나름대로 생각하고 있는 방송에 대한 꿈이나 내 미래에 대한 꿈을 위해서 나왔기 때문에 그런 진심을 알아주셨으면 하는 생각에서 계속 MBC에 먼저 나와야 하겠다는 생각을 했던 거죠.
아직 방송국 내 모든 사람이 제 판단에 대해 좋게 생각한다고는 보지 않아요. 제일 중요한 건 ‘내가 나간 걸 안 좋아하는 분들도 있는데 내가 여기서 방송을 때려치워야겠다’ 아니면 ‘내가 망가져서 사람들 기억 속에 잊혀지는 퇴물이 되어야겠다’ 이런 게 아니고 ‘제가 왜 나갔을까? 자식, 안 나가야 하는 놈인데 나갔네’ 이런 생각을 하셨던 분이 ‘아~ 쟤가 저런 꿈을 펼치고 싶어서 나갔었구나’ 이렇게 생각하실 수 있도록, 제가 이루어가는 과정을 보여드리고 싶어요.”
사진 촬영을 하는데 함께 온 스타일리스트가 옷 매무새를 만져주고 얼굴에 분도 다시 발라줬다. 멀찍이 떨어져 있던 매니저는 수시로 전화를 받으면서 그의 일정을 확인하는 듯했다.
―개인 매니저 분께서 아침 방송 때마다 집에서 방송사까지 운전을 해 주시죠?
"네. 그런 것도 프리랜서가 된 이후 달라진 거겠죠. 매니저가 데리러 와서 깨워주고, 운전해 주고 그러면 저는 그 사이 잠을 조금 더 자거나 상대 방송국 라디오도 들을 수도 있고요. 예전에는 이렇게 인터뷰를 해도 부스스하게 나오는 경우가 많았어요. 지금은 스타일리스트가 안경부터 시작해서 때때옷도 입혀주고 하시니까 그런 일하는 환경 면에서는 많이 달라진 것 같아요."
―부담스러운 부분은 없나요?
"있죠. 이런 시스템으로 일하기가 사실 조금 어색한 것도 있고요. 저는 밖에 나오면 활동을 자유롭게 내가 하고 싶은 대로 할 수 있겠다는 생각을 했었는데 방송국 바깥 시스템은 또 그런 식으로 돌아가는 건 아니더라고요. 내가 하고 싶은 것만 골라서 하는 것도 아니고요. 어떤 걸 하려면 이걸 먼저 해야 하고, 높은 꿈을 이루려면 낮은 데에서부터 시작해야 하고…."
◆ “아나운서 직함보다 회식자리 그리워”
무거운 질문 대신 다시 라디오 얘기를 꺼내봤다. 김성주는 자세를 바로 했다.
―청취자가 보낸 사연은 다 읽어보셨나요? 복귀를 환영한다는 메시지가 많던데요.
"다 읽어봤어요. 소중하니까요. 라디오 청취자 분들이 저 쉬는 동안 정말 많은 위로가 됐어요. 이메일도 많이 보내 주셨고 격려도 많이 해주셨고요. 정말 잊지 못할 분은… 지난해 3월20일 마지막 방송을 하러 가려고 집 현관문을 열었는데 앞에 케이크가 있더라고요. '당신을 응원한다. 위축되지 말고 열심히 해라. 날개를 활짝 펴라' 이런 내용의 글도 함께 있었어요. 그때 기억으로 한동안 버틸 수 있었어요.
사연 보낼 때 50원을 내는 문자 있잖아요? 전에 라디오 했을 때 하루에 2000여건 정도 왔었는데요, 첫 방송하는 날 4000건이 넘었고, 오늘은 6000여 건이 왔어요. 그런 걸로 보람을 많이 느끼고, 자신감을 얻게 되는 것 같아요. 정말 감사하죠. 기회만 생기면 하나하나 청취자 이름을 다 불러주고 싶은데, 워낙 많아서요. 이번에 복귀할 때 걱정이 많았죠. 누구보다 청취자 눈치가 많이 보였어요. 어떻게 받아주실까? 하루 일찍 문을 연 라디오 홈페이지를 가보니까 제 애청자 분들이 벌써 글을 남겨두셨더군요. 두 팔 벌려서 저를 받아주셨어요. ‘기다리고 있으니까 빨리 오세요’ 이렇게요. 제가 정말 밤잠을 설쳤다니까요. 그런 기분 때문에!”
인터뷰를 하는 동안 여의도공원을 산책하러 나온 사람 마다 김성주를 알아보고 인사를 건넸다. 김성주는 그때마다 고개를 숙여 인사했다.
―요새도 아나운서라고 부르는 사람이 꽤 되지요?
"네 많으시죠. 입에 배신 것 같아요."
―아나운서라는 직함이 그리울 때도 있을 것 같아요.
"아나운서라는 직함보다 직장에 대한 그리움이 있어요. 매일 출근하는 게 그때는 그렇게 지겹고 힘들었는데…. 방송 말고 영수증도 처리해야 하고 행정적인 일도 해야 했죠. 샐러리맨이라면 누구나 해야 하는 업무들 그런 게 귀찮고 싫었는데, 이제는 그리울 때가 많죠.
그리고 동료들간의 회식자리…. 제가 회사를 나가고 나서 고기를 많이 못 먹었어요. 이유를 생각해보니까 회식이 없어져서 그랬더군요. ‘야, 오늘 회식 있다’ 그럴 때만 제가 나가서 고기를 먹었지 개인적으로 고기가 먹고 싶어서 먹었던 적이 별로 없었거든요. 회식 때 상사 험담도 하고, 우리끼리 뭐하자 계획도 세우고…. 그런데 동료라는 개념이 없어지니까 많이 외롭더라고요. 밖에 나와서 혼자 일한다는 게 정말 외로운 거구나. 나 홀로 선다는 게 그냥 생각만 하던 것과는 많이 다르구나. 이런 외로움을 극복해 나가야 한다는 게 무서울 때도 있고 그럴 때마다 내가 조직 안의 샐러리맨이었으면 하는 생각도 가끔 하게 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