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국 경제전문지 파이낸셜타임스는 지난 14일 '침몰하는 느낌(Sinking feeling)'이란 제목의 특집기사를 통해 한국의 경제위기를 다뤘다. 신문은 "한국의 소비자와 기업들이 과도한 부채를 안고 있어 미국과 비슷한 상황"이라며 "한국의 문제는 섬뜩할 만큼(scarily) 미국과 닮아 보인다"고 했다. "한국 은행들은 미국, 영국 은행들처럼 글로벌 신용경색으로 꼼짝 못할 처지가 됐고, 내년 6월 말까지 만기 도래하는 단기 외채가 1750억 달러에 이르고 있어 정책 입안자들이 한밤중에 식은 땀을 흘리고 있다", "국민들이 정부의 정책관리 능력을 믿지 않고 있어 상황이 더 어려워지고 있다"고도 했다. 이 기사를 읽은 독자들은 대부분 한국에 다시 외환위기가 임박했다는 느낌을 받았을 것이다.
파이낸셜타임스 보도에는 맞는 내용이라 정부가 새겨들어야 할 부분도 있고, 과장됐거나 사실과 달라 세계를 향해 바로잡아야 할 부분도 있다. 한국이 세계 6위 외환보유국이지만 단기외채 상환 부담에 더해 지난 두 달 동안 정부가 환율을 끌어내리기 위해 400억 달러나 푼 것 같은 일을 되풀이하면 막대한 외환보유고도 고갈될 수 있다는 지적은 새겨들을 만하다. 그러나 이 기사에는 한국 은행들의 예금액 대비 대출액 비율 103%를 124%로 부풀려 보도하거나 한국 기업의 부채비율이 1997년 423%에서 지금은 93%로 떨어진 사실 등은 언급하지 않는 등 균형을 잃은 면이 적지 않다. 조선회사들이 선박 건조대금으로 받게 될 달러를 은행에 미리 파는 선물환 거래는 장부상으론 단기외채로 잡히지만 실제로는 상환부담이 없는 돈이다. 이런 돈 600억~700억 달러가 외채로 잡혀있는데도 그냥 넘어가버렸다.
이 기사는 결론으로 "대부분의 전문가들은 한국과 한국의 은행들이 아이슬란드식 붕괴를 피할 수 있을 정도로 충분히 견실하다는 확신을 갖고 있다"고 하면서도 그런 결론을 뒷받침할 수 있는 근거와 자료는 거의 제시하지 않았다. 불안의 근거는 조목조목 그것도 틀린 것까지 내놓으면서도 말이다. 파이낸셜타임스가 이번 글로벌 금융위기와 관련해 '분석기사(Analysis)' 면에 국가 부도 상태인 아이슬란드를 다룬 것을 빼면 특정 국가만을 다룬 경우는 한국밖에 없다.
미국 월스트리트저널은 지난 9일 인터넷판 '한국은 아시아의 아이슬란드인가?'라는 제목의 기사에서 실제 기사의 절반 이상을 한국의 위험요인이 작다는 내용으로 채우면서도 경상수지 적자와 금융시스템의 약화라는 점에서 "한국이 아시아에서 위험 1순위"라고 보도했다. 미국 통신사인 다우존스는 지난 8일 "신용평가회사인 피치가 한국 은행들에 지급불능 징후가 있다고 밝혔다"고 했다. 그러나 이 기사의 근거가 된 피치의 발표내용은 "만약 유동성 문제가 지급불능 문제로 번지게 되면 국가 신용등급에 영향을 줄 수 있다"는 원론적 지적이었다. 인터내셔널헤럴드트리뷴도 8일 "한국 은행들이 달러를 빌려 원화로 대출해주다 위기를 맞게 됐다"고 보도했다. 그러나 한국은 외화자금과 원화자금의 조달·운용이 완전히 분리돼 있다.
이런 보도가 끊이지 않는 것은 정부가 외국 언론 보도에 대해 늘 불만을 터뜨리면서도 평상시 우리 경제의 실상을 정확히 알리기 위한 노력을 게을리해 왔던 데도 원인이 있다. 세계 13위 경제규모, 더욱이 국제 경제에 완전히 노출되다시피 한 우리 처지에 외신 기자를 위한 정례 브리핑도 없고, 경제 현안에 대한 배경설명을 하는 일도 드물다. 정확한 정보를 알리지 않으니 잘못된 보도가 나오고 그 기사를 다른 언론이 재인용하면서 확대 재생산(再生産)되는 현상이 되풀이되고 있는 것이다. 파이낸셜타임스의 이번 보도도 그 다음 날 홍콩 신문들에 그대로 옮겨 실려져 한국 경제 위기설을 다시 세계를 향해 전파하는 모양새를 만들고 말았다. 지금 세계경제 위기의 근인(根因)은 신뢰의 결핍이다. 정부는 한국 경제의 신뢰가 이런 식으로 닳아져 가는 걸 더 이상 방치해선 안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