처음 주말농장을 분양 받던 날, 순진한 나는 밭에 파릇파릇한 농작물이 가지런히 심어져 있을 거라고 상상했다. 그런데 막상 가보니 눈앞에는 그저 기다랗고 메마른 흙더미가 놓여 있었다. 농장주는 작은 푯말을 주며 내 이름을 적으라고 했다. 이름표를 꽂자 놀랍게도 그 볼품없는 다섯 평의 흙더미에 몹시 큰 애착이 들었다. 그 순간부터 그곳은 나의 영토였다.
상추, 고추, 쑥갓, 토마토, 들깨 등속을 심고 수시로 드나들며 손을 보았다. 처음 푸성귀를 따서 먹던 날, 연하고 싱싱한 맛에 감격하여 나는 소리쳤다. "이제까지 먹었던 야채는 다 허위야!"
하지만 재배는 그리 녹록지가 않았다. 비가 내리면 작물이 몰라보게 성장했지만 잡초도 함께 무성해졌다. 키울 것과 솎아낼 것을 구분하지 않으면 결실이 좋지 않았고, 아무리 잘 솎아내도 거둘 때를 놓치면 먹을 수가 없었다.
여름으로 접어들자 주변 텃밭에 확연한 차이가 드러났다.
너무 많은 작물로 빼곡한 밭, 소수 품종을 집중 경작한 밭, 채소의 색과 모양을 배열하여 아기자기하게 가꾼 밭이 있는가 하면 온갖 종류의 벌레를 배양하는 밭도 있었다. 잎에 생기가 돌고 가지마다 열매가 주렁주렁 달린 밭은 경탄할 만한 예술품이었다. 이름표 탓인지 나는 밭주인의 정신적 작황을 엿보는 기분이었다.
그런 관점으로 내 밭을 돌아보니 비로소 모자란 부분을 알게 되었다. 선험자에게 조언을 구하지도 않고 깊은 정성을 쏟지도 않은 사실이 부끄러웠다. 농사야말로 반성의 예술일지도 모른다. 수확의 계절에 결실을 즐기는 한편 다음의 파종과 경작에 대해서도 숙고하게 된다. 내년에는 다양한 작물로 풍성한 밭을 일궈 지인들과 나누는 기쁨까지 누리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