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구판에는 절친한 친구가 '적'으로 만나는 경우가 많다.
고향이 같거나 출신 학교가 같아도 상대팀 선수라면 '옛 정'은 잊게 마련이다. 똑같은 고향에 7년이나 같은 학교를 다닌 관계라면 예외가 될 수 있을 것이라는 생각은 오산이다.
롯데 에이스 손민한과 삼성 포수 진갑용은 같은 부산 출신에 부산고와 고려대를 함께 다닌 친구 사이다. 두 선수보다 친한 사이는 양 팀에 없다고 봐도 과언이 아니다.
게다가 포지션이 투수와 포수로 7년간 함께 배터리를 이룬 관계다. 청소년 대표와 국가대표 단골 배터리이기도 했다. 누구보다 서로를 잘 안다. 성격과 스타일, 나아가 취향마저도 둘 사이엔 비밀이 없다.
지난 97년 손민한은 1차지명을 받고 롯데에 입단했고, 진갑용은 2차지명 1순위로 OB 유니폼을 입었다. 손민한이 프로에 들어서자마자 오른쪽 어깨 수술을 받아 3년간의 기나긴 재활의 고통을 견뎌낼 때 친구 진갑용은 힘이 돼주었다.
두 선수가 가을잔치 무대에서 만난 것은 지난 2000년 준플레이오프 이후 8년만이다. 정규리그에서는 여러차례 상대했지만, 포스트시즌에서는 30대 중반이 되어서야 다시 만났다.
9일 부산에서 벌어진 준플레이오프 2차전은 두 선수에게 특별한 의미가 있었다. 손민한은 선발로 등판했고, 진갑용은 4번타자 포수로 선발출전했다. 전날 대패를 당한 롯데는 에이스 손민한의 어깨를 믿을 수밖에 없었고, 삼성은 진갑용의 방망이가 절대적으로 필요한 게임이었다.
진갑용은 올시즌 손민한의 천적이었다. 8타수 6안타로 손민한 상대 타율이 7할5푼이나 됐고, 타점도 2개를 올렸다. 이날 2차전 역시 손민한을 무너뜨린 것은 진갑용이었다. 1회와 3회 손민한에게 헛스윙 삼진을 당한 진갑용은 5회 2사 1루서 볼넷을 얻어내며 손민한을 강판시켰다. 진갑용과의 대결이 껄끄러울 수밖에 없었던 손민한은 7구까지 가는 풀카운트 끝에 볼넷을 주고, 투구수 95개로 강판하고 말았다. 결정적인 순간 친구를 무너뜨린 것은 다름아닌 친구였다.